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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란재[일명 계란티] 밑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계란리라 하였고, 가는 골짜기 안이 되므로 가느실 또는 세곡이라고도 하였다. 계란재는 계란리 가느실 동북쪽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풍수상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고 한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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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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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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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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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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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가람(伽藍) 또는 사원(寺院)이라고도 하는데, 가람이란 범어 Sañghãrãma를 음역하여 만든 용어이다. 이는 중원(衆院) 또는 정사(精舍)라는 뜻으로 남자승려[比丘]·여자승려[比丘尼]·남자신도[淸信男]·여자신도[淸信女]와 같은 4중(四衆)이 모여 사는 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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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가마처럼 탈 것을 만들어 경합을 하는 놀이. 가마타기놀이는 두 아이가 마주 서서 손으로 가마 모양을 만들고, 한 아이는 그 위에 타고 놀거나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이를 ‘가마싸움’이라고도 한다. 가마는 옛날 탈 것의 한 가지로 작은 집 같이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이 들어앉도록 하였으며, 밑에 붙은 가마채를 손으로 들거나 끈을 어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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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가마처럼 탈 것을 만들어 경합을 하는 놀이. 가마타기놀이는 두 아이가 마주 서서 손으로 가마 모양을 만들고, 한 아이는 그 위에 타고 놀거나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이를 ‘가마싸움’이라고도 한다. 가마는 옛날 탈 것의 한 가지로 작은 집 같이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이 들어앉도록 하였으며, 밑에 붙은 가마채를 손으로 들거나 끈을 어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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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을 지내는 명절.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설날과 더불어 2대 명절의 하나이다. 이를 가위, 한가위, 가배(嘉俳), 중추절(仲秋節) 등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어 한 해 농사가 마무리 되어 가는 시기라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수확의 시기이자 보람의 시기이다.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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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집안에 위치하는 신적 존재인 집의 신에게 가정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는 신앙. 가정 신앙은 가내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행하는 의례이다. 이를 가신 신앙(家神信仰) 또는 안택 신앙(安宅信仰) 등이라고도 한다. 가신(家神)은 집안 곳곳에 상주하며 가족의 무사태평함을 돕고, 외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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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을 지내는 명절.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설날과 더불어 2대 명절의 하나이다. 이를 가위, 한가위, 가배(嘉俳), 중추절(仲秋節) 등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어 한 해 농사가 마무리 되어 가는 시기라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수확의 시기이자 보람의 시기이다.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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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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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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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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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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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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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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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집안에 위치하는 신적 존재인 집의 신에게 가정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는 신앙. 가정 신앙은 가내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행하는 의례이다. 이를 가신 신앙(家神信仰) 또는 안택 신앙(安宅信仰) 등이라고도 한다. 가신(家神)은 집안 곳곳에 상주하며 가족의 무사태평함을 돕고, 외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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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매년 4월경 개최되는 등산 축제. 가족 등산 축제는 건강하고 건전한 등산 문화와 시민 의식을 고양하는 한편, 제천의 금수산을 널리 알리고 건강한 여가 문화를 전파할 목적으로 2003년 11월 금수산 전국 가족 등산 축제라는 명칭으로 처음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제천시 산악연맹이 주관하여 매년 가을에 개최하다가 2007년 제5회 축제부터는 매년 봄 4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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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국빈(國賓), 호는 회와(悔窩)·가주(可洲). 아버지는 호조 참의 안안후(安安厚)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아들로 삽교(霅橋) 안석경(安錫儆)[1718~1774]이 있다. 충주 가흥(可興)에 거주하였으며 청풍 김씨(淸風金氏)와 혼인하였다. 안중관(安重觀)[1683~1752]은 1702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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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고명동·흑석동,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석교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걸쳐 있는 산. 가창산의 명칭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갑자사화로 부모를 잃은 서울 명문가 출신의 두 친구가 양평 용문산에서 10년 넘게 수학하였다. 어느 삼짇날 스승의 권유로 속세로 돌아온 이들은 절대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자로서 후진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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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각설이들이 부르는 유희요. 「각설이 타령」은 지난 시절 각설이들이 마을에 들어와 남의 집 대문 앞이나 장터에서 구걸을 위해 흥겹게 불렀던 언어 유희요이다. 이를 「장타령」, 「품바 타령」 등이라고도 한다. 주로 구걸을 다니는 각설이들이 각 지방을 떠돌며 신세타령을 하며 불렀다. 「각설이 타령」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각 지방마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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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낫을 던져 승부를 겨루는 놀이. 낫치기는 주로 농촌 소년들이 함께 나무를 하러 가서 심심할 때 낫을 이용하여 상대방과 내기를 하며 즐기던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이를 ‘낫치기놀이’, ‘낫꽂기’, ‘낫걸이’ 등이라고도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갈퀴치기놀이’라는 방식으로 전승되기도 한다. 놀이의 도구로 반드시 낫이 있어야 한다. 일부러 낫치기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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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재배되는 난초과 식물. 대왐풀은 감근(甘根), 백근(白根)이라고도 하며, 다년생 초본 식물로서 난초과 식물 백급(白芨)의 덩이줄기이다. 폐를 튼튼하게 하고 지혈을 돕고 부종을 내리고 새살이 나게 하며 창을 수렴하는 효능이 있다. 높이는 30~70㎝이고, 덩이줄기는 다육질이며, 연결된 삼각형 달걀 모양의 덩어리로 약간 편평하고 황백색이다. 수염뿌리는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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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에 걸쳐 있는 산. 정상의 두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감색을 띠어서 감악산(紺岳山)이라고 하나 근거가 없다. 전국에 ‘감악산’이라는 지명이 여럿 있으며 그 한자 표기도 각각인 것을 보면 우리말을 적당히 한자로 옮긴 것이며, 그 뜻은 신(神)과 관련 있는 듯 하다. 감악산 자락은 예로부터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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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봉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석축 산성. 감암산성은 차령산맥의 한줄기에 솟은 치악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감악산[해발 945m]과 그 가지 봉우리를 둘러싼 산성이다. 감악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제천현에서 북쪽으로 40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으며, 『대동지지(大東地志)』 성지(城池)에서 처음 산성의 존재가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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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감자를 소재로 전해 내려오는 노동요. 「감자깎는 소리」는 아낙네들이 감자를 깎을 때 부르는 가사 노동요이다. 아낙네들은 남정네들과 함께 낮 동안 고된 들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힘든 가사 노동에 시달려야만 하였다. 저녁때가 되면 감자를 깎아 찌고, 보리쌀을 앉혀 밥을 짓고,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는 등 부엌일에도 비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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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와 도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갓고개는 충주댐 수몰 전 평등산 서남쪽으로 위치한 고갯마루였다. 청풍에서 수산으로 왕래하는 지름길로 행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여기에는 성황당과 성황목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오가면서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도 있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제천시 청풍면 도리의 강변 길이 수몰되자 지금의 물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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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숙(聲叔), 호는 청해(靑海). 강난수(姜蘭秀)는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대장 유인석(柳麟錫)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재정을 담당하였다. 1896년(고종 33) 3월 박종문과 함께 단양에 있는 역토(驛土)에서 도조를 거두는 일을 하였고, 청풍의 오산(伍山) 쪽에 주둔하던 이강년(李康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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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비를 시조로 하고 유안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후손으로, 송나라 때 병부 상서를 지낸 유전(劉荃)이 고려 문종(文宗) 때인 1082년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 정착하여 우리나라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유전의 맏아들 유견규(劉堅規)의 후손들은 거창 유씨가 되었다. 한편 유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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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閒溪)·청월헌(聽月軒). 증조할아버지는 강인(姜璘)이고,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며, 아버지는 좌의정에 추증된 강주(姜籒)이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 안동 김씨이다. 아들로 문과 출신의 강선(姜銑)과 강현(姜鋧)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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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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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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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의 계란교 아래에 있는 누대처럼 생긴 넓은 바위.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는 수산면 소재지인 수산리에서 동쪽으로 8㎞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계란리는 북쪽은 청풍호에 접해 있고 동북부는 수산면의 괴곡리, 서북부는 원대리, 서남부는 적곡리, 동남부는 수리, 동부는 단양군 적성면 두항리 등에 접하고 있다. 강선대는 별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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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군수를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월당(松月堂)·송일(松日)·낙봉(樂峰)이다. 할아버지는 사간원 대사간 강경서(姜景敍)[1443~1510]이며, 아버지는 강공망(姜公望)이다. 형은 강욱(姜昱)이다. 강섬(姜暹)[1516~?]은 1546년(명종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 봉교가 되었다. 그 후 춘추관 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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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강수봉(姜秀鳳)이다. 시아버지는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이계원(李啓元)이고, 남편은 이유봉(李裕鳳)이다. 강순희(姜順熙)는 18세에 청상과부가 된 뒤 슬하에 자식도 없었으나 지극한 정성으로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시부모를 봉양하였다. 시동생 이유철(李裕喆)과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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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상(伯尙), 호는 서호(西湖).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를 지낸 강응생(姜應生)이다. 강위빙(姜渭聘)[1569~1637]은 1603년(선조 36)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가 학행(學行)으로 추천되어 희릉 참봉(禧陵參奉), 종묘서 봉사(宗廟署奉事), 순안 현령(順安縣令)을 지냈다. 그러나 광해군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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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공헌(公獻), 호는 상곡(商谷). 증조할아버지는 강구수(姜龜壽)이고, 할아버지는 강신(姜信)이며, 아버지는 강천민(姜天民)이다. 어머니는 임즙(林楫)의 딸이며, 부인은 이운(李蕓)의 딸로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강유(姜瑜)[1597~1668]는 제천시 두학동 출신으로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었으며,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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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으로 아들 강정환(姜鼎煥) 역시 효행으로 알려졌다. 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가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함께 기록된 강재망(姜宰望)은 형제로 짐작된다. 강재무(姜宰武)와 관련한 기록은 『여지도서』에 “부친이 병으로 위급하니 다시 그 손가락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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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강제동에 있는 농공 단지. 강저테크노빌은 지역 농업의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지역 생산 농·특산품의 고부가가치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지역 농업의 생산 경쟁력을 강화하며, 과학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지역 농업 생산 기반[지역 농업 기반의 첨단화, 유통 시설의 확충 및 농업 정보화]을 구축하기 위하여 제천시가 건립하였다. 198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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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효자로 알려진 강재무(姜宰武)이다. 강정환(姜鼎煥)과 관련한 기록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재무(宰武)의 아들이다. 모친이 병으로 기절하니 다시 손가락을 잘라 회생시켰다. 숙묘조 기해[己亥]에 복호(復戶)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복호(復戶)는 특정한 대상자에게 호(戶)의 조세(租稅)나 부역(賦役)을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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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강처럼 넓은 모라내[沙溪] 가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강제골 또는 강제리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장정리·진우동(進友洞, 鎭寓洞)[일명 진우골]과 동면 백양동 일부, 근우면 고지동 일부를 통합하여 강제리로 개편하고 성산면 관할하에 두었다.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고,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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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강처럼 넓은 모라내[沙溪] 가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강제골 또는 강제리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장정리·진우동(進友洞, 鎭寓洞)[일명 진우골]과 동면 백양동 일부, 근우면 고지동 일부를 통합하여 강제리로 개편하고 성산면 관할하에 두었다.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고,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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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강제동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강제동 산신제는 제천시 강제동 원강제골 뒷산 중턱에 수목으로 이루어진 신당(神堂)에서 음력 정월 첫 정일(丁日)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예전에는 산신제와 서낭제를 함께 올렸으나 서낭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낭제는 중단되었다. 강제동 산신제는 동제(洞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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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강처럼 넓은 모라내[沙溪] 가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강제골 또는 강제리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장정리·진우동(進友洞, 鎭寓洞)[일명 진우골]과 동면 백양동 일부, 근우면 고지동 일부를 통합하여 강제리로 개편하고 성산면 관할하에 두었다.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고,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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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와 명지동에 있는 통일 신라의 테뫼식 산성. 성산성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와 명지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426.7m의 성산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성산성에 관한 옛 기록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충청북도각군읍지(忠淸北道各郡邑誌)』에서 보인다. 즉 “성산의 옛 성과 제비랑산의 옛 성은 모두 언제 쌓은 바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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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자. 강준회(姜晙會)는 본관이 진주(晉州)이며, 효행이 남달랐다. 아버지가 병으로 혼절하니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회생시켰고,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니 문득 큰 물고기가 뛰어 올라와 이로써 병을 다스렸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가 위독할 때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야생 학이 약이 된다고 하였는데, 홀연히 창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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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의 남당서원(南塘書院)를 세운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임(士任), 호는 은암(隱庵). 할아버지는 강귀수(姜龜壽)이고, 아버지는 강신(姜信)이다. 셋째 아들 상곡(商谷) 강유(姜瑜)[1597~1668]는 정묘호란 때 화의를 반대하고 항전을 주장하였으며, 1653년(효종 4) 함경남도 병마사로서 각 진의 성을 수축하고 국방 경비를 튼튼히 하며 북벌의 뜻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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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사찰. 1945년 7월에 노노당(老老堂) 대휘(大徽) 선사가 소악사(小岳寺)라고 불리던 절터 위에 초막을 지었다. 1947년에 관음전(觀音殿)을 짓고, 1989년에 설법보전(說法寶殿)을 지었다. 1990년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을 지어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고, 범종각(梵鐘閣)을 지어 범종(梵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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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를 상징하는 시화(市花). 개나리의 강인한 번식력은 시민의 불굴의 투지와 번영을 의미하고 노란색은 평화 애호 및 소박한 시민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른 봄 꽃을 피우는 모습이 개척 정신과 희망찬 미래를 보여준다 하여 제천시를 상징하는 꽃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3m 안팎으로 가지 끝이 밑으로 처지며, 작은 가지는 녹색이지만 점차 회갈색으로 되고 껍질눈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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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울가에 밭이 있었으므로 개밭, 개앗 또는 포전(浦田)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노동리(蘆洞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송학면 포전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송학면 포전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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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암나무 밭이 있었기 때문에 개앗, 개앞, 개밭 또는 포전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후곡과 백석동을 통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포전리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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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개에게 저녁밥을 밤늦게 주는 풍습. 개보름은 음력 정월 15일 달이 뜨기 전까지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 풍습이다. 다양한 대보름 풍속 중 집안에서 키우는 개뿐만 아니라 떠돌이 개에게도 밥을 주지 않고 종일 굶기는 일이 있는데, 이는 제천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제천 지역에서는 정월 보름의 이 풍습을 명확히 ‘개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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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서 우거한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보(德甫), 호는 개산(皆山). 할아버지는 사간원 정언 유격(柳格)이며, 아버지는 사옹원 시정 유시회(柳時會)이다.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길(權吉)의 딸이다. 유석(柳碩)[1595~1655]은 1613년(광해군 5) 사마시를 거쳐 1625년(인조 2)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사간원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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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1517년에 일어난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에 따라 로마 중심의 교황 제도를 왜곡된 교회 제도로 보며, 새롭고 올바른 종교로 나아가기 위한 개신교 교파들이 하나 둘씩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고칠 개(改)와 새롭게 할 신(新)을 써서 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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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울가에 밭이 있었으므로 개밭, 개앗 또는 포전(浦田)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노동리(蘆洞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송학면 포전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송학면 포전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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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암나무 밭이 있었기 때문에 개앗, 개앞, 개밭 또는 포전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후곡과 백석동을 통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포전리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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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암나무 밭이 있었기 때문에 개앗, 개앞, 개밭 또는 포전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후곡과 백석동을 통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포전리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금성면 포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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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개암나무가 많았으므로 ‘개암나무 진(榛)’자을 써서 진리 또는 갱골이라 하였다. 갱골은 개음골이 갬골로 발음이 바뀌어 굳어진 이름이다. 진리는 진동리라고도 부른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금수면 진리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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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개암나무가 많았으므로 ‘개암나무 진(榛)’자을 써서 진리 또는 갱골이라 하였다. 갱골은 개음골이 갬골로 발음이 바뀌어 굳어진 이름이다. 진리는 진동리라고도 부른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금수면 진리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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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거경(巨卿), 호는 소와(笑窩). 나재(懶齋) 윤광령(尹光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윤격(尹格)이고, 할아버지는 윤효술(尹孝述)이며, 아버지는 봉상시 정 윤형(尹珩)이다. 어머니는 이지원(李智遠)의 딸이다. 윤홍리(尹弘离)[1641~?]는 1666년(현종 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678년(숙종 4)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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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조리재에서 발원하여 장락동과 흑석동을 거쳐 고명동에서 두학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검은 빛을 띠는 돌이 많아 ‘거믄돌’ 또는 ‘흑석’이라고 부르는 곳을 통과하는 하천이므로 흑석천이라고 불린다. 이를 ‘거믄돌내’라고도 한다. 조리재에서 발원하여 배재, 당모루, 벌말, 장낙, 새마을, 향교골, 백배미, 양지담, 모답 등을 지나 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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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제천시 청풍면과 금성면의 경계가 되는 국사봉의 동쪽에 자리한 곳이 활산리이다. 활산리는 살미 또는 거산(居山), 활산, 시산(矢山)이라고도 하였다. 활산이라는 지명의 근원형이 되는 우리말은 ‘살미’로 빠르다는 의미의 ‘살’과 산을 의미하는 ‘미’[뫼의 변형]가 결합한 것이다. 마을의 뒤쪽에 위치한 국사봉의 형상이 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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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거이(居易). 아버지는 호조 판서 김길통(金吉通)이다. 김순명(金順命)[1435~1487]은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6년(세조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교서관 정자가 되었다. 이어 승정원 주서·성균관 주부·호조 좌랑·호조 정랑 등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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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재배되는 미나리과의 식물. 당귀는 승검초뿌리, 건귀(乾歸)라고도 하며,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뿌리를 약으로 사용한다. 혈액을 보충하고 순환을 돕는 기능이 있으며 여성의 생리에 관련한 질병에 사용하고, 혈액이 부족하여 생기는 두통, 어지럼증 등에도 사용 가능하다. 타박상의 어혈 제거의 효능도 가지고 있다. 높이는 40~100㎝이며, 줄기는 곧게 자라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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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이(道以), 호는 건재(健齋)·임정(林汀). 정양(鄭瀁)[1600~1668]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택현(鄭澤鉉)이고, 아버지는 정해기(鄭海箕)이다. 아들로 의병에 참여한 정운호(鄭雲灝)[1862-1930]가 있다. 정일원(鄭一源)[1827~1889]은 1870년(고종 7)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숭릉 령(崇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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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건중(建中), 호는 오애(浯涯).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 김류(金瑬)이며, 아버지는 한성부 판윤 김경징(金慶徵)이다. 김진표(金震標)[1614~1671]는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도 검찰사(江都檢察使)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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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축 산성. 견제산성은 월악산 북쪽의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봉우리 중에서 제천시 청풍면과 금성면, 그리고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를 이르는 동산[해발 896.2m]의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금수산의 중록(中麓) 세 봉우리 위에 있고 둘레가 약 5.8㎞쯤 된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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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建築)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전통 건축은 동양 사상으로 집 우(宇)와 집 주(宙)의 우주관으로 성주괴멸(成住壞滅)하는 자연관의 결정체이다. 전통 건축은 시공간적으로 빈 공간의 허(虛)에서 우주와 합일하는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학적인 기(氣)가 충만한 건축물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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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제천 지역에는 현재 10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대부분 남한강 유역의 충적지 위에 강줄기를 따라 분포한다. 이것은 고인돌 축조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농경 사회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청동기 시대 제천 지역 사람들은 남한강 언저리에 마을을 이루면서 살림을 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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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진목리 고인돌은 남한강 언저리에 주변의 산 흐름과 나란히 자리하며, 제천시 청풍면 방흥리에서 진목리로 오는 도로를 따라오다 마을 어귀에 있는 진목고개의 서쪽 기슭에 있다. 마을은 교통이 불편하고 외진 곳으로, 마을 뒤에는 350m 이상의 산들이 연이어 있다. 현재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위치를 찾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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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주포리와 장평리를 연결하는 고개. 주폿고개는 고개가 위치한 주포리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한국지명총람』에는 “주폿고개[장터고개·기너미고개·개너밋재]는 주포리(周浦里)에서 장평리로 가는 고개, 장평 사람들은 주폿고개라고 부르며, 주로 주포리에 주포장이 서므로 장터고개, 또는 윤조원(尹調元)[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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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실리곡마을에서 잣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겨울에 잣을 구한 김효자」는 실리곡마을에서 산신령의 도움으로 잣을 얻은 아들이 부친의 병을 구완했다는 효행담이자 잣[열매]을 얻은 마을이라는 의미로 실리곡이라고 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실리곡은 제천시 청풍면에 위치한 마을이다. 충주댐으로 인해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었으며, 수몰 이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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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축 산성. 견제산성은 월악산 북쪽의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봉우리 중에서 제천시 청풍면과 금성면, 그리고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를 이르는 동산[해발 896.2m]의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금수산의 중록(中麓) 세 봉우리 위에 있고 둘레가 약 5.8㎞쯤 된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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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축 산성. 견제산성은 월악산 북쪽의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봉우리 중에서 제천시 청풍면과 금성면, 그리고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를 이르는 동산[해발 896.2m]의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금수산의 중록(中麓) 세 봉우리 위에 있고 둘레가 약 5.8㎞쯤 된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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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겸(子謙), 호는 회와(晦窩)·겸재(謙齋). 증조할아버지는 정양(鄭瀁)이며, 할아버지는 정보연(鄭普衍)이고, 아버지는 정천(鄭洊)이다. 어머니는 심약명(沈若溟)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이고, 부인은 이교악(李喬岳)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다. 정익하(鄭益河)[1688~1758]는 1717년(숙종 43) 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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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무속 의례인 굿을 주재하는 법사와 보살. 무당은 신령과 단골을 중개하여 인간의 문제를 풀어내는 무속의 전문 직능자이다. 제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당은 현장의 용어를 빌려 ‘법사(法師)’와 ‘보살(菩薩)’로 분류할 수 있다. 법사를 예전에는 경객(經客)이라고 했다. 아직도 노인들의 기억 속에는 경객으로서 ‘정각이’ 또는 ‘정객이’라는 용어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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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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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로(敬魯), 호는 청은(淸隱). 권용일(權用佾)[1884~1971]은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딱밭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장으로 일하던 18세 때 청풍의 일본군 헌병 주재소에서 할당하는 마초(馬草)의 감면을 요구하다가 질책을 받자 헌병들을 구타하고 주재소에 불을 지른 뒤 도망쳤다. 이후 행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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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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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에 있는 고령 박씨 재실. 재실(齋室)은 주로 한 문중 선영의 묘역 아래에 있는 유교 건축이다. 선산의 산록에 있는 재실은 대개의 경우 묘제를 위한 시설물로서, 묘제의 전날 각지에서 모여든 후손들의 숙식을 제공하고 또 묘제에 사용할 제수(祭需)를 장만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한다. 재실은 후손 또는 문중 구성원 간의 공동체 형성과 문중의 세를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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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무당이 굿을 주재할 때 구송하는 무속 경전. 무경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한문 어투의 사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경문, 문서 등이라고도 한다. 무경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탈속한 경전이라야 신비감이 조성되어 주술력이 강하게 발현된다는 믿음과 직접·간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무경은 보통 자연의 이치를 구조화한 오행(五行)이나 불교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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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문(敬文), 호는 청사(晴史).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후손이다. 이형구(李馨久)는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충주의 하곡에 살던 이기진(李起振)의 추천으로 의병 운동에 가담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다시 제천으로 돌아와 방어 전선을 펼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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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보(敬甫), 호는 신당(愼堂). 아들로 임병필이 있다. 임의상(林宜常)[1854~?]은 제천군 길고개[현 제천시 왕암동]에 살았다. 이소응(李昭應)이 주도하는 장담 강회에 출입하며 의병론자들과 뜻을 같이하였고, 1904년(고종 41) 말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견제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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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시호는 문정(文貞). 아버지는 군수 손밀(孫密)이며, 어머니는 정선 군사(旌善郡事) 조온보(趙溫寶)의 딸이다. 손순효(孫舜孝)[1427~1497]는 1453년(단종 1) 생원 때 증광 문과(增廣文科), 1457년(세조 3)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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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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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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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시숙(時叔)·경시(景時), 호는 백암(白巖). 증조할아버지는 윤석보(尹碩輔)이고, 할아버지는 생원 윤덕형(尹德亨)이며, 아버지는 찰방 윤신(尹信)이다. 어머니는 유영백(劉榮伯)의 딸 청풍 유씨(淸風劉氏)이다. 부인은 금극인(琴克仁)의 딸 봉화 금씨(奉化琴氏)이다. 아들로 감사를 역임한 윤조원(尹調元)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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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영천동에 있는 대한경신연합회 소속의 제천시·단양군 지부. 대한경신연합회 제천단양지부는 제천에서 무업에 종사하며 활동하고 있는 법사, 보살 등이 모여 전통 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회원들 간의 소식을 공유하는 등 함께 발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대한경신연합회는 ‘통일 시대를 맞이하여 민족 사관을 고취시키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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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경허(景虛), 호는 남악(南岳)·경암(敬菴). 아버지는 부윤 오운(吳澐)이고, 어머니는 김해 허씨(金海許氏)로 생원 허사렴(許士廉)의 딸이다. 큰아버지 오진(吳溍)에게 입양되었다. 오여벌(吳汝橃)[1579~1635]은 1601년(선조 34) 생원진사시를 거쳐 1603년(선조 36) 문과에 급제하였다. 종부시 직장, 승문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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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은(景殷·敬殷), 호는 경암(敬菴).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 출신이다.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나아갔다가 이후 제천으로 낙향한 뒤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유중교(柳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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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으로 활동한 서상렬의 문집.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충청북도 제천의 을미의병 기병 시 군사로 추대되어 장회 전투를 지휘했고, 유인석의 호좌의진(湖左義陣)에서는 영남소토사를 맡았던 인물이다. 장담의 강학을 이끌던 인물로 유학 및 선비의 실천에 대한 많은 글을 남겼다. 서상렬은 의병 부대를 이끌고 간도를 향하여 북진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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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은(景殷·敬殷), 호는 경암(敬菴).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 출신이다.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나아갔다가 이후 제천으로 낙향한 뒤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유중교(柳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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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 경은사(慶恩寺)는 조선 시대 승려 탄명(坦明)이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도덕암(道德庵) 혹은 백운암(白雲庵)이라고도 불렸다. 사찰에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사찰이 멸실된 터에 신심 있는 불자가 작은 토굴(土窟)을 마련하여 명맥을 이었으나 1939년 화재로 전소(全燒)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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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경재(敬哉), 호는 관수재(觀水齋). 서상무(徐相懋)[1856~1925]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태어났다.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진압군을 일으켜 동학 수령을 체포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제천의 을미 의병에 참여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이끌고 만주 지역으로 건너간 이후 벼슬길에 올라 순릉참봉(順陵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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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농업인, 상공업자 등이 각기 공동으로 이익을 대변하기 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경제 단체가 설립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동일 업계나 동일 조직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경제 단체들은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정리하고 공동으로 이를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다. 각 지역에 결성되어 있는 상공회의소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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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철도와 도로 교통의 요충지인 제천시는 산업화 과정에서 충청북도 북부 내륙 지방과 강원도 광업 지역, 인접 시멘트 공업 지역의 배후지 및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산업 구조면에서 특히 도소매업과 숙박업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시멘트 산업과 관련한 대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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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존(景存). 정익(鄭瀷)[1860~1904]은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자 문중의 여러 인사들과 함께 의진에 참여하여 대장 종사로 활동하였다. 호좌의진이 충주성을 장악하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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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경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6촌 중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의 촌장인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며, 다른 이씨 중에서도 이알평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묘지(墓誌)를 지으면서 신라 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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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초(景初)‚ 호는 행촌(杏村)·습정(習靜).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민학수(閔鶴壽)이다. 민순(閔純)[1519~1591]은 어려서 신광한(申光漢)에게 배웠고‚ 자라서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8년(선조 1)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효릉 참봉(孝陵參奉)에 임명되었다가 학행이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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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택(敬澤), 호는 무곡(茂谷). 아들로 윤지수(尹芝秀)가 있다. 윤기영(尹起榮)[1856~1907]은 원주의 호저면 무장리 출신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잠시 말단 관료를 지냈으며, 귀향 후 동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단발령 이후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원주 출신의 의병들을 이끌고 이강년(李康秊)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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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경허(景虛), 호는 남악(南岳)·경암(敬菴). 아버지는 부윤 오운(吳澐)이고, 어머니는 김해 허씨(金海許氏)로 생원 허사렴(許士廉)의 딸이다. 큰아버지 오진(吳溍)에게 입양되었다. 오여벌(吳汝橃)[1579~1635]은 1601년(선조 34) 생원진사시를 거쳐 1603년(선조 36) 문과에 급제하였다. 종부시 직장, 승문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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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 거주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 증조할아버지는 정진(鄭振)이며,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정언신(鄭彦信)이고, 아버지는 정율(鄭慄)이다. 동생인 정세구(鄭世矩)는 사마시와 문과를 거쳐 감사를 역임하였으며, 아들인 정담(鄭儋)은 사마시를 거쳐 뒤에 영월 군수에 이르렀다. 정세규(鄭世䂓)[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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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현(景賢). 이범규(李範圭)[1874~?]는 민영기가 설립한 중교의숙(中橋義塾)에서 영어·일어 등을 공부하였다. 29세 때에 음직으로 관직에 나가 내부주사가 되었다. 덕수궁 의효전(懿孝殿) 사승(祀丞)을 역임하던 1907년 여름,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자 이를 반대하는 동우회를 조직하여 군중집회를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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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교육 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현(景賢), 호는 덕헌(悳軒). 아버지는 이교채이다. 이희직(李熙直)[1866~1922]은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천성이 강직하고 인덕을 겸하여 물려받은 재산을 기울여 사회사업에 힘썼다. 신교육을 통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여겨 1906년 여름부터 계몽 운동가들이 활발히 전개한 여러 학회를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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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서남쪽 제방에 있는 정자. 정자는 조선 시대 사회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지식 집단의 지적 활동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름 있는 인사나 집안에서는 풍경이 좋은 장소에 정자를 건립하여 시 짓고 노래하며 사귐을 가졌다. 또한 속세에 뜻을 두지 않는 자들의 은둔처가 되기도 하였다. 혼탁한 정치에 미련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나 속세의 영욕에 해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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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회(景晦)·회부(晦夫), 호는 평천재(平泉齋). 세종의 아홉째 서자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의 후손이며, 묵전당(黙全堂) 이시만(李時萬)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참봉을 지낸 이태제(李泰躋)이다. 이창현(李昌顯)[1723~?]은 1750년(영조 26)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세자익위사의 세마(洗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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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권상하(權尙夏)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양성(權養性)이고, 할아버지는 권제응(權濟應)이며, 아버지는 청풍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이다. 어머니는 김재균(金載均)의 딸이고, 부인은 송수연(宋守淵)의 딸이다. 권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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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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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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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란재[일명 계란티] 밑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계란리라 하였고, 가는 골짜기 안이 되므로 가느실 또는 세곡이라고도 하였다. 계란재는 계란리 가느실 동북쪽에서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풍수상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고 한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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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에서 산신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계란리 당나무」는 수산면 계산리에서 젊은 청년이 산신당의 당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 벌을 받았다는 신이담이다. 계란리는 마을이 수몰되기 이전까지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 안에 날을 잡아 산신제와 서낭제를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산신을 서낭신보다 상위 신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산신당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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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계란리 동제는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에서 음력 정월 초사흘 이내에 택일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제일(祭日)이 되면 먼저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고, 다음에 동고사(洞告祀)를 지냈다. 계란리 동제의 연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마을 수몰 이전까지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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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에서 마당바위와 말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계란리 마당바위·말바위의 유래」는 말 발자국이 새겨진 마당바위, 장수가 타고 다니던 말이 돌이 되었다는 말바위, 장수의 할머니가 자결하여 돌이 되었다는 할머니바위 등을 대상으로 전해지는 인물전설이자 암석유래담이다. 그중에서 할머니바위는 1990년대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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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 양천(陽川). 자는 계량(季良), 초당 허엽(許曄)의 후손이다. 허필(許鉍)은 숙종 대에 출사하여 덕천 군수가 되었으나 세상의 어지러움을 비관하여 향리로 돌아왔다.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고 마을 사람들을 화목하게 대하여 칭찬이 높았다. 만년에는 동중추부사가 되었으며, 명환(名宦)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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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백상(伯祥), 호는 계릉(桂陵). 정운호(鄭雲灝)[1892~1930]는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모여 사는 연일 정씨 문중 출신으로, 법부 주사를 지냈다. 향교에 깊이 관여하여 그가 작성한 명륜당 중건기문이 전한다.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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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문(季文)·유도(有道), 호는 구계(癯溪). 증조할아버지는 권주(權霔)이고, 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다. 어머니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초로(李楚老)의 딸이고, 부인은 원만춘(元萬春)의 딸 원주 원씨(原州元氏)이다.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형이고 권혁(權爀)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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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한학자이자 교육가.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치화(致和), 호는 계산(桂山)·소암(昭岩). 할아버지는 정운호(鄭雲灝)이고, 아버지는 정구택(鄭九澤)이다. 정원태(鄭元泰)[1913~1993]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의병 활동을 한 조부와 유지혁(柳芝赫)에게 한학을 배웠다. 1957년 제천에 대제중학교의 전신인 계림중학교를 설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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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인 비봉산(飛鳳山)[532m] 산세가 닭의 형국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달리 계장골, 계장곡(鷄場谷), 제장골, 계산동리(鷄山洞里)라고도 불렀다. 조선 말 청풍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계산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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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계산리에 있던 삼국 시대의 고분. 계산리 고분은 한수면 소재지에서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하는 지방도 597호선을 따라 가다가 청풍초중학교 방향으로 직진하여 제천시 청풍면 신리(新里) 방면으로 들어서면 연곡리와 광의리를 지나 접근할 수 있다. 비봉산[531m]의 북서쪽 하안에 해당하나 현재 수몰되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1979년~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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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계산리에 있던 삼국 시대의 고분. 계산리 고분은 한수면 소재지에서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하는 지방도 597호선을 따라 가다가 청풍초중학교 방향으로 직진하여 제천시 청풍면 신리(新里) 방면으로 들어서면 연곡리와 광의리를 지나 접근할 수 있다. 비봉산[531m]의 북서쪽 하안에 해당하나 현재 수몰되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1979년~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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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계산리에서 아들바위와 딸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계산리 아들바위 딸바위 유래」는 청풍면 계산리에서 늦도록 자식이 없었던 박첨지 내외가 불공을 드려 얻은 아들과 딸이 자라면서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근친상간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에 둘 다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는 기자담이자 암석유래담이다. 계산리는 청풍면에 위치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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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3월 3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삼짇날은 봄철에 3이란 양의 수가 겹치는 길일(吉日)이다. 음력 3월 3일은 봄기운이 만연하여 새싹과 꽃이 피기 시작하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나비가 날아드는 시기이다. 이날은 따뜻해진 날씨에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장을 담아 다시 한 해를 새롭게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다. 또 집밖으로 나가 꽃구경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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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인 비봉산(飛鳳山)[532m] 산세가 닭의 형국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달리 계장골, 계장곡(鷄場谷), 제장골, 계산동리(鷄山洞里)라고도 불렀다. 조선 말 청풍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계산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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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인 비봉산(飛鳳山)[532m] 산세가 닭의 형국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달리 계장골, 계장곡(鷄場谷), 제장골, 계산동리(鷄山洞里)라고도 불렀다. 조선 말 청풍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계산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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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계절별로 각기 만들어 먹는 음식. 계절 음식은 사계절에 나는 식재료를 가지고 각각 특색 있게 만든 음식을 말한다. 이를 시식(時食)이라고도 한다.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농경 위주의 생활을 해온 제천 지방은 고원 분지 지역으로 사계절이 분명한 가운데 식재료 또한 뚜렷이 구별되었다. 계절 음식은 사철 자연의 영향을 받으면서 역사의 변천에 따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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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夏史). 아버지는 화서학파와 교류하던 지평의 선비 안종응(安鍾應)이다. 안승우(安承禹)[1865~1896]는 동향의 화서학파 학자인 이근원(李根元)에게 배우다가 이근원의 스승인 유중교(柳重敎)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장담(長潭)에서 강학하던 유중교가 별세한 이후로는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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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란 산 능선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다. 이를 영(嶺), 현(峴), 재, 치(峙), 티 등의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개는 그 지역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을 통과하는 관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보 시대의 사람들은 비교적 넘기 쉬운 고개를 통하여 단거리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교통의 요지로서 매우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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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와 구룡리를 연결하는 다리. 『여지도서(輿地圖書)』[1765년]에서는 “고교천은 청풍부 치소의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제천현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나와서 북진으로 들어온다. 옛날에는 돌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지고 단지 명칭만 남아 있다. 고교천은 북쪽으로 8리에 있다. 백석동에서 발원하여 나온다”라고 하였다. 이보다 이른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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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 북쪽에서 발원하여 월굴리 높은다리 밑을 지나 청풍면 북진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옛날에 높은 다리[고교]가 있었던 하천이라 하여 고교천(高橋川)이라고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4권 청풍군에 “고교천(高橋川)이 군 북쪽 8리에 있다. 근원이 제천현 경계에서 나와서 북진(北津)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고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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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민물고기를 잡으면서 부르던 노동요. 「고기잡는 소리」는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에서 ‘가재비대’로 민물고기를 잡으면서 부르던 어업 노동요이다. 민물고기는 주로 밤에 많이 잡는데 횃불과 가재비대가 필요하다. 나무를 네 갈래로 잘라서 광솔[솔가지]을 넣고 생 칡으로 엮은 횃불을 켜고 계단식으로 엮은 가재비대를 들고 개울 바닥을 훑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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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정해진 놀이판 위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고누는 땅이나 마루, 목침(木枕) 등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말을 놓거나 옮기며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원시적인 형태로 놀이판의 형태와 그에 따른 놀이 방법이 다양하여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널리 하던 놀이이다. 상대편 말을 수를 써서 포위하거나 떼어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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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정해진 놀이판 위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고누는 땅이나 마루, 목침(木枕) 등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말을 놓거나 옮기며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원시적인 형태로 놀이판의 형태와 그에 따른 놀이 방법이 다양하여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널리 하던 놀이이다. 상대편 말을 수를 써서 포위하거나 떼어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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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고등학교는 일반계와 전문계로 구분할 수 있다. 제천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은 1948년 제천고급중학교의 인가로부터 시작되었고, 1990년의 경우 5개의 일반계 고등학교가 개설 운영되기도 했지만, 2010년까지 3개교로 줄어들었다. 전문계 고등학교 교육은 1946년 6년제 제천농업중학교의 설립에서 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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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고등학교는 일반계와 전문계로 구분할 수 있다. 제천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은 1948년 제천고급중학교의 인가로부터 시작되었고, 1990년의 경우 5개의 일반계 고등학교가 개설 운영되기도 했지만, 2010년까지 3개교로 줄어들었다. 전문계 고등학교 교육은 1946년 6년제 제천농업중학교의 설립에서 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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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예부터 고인돌과 같은 큰 바위가 있어 고라미, 고래미, 고암이라고 하였다. 한자의 뜻으로 보아도 ‘옛 돌’이지만 이두식으로 읽어도 ‘고인돌’의 ‘고’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말 제천군 현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도상리(道峠里)·운전리(雲田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읍내면 고암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고암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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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예부터 고인돌과 같은 큰 바위가 있어 고라미, 고래미, 고암이라고 하였다. 한자의 뜻으로 보아도 ‘옛 돌’이지만 이두식으로 읽어도 ‘고인돌’의 ‘고’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말 제천군 현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도상리(道峠里)·운전리(雲田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읍내면 고암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고암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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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제천 지역은 내제군(奈堤郡)에서 제주(堤州)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1세기에는 원주목과 충주목으로 갈라져서 속하게 되었다. 고려 시대 잦은 외세의 침입은 제천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충주와 제천 사이 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내제군을 제주로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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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정동(正東)에 위치한 고명산[574m]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삼거리[일명 세거리]·증계리(曾溪里)·한천리(寒泉里)·송현리(松峴里)와 백양동(白陽洞) 일부를 통합하여 읍내면 고명리가 되었다. 1940년 제천읍에 편입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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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고명동 소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고명동 소재 서낭제는 제천시 고명동 소재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14일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1970년대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복원하여 계승하고 있다. 고명동 소재 서낭제는 마을에 기찻길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신당(神堂)은 소나무와 서낭당이 결합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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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대가 높고 오치봉수와 응봉봉수가 연접하여 있어 봉수 불빛이 밝게 비치는 곳이라 고명 또는 고명동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삼거리·증계리·한천리·송현리와 백양동 일부를 통합하여 제천군 읍내면 고명리가 되었다가 곧이어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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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대가 높고 오치봉수와 응봉봉수가 연접하여 있어 봉수 불빛이 밝게 비치는 곳이라 고명 또는 고명동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삼거리·증계리·한천리·송현리와 백양동 일부를 통합하여 제천군 읍내면 고명리가 되었다가 곧이어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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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군 수산면 오티리 북쪽에서 발원하여 고명리를 거쳐 청풍면 단리 서당말 남쪽에서 청풍호로 흘러드는 하천. 고명천은 수산면 고명리를 흐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천군 수산면 오티리의 북사면에서 시작된 하천이 윗말을 지나 고명리에 이르러 고명천이라는 이름을 얻고 하넘을재에서 시작하여 중터말을 지나는 하천과 합류하면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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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 무덤. 고분은 고대 사회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문헌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분 자료가 전하는 당시의 문화 양상은 역사 해석에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제천 지역의 고분은 1980년대 초반 충주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많은 사례가 확인되었다. 당시 청풍면 양평리와 송학면 도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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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 고산동마을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고산동마을 남서쪽 야산의 동쪽 사면에 위치한 작은 절터이다.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 고산동마을에 들어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남쪽으로 150m쯤 가다보면 마을의 끝 부분에 다다르게 되고, 이곳의 개울을 중심으로 양편에 민가가 한 채씩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 건물은 ‘대용사’라는 현대식 사찰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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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고산사는 신라 헌강왕 때 창건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혜소대사가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이르러 1653년(효종 4) 송계대사가 중수하였다 한다. 그러나 사역 내에서 수습되는 기와나 토기·자기편들은 모두 조선 시대의 것이므로 그 이전에 창건과 중수가 이루어졌다는 전언은 신빙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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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고산사 응진전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석조 관음보살 좌상. 고산사는 덕산면 신현리 와룡산에 있는 법주사의 말사이다. 사찰에는 응진전,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는데, 고산사 응진전에 제천고산사 석조 관음보살 좌상이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좌우에는 나한 6구를 배치하였다. 1998년 12월 31일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194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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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고산사 응진전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석조 나한상군. 제천 고산사 석조 나한상군은 고산사 응진전에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돌로 조성되었다. 나한이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우침을 얻은 수행자의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아라한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6가지 신통력과 8가지 해탈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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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자작동에 있는 생활 친화적인 문화 공간. 두학초등학교 자작분교장은 1993년에 폐교된 학교이다. 2007년 문화관광부 소속으로 전국문화원연합회에서 주관한 ‘2007년도 주민 밀집 지역 및 문화 소외 지역 대상 생활 친화적 문화 공간 조성 희망 기관 모집 공고’에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천지부가 선정되면서 자작분교장[예빛마을 소유, 대표 윤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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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와 봉양읍 학산리를 거쳐 부산과 춘천 간을 연결하는 고속 도로. 고속국도 55호선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을 기점으로 하여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인터체인지를 종점으로 남북을 잇는 도로이다.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충청북도 및 강원도 등 중앙 내륙 지방을 관통하기 때문에 중앙고속도로라고 한다. 1970년대 초반 국가 기간 고속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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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에 있는 농공 단지. 고암테크노빌은 지역 농업의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지역 생산 농·특산품의 고부가가치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지역 농업의 생산 경쟁력을 강화하며, 과학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지역 농업 생산 기반[지역 농업 기반의 첨단화, 유통 시설의 확충 및 농업 정보화]을 구축하기 위하여 제천시가 건립하였다.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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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예부터 고인돌과 같은 큰 바위가 있어 고라미, 고래미, 고암이라고 하였다. 한자의 뜻으로 보아도 ‘옛 돌’이지만 이두식으로 읽어도 ‘고인돌’의 ‘고’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말 제천군 현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도상리(道峠里)·운전리(雲田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읍내면 고암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고암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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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 무덤실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 떼. 제천시 고암동 무덤실마을 뒤쪽에 위치한다. 의림지 사거리에서 영월 방면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제천시 고암동 무덤실마을이 나타난다. 무덤실마을 중앙 부분 남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능선에 해당한다. 마을 서쪽이나 오른쪽 과수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일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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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에서 발원하여 화산동에서 장평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고암천이 흐르는 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은 고인돌과 같은 큰 바위가 있어 고라미, 고래미, 고암이라 하였으며 이 지역에 흐르는 하천을 고암천이라 부른다. 제천시 고암동과 송학면 사이 넓고 두텁게 형성된 풍화 지형 상에 지경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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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제천 지역에는 현재 10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대부분 남한강 유역의 충적지 위에 강줄기를 따라 분포한다. 이것은 고인돌 축조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농경 사회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청동기 시대 제천 지역 사람들은 남한강 언저리에 마을을 이루면서 살림을 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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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향교 터.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 고산동마을 동쪽에는 남동쪽에서부터 북서쪽으로 산줄기가 뻗어내리면서 뻗은 가지능선이 있다. 이 가지능선의 정상부[254.7m]에서 약간 내려온 동사면 상단에 고치향교 터가 있었다고 하며, 동쪽 골짜기가 향교골이다. 지표 조사나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현재의 상태로는 배치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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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연지(延之), 호는 곡운(谷雲). 할아버지는 김상헌(金尙憲)이며, 아버지는 제천 현감과 청풍 군수를 역임한 김광찬(金光燦)이다. 김수항(金壽恒)이 동생이다. 김수증(金壽增)[1624~1701]은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1652년(효종 3)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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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청풍부사 김수증의 문집. 김수증(金壽增)[1624~1701]의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곡운(谷雲), 자는 연지(延之)이다. 할아버지는 김상헌(金尙憲)이다. 성리학에 심취하여 북송의 성리학자들과 주자의 성리서를 탐독하였다. 김수증의 조카인 김창흡(金昌翕)이 편차를 정하고 서문을 쓴 초고를 손자인 김치겸(金致謙)이 경상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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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 마을에서 붉은 흙이 많이 났다고 하여 적덕(赤德)이라 하였다가 뒤에 적덕(積德)으로 바뀌었다. 1914년 경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적덕(積德)’으로 수록되어 있다. 마을이 주변 골짜기 넓은 터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골말[일명 곡촌]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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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소량 발견되는 광물질 한약재. 곱돌은 활석(滑石), 액석(液石), 탈석(脫石)이라고도 하며, 규산염류(硅酸鹽類)의 광물질 덩어리로서 한약재로 쓰이고 있다.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방광에 염증이 있거나 몸 안에 열 기운이 있을 때 열을 식혀 주면서 노폐물을 배설시키는 성질이 있다. 주로 방광염, 요도염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차가운 성질은 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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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추월헌(秋月軒).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이태정(李泰貞)이며, 부호군 이태형(李泰亨)에게 입적되었다. 이간(李柬)[1677~1727]은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팔학사(八學士) 중 한 사람이다. 1710년(숙종 36) 천거되어 장릉 참봉(莊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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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매(公梅), 호는 벽하(碧河). 원주 안창마을에 세거하던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자손이다. 김사정(金思鼎)[1869~1942]은 진사를 지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김백선(金伯善) 등이 안창에서 의병에 가담하였을 때 사위인 이춘영을 매개로 하여 문중 대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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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공보(公輔), 호는 염헌(恬軒). 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증직된 임중(任重)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이갱생(李更生)의 딸이다. 임상원(任相元)[1638~1697]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65년(현종 6)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평안도 도사를 지냈으며, 1671년(현종 12) 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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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공사(孔嗣). 단양군(丹陽君) 장효원(張孝元)의 후손이다. 장봉남(張奉男)은 임진왜란 때 공을 많이 세웠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반란이 일어나 왕이 공주로 피난을 가게 되자 자천하여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 장만(張晩)을 도와 이를 진압하였다. 이때의 전공으로 충훈부 사에 이르렀다. 이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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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작은 단위의 천주교회.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단위의 천주교회를 말한다. 천주교에서는 본당 사목구에 속해 있는 지역을 다시 작은 구역별로 묶어 공소를 정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으며 다만 일정한 때를 정해 미사를 지낸다. 제천 지역 및 천주교 원주교구 내에는 지역적, 교통적 여건상 공소가 많다. 2011년 현재 남천동 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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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거이(居易). 아버지는 호조 판서 김길통(金吉通)이다. 김순명(金順命)[1435~1487]은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6년(세조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교서관 정자가 되었다. 이어 승정원 주서·성균관 주부·호조 좌랑·호조 정랑 등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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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시민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해 마련한 휴식 공간. 공원은 자연 공원과 도시 공원으로 나누어지는데 자연 공원은 다시 국립 공원과 도립 공원으로, 도시 공원은 근린공원, 어린이 공원, 쌈지 공원, 기타 공원으로 나누어진다. 2009년 현재 제천시 지역의 도시 공원은 모두 78곳이며 면적 243만 6147㎡에 시설화된 면적은 19만 50㎡이다.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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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충북선의 무배치 간이역. 공전역은 1958년 5월 15일 충주~봉양 간 충북선 단선의 개통으로 인하여 1959년 1월 1일 충청북도 제천군 봉양면 공전3리 식포동(食浦洞)에 역사를 신축하면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충북선의 동량역~삼탄역~공전역 구간은 험준한 산세와 협곡으로 인하여 충청북도의 동강이라 불리는 산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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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이름은 원공전으로, 조선 시대 국가 소유의 밭[公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소시랑리와 장담리 등을 통합하여 공전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공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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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공전리 당고사는 자양영당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세워 놓은 할아버지, 할머니 솟대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엿샛날 밤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서낭제 형식의 제사이다. 이 솟대를 공전리 솟대, 공전리 촛대 등이라고 부른다. 공전리의 동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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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공전리 당고사는 자양영당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세워 놓은 할아버지, 할머니 솟대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엿샛날 밤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서낭제 형식의 제사이다. 이 솟대를 공전리 솟대, 공전리 촛대 등이라고 부른다. 공전리의 동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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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2리에 있는 미륵보살을 모신 신당 공전리 미륵당이 공전2리에 서 있는 이유를 전하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한 장수가 두 개의 미륵을 들고 지나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장수가 일어나면서 “에라 이건 니 자리다.” 하면서 넘어진 곳에 미륵을 그대로 세워두었다고 한다. 한편 백운면에 사는 사람이 공전리 미륵당을 찾아 정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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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2리에 있는 미륵보살을 모신 신당 공전리 미륵당이 공전2리에 서 있는 이유를 전하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한 장수가 두 개의 미륵을 들고 지나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장수가 일어나면서 “에라 이건 니 자리다.” 하면서 넘어진 곳에 미륵을 그대로 세워두었다고 한다. 한편 백운면에 사는 사람이 공전리 미륵당을 찾아 정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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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공전리 당고사는 자양영당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세워 놓은 할아버지, 할머니 솟대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엿샛날 밤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서낭제 형식의 제사이다. 이 솟대를 공전리 솟대, 공전리 촛대 등이라고 부른다. 공전리의 동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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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공전리 당고사는 자양영당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세워 놓은 할아버지, 할머니 솟대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엿샛날 밤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서낭제 형식의 제사이다. 이 솟대를 공전리 솟대, 공전리 촛대 등이라고 부른다. 공전리의 동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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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공전리 당고사는 자양영당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세워 놓은 할아버지, 할머니 솟대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엿샛날 밤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서낭제 형식의 제사이다. 이 솟대를 공전리 솟대, 공전리 촛대 등이라고 부른다. 공전리의 동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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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공전리 당고사는 자양영당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세워 놓은 할아버지, 할머니 솟대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엿샛날 밤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서낭제 형식의 제사이다. 이 솟대를 공전리 솟대, 공전리 촛대 등이라고 부른다. 공전리의 동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생기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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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2리에 있는 미륵보살을 모신 신당 공전리 미륵당이 공전2리에 서 있는 이유를 전하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한 장수가 두 개의 미륵을 들고 지나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장수가 일어나면서 “에라 이건 니 자리다.” 하면서 넘어진 곳에 미륵을 그대로 세워두었다고 한다. 한편 백운면에 사는 사람이 공전리 미륵당을 찾아 정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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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2리에 있는 미륵보살을 모신 신당 공전리 미륵당이 공전2리에 서 있는 이유를 전하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한 장수가 두 개의 미륵을 들고 지나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장수가 일어나면서 “에라 이건 니 자리다.” 하면서 넘어진 곳에 미륵을 그대로 세워두었다고 한다. 한편 백운면에 사는 사람이 공전리 미륵당을 찾아 정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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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절터. 시랑산의 동북쪽 산자락 8부 능선 상에 넓게 형성된 계곡부에 남향으로 자리한 절터이다. 공전사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산2번지 절터골마을의 서쪽에 있는 경작지 일대이다. 제천시 봉양읍 공전2리 소시랑마을에서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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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공제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한 저수지로서, 1945년 착공하여 같은 해 준공하였다. 유효 저수량은 8만 4,300㎥, 제당 높이는 3.2m, 제당 길이는 100m이다. 유역 면적은 18만 ㎡, 만수 면적은 7,000㎡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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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조(公造), 호는 연봉(蓮峯). 증조할아버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이계장(李繼長)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이언침(李彥忱)이며, 아버지는 영응선생(永膺先生) 이지남(李至男)이다. 어머니는 승지 정원(鄭源)의 딸이다. 이기설(李基卨)[1556~1622]은 박지화(朴枝華)[1513~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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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직(公直), 호는 단애(丹崖). 증조할아버지는 강양군(江陽君) 이숙(李潚)이며, 할아버지는 희안 군수(喜安郡守) 이집(李輯)이고, 아버지는 금천 군수(錦川郡守) 이감(李瑊)이다. 어머니는 김윤장(金允章)의 딸로 서흥 김씨(瑞興金氏)이다. 부인은 조언충(趙彦忠)의 딸로 배천 조씨(白川趙氏)이다. 이경중(李敬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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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전투에 참가한 관동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共振), 호는 중남(重南). 일명 이준영(李竣榮) 이인영(李麟榮)[1867~1909]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원주에서 봉기하여 주로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과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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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서 공을 치며 즐기는 놀이. 장치기는 청년들이 나무 막대기와 공을 만들어 편을 갈라 공을 치며 노는 신체단련형 민속놀이이다. 지역에 따라 이를 ‘봉희(俸戱)’, ‘공치기’, ‘얼레공치기’, ‘타구놀이’, ‘장채놀이’ 등이라고도 한다. 겨울철에 남자들이 주로 놀던 장치기는 세 가지의 놀이 방식이 있다. 첫째 장대로 공을 쳐서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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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칠(公七), 호는 학음(鶴陰). 학고(鶴皐) 김이만(金履萬)의 6세손이다. 김휘두(金輝斗)[1831~1907]는 진잠 현감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문집으로 『학음선생유집(鶴陰先生遺集)』이 전한다. 문집에 수록된 시문에서는 외국과의 수교나 문물 수용 등 서구의 근대 문명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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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공헌(公獻), 호는 상곡(商谷). 증조할아버지는 강구수(姜龜壽)이고, 할아버지는 강신(姜信)이며, 아버지는 강천민(姜天民)이다. 어머니는 임즙(林楫)의 딸이며, 부인은 이운(李蕓)의 딸로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강유(姜瑜)[1597~1668]는 제천시 두학동 출신으로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었으며,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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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공후(公厚). 이필근(李弼根)[1844~?]은 유인석(柳麟錫)이 춘천에서 제천으로 이주한 후 거처하였던 구곡마을에 살았다. 선공감 감역을 역임한 전직 관료로 장담에서 이루어지는 강회에 세 아들을 보내 배우게 하고, 자신도 향음례나 강회에 참석할 만큼 화서학파 선비들과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다.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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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동현동과 신백동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동현과선교는 고암천을 가로지르는 기존의 월백교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교량이다. 월백교는 학교 앞 도로인 데다 1일 기준 시멘트 수송 차량 등 1만여 대의 각종 차량이 통행하여 사고 위험이 높고, 태백선을 건너는 위험 구간을 지나기 때문에 1995년 동현과선교를 설치하면서 인도교로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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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권상하(權尙夏)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양성(權養性)이고, 할아버지는 권제응(權濟應)이며, 아버지는 청풍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이다. 어머니는 김재균(金載均)의 딸이고, 부인은 송수연(宋守淵)의 딸이다. 권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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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관광은 사람들이 휴식, 교양, 위락, 스포츠 등을 목적으로 일상 생활권을 벗어나 일시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심신의 변화를 추구하고 다른 지역의 자연, 풍속, 제도 등을 감상하고 배우고 견문하는 행위로 넓은 의미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의 한 형태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관광 사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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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간행된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원호의 문집. 원호(元昊)의 본관은 원주이며, 호는 무항(霧巷)·관란(觀瀾), 자는 자허(子虛)이다. 충청북도 제천에 관란정을 짓고 단종을 그리는 등 충절을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원호가 계유정란 당시 자신의 글을 모두 없앤 것을 후손들이 애석하게 여겨 흩어진 글을 모아 『관란선생유고(觀瀾先生遺稿)』를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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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허(子虛), 호는 무항(霧巷)·관란(觀瀾), 시호는 정간(貞簡). 시중 원홍필(元弘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별장(別將) 원헌(元憲)이다. 원호(元昊)는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문종 때에는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게 되자, 사직하고 고향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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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백사 이항복이 충청북도 제천시의 관란정을 보고 지은 한시. 관란정(觀瀾亭)은 충청북도 제천과 강원도 영월의 접경지대인 평창강 절벽 위에 있어 제천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일설에 의하면 1845년(헌종 11)에 조선 초기의 생육신 원호(元昊)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강 변에 관란정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관란정(觀瀾亭)」을 보면 백사(白沙) 이항복(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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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경재(敬哉), 호는 관수재(觀水齋). 서상무(徐相懋)[1856~1925]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태어났다.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진압군을 일으켜 동학 수령을 체포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제천의 을미 의병에 참여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이끌고 만주 지역으로 건너간 이후 벼슬길에 올라 순릉참봉(順陵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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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관여(觀汝), 호는 회당(悔堂)·학림(鶴林). 박정수(朴貞洙)[1859~1917]는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난 화서학파의 선비이다. 영월의 주천면 금마리, 단양의 석교, 제천의 청풍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신 방법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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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습관적인 말. 관용어는 제천을 표현하거나 제천과 관련된 말이 포함되어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다. 넓은 의미의 관용어는 속담, 격언, 사자성어, 관용구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그 중에서도 관용구만을 뜻하기도 한다. 관용구는 ‘식은 죽 먹기’처럼 한 언어에서 의미가 전성되어 특정한 의미로 굳어진 것을 뜻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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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 수산리에 걸쳐 있는 월악산의 주봉.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건설부 고시 제565호로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동식물과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연 문화유산이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리었으며 소사(小祀)를 지냈다. 풍수상 음기가 강한 여성 산이라 한다. 주봉인 월악영봉(月岳靈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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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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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와 도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갓고개는 충주댐 수몰 전 평등산 서남쪽으로 위치한 고갯마루였다. 청풍에서 수산으로 왕래하는 지름길로 행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여기에는 성황당과 성황목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오가면서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도 있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제천시 청풍면 도리의 강변 길이 수몰되자 지금의 물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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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문외리(東門外里)의 ‘동(東)’자와 입읍현(立泣峴)의 ‘현(峴)’자를 따서 동현동(東峴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읍부리가 되었고, 1946년 동문외리·입읍현·백야리(白夜里)를 통합하여 동현동이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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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며,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송곡(松谷) 조복양(趙復陽)의 딸 풍양 조씨(豐壤趙氏)와 혼인하였다.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1673년(현종 14) 춘당대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16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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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와 도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갓고개는 충주댐 수몰 전 평등산 서남쪽으로 위치한 고갯마루였다. 청풍에서 수산으로 왕래하는 지름길로 행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여기에는 성황당과 성황목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오가면서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도 있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제천시 청풍면 도리의 강변 길이 수몰되자 지금의 물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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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와 도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갓고개는 충주댐 수몰 전 평등산 서남쪽으로 위치한 고갯마루였다. 청풍에서 수산으로 왕래하는 지름길로 행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여기에는 성황당과 성황목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오가면서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도 있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제천시 청풍면 도리의 강변 길이 수몰되자 지금의 물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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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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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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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시인 학고 김이만이 지은 한시. 벼슬살이를 제외하고는 인생의 대부분을 충청북도 제천에서 보낸 학고(鶴皐) 김이만(金履萬)[1683~1759]은 의림지(義林池)를 즐겨 찾아 자신의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관폭대(觀瀑臺)」는 의림지에서 물이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장관을 보면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씻어 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칠언 절구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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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 의례는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 또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시기의 의례, 그리고 사후(死後)에 산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평생 의례는 주로 관혼상제(冠婚喪祭)로 통칭되어 오다가 최근 그동안 간과해 오던 출산 의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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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 의례는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 또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시기의 의례, 그리고 사후(死後)에 산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평생 의례는 주로 관혼상제(冠婚喪祭)로 통칭되어 오다가 최근 그동안 간과해 오던 출산 의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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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이규현(李奎顯)[1874~1951]은 단양 품달마을에 살았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숙부이면서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에게 배웠고, 후에 장담에 출입하면서 유중교와 유인석(柳麟錫)에게도 배웠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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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광물을 채취하고 물건을 제조하는 산업. 광업이란 지하 및 지표에서 고체, 액체 및 기체 상태의 천연 광물을 채굴·채취·추출하는 산업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공업이란 원재료[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성질이 다른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 활동을 말한다. 제천에서는 시의 외곽에 다양한 종류의 광산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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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광국(光國). 이세영(李世榮)[1869~1951]은 지금의 제천시 두학동에 살았다. 단발령 이후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05년(고종 42) 정운경(鄭雲慶)이 봉기할 때도 협조하였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에는 이강년(李康秊)이 재건한 호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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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교동에 있는 전통 공예 빗자루 제조업체. 광덕빗자루는 잊혀져가는 전통 빗자루를 실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장식 소품으로도 사용하기 위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전통 빗자루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설립자인 이동균이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에게 기술을 조금씩 배우다가 1965년부터 광덕빗자루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1988년 이전까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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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이규현(李奎顯)[1874~1951]은 단양 품달마을에 살았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숙부이면서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에게 배웠고, 후에 장담에 출입하면서 유중교와 유인석(柳麟錫)에게도 배웠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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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동쪽과 서쪽에 남한강 강변의 넓은 들이 펼쳐져 지형이 평평하고 넓었으므로 광의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광의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청풍면 광의리가 되었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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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광의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광의리 고인돌은 처음 조사할 당시 청풍면 소재지에서 충주 방향으로 나 있는 지방도 597호선 도로 근처에 있었다. 이곳은 남한강에서 약 130m 떨어진 곳으로 남한강 언저리의 충적 지대이며, 바로 옆에는 포도밭이 있었다. 현재는 수몰되어 위치를 찾을 수 없다. 충주댐 수몰 지역 조사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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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광의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광의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광의리 강화마을 중간쯤에 위치한 큰서낭당과 솔무정에 있는 서낭당[동네서낭]에서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제의는 큰서낭당의 서낭제, 솔무정 서낭당의 서낭제 순으로 진행되었다. 광의리 동제에 대한 연원을 구체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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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만수봉 동사면에서 발원하여 수산면 수산리를 거쳐 한수면 탄지리에서 청풍호로 흘러드는 하천. 광천은 어래산[815m] 서쪽에 있는 너부내[넓은내]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그 뜻은 어래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북서류하여 합류하는데 그 지점이 다른 지역보다 넓어서 붙여진 것이다. 광천은 월악산 국립공원의 동쪽 사면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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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광천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광천리 동제는 제천시 덕산면 광천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밤에 마을의 안녕과 농작물의 풍요를 기원하며 산신제, 서낭제 순으로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광천리 동제에서 제물로 소고기를 쓰는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았던 50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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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 느티나무 괴(槐)자를 써서 괴실 또는 괴곡이라 하였다. 조상거리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 1,200년으로 추정되며 마을의 수호신 구실을 하고 있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수산면 괴곡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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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도둑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괴곡리 도둑바위 유래」는 임진왜란 때 도둑이 된 사람을 신선이 변신한 할머니가 쫓아냈는데, 도둑들이 머물던 곳을 도둑바위, 도둑발자국, 도둑굴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도둑퇴치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수산면 괴곡리에서 계란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도둑들과 관련한 바위와 동굴 등이 위치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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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괴곡리 동제는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중동[조상거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에 길일을 받아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괴곡리 동제의 연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마을 수몰 이전까지 동제를 지내왔다. 마을 주민들은 ‘동고사’라고 주로 불렀다. 그러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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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 느티나무 괴(槐)자를 써서 괴실 또는 괴곡이라 하였다. 조상거리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 1,200년으로 추정되며 마을의 수호신 구실을 하고 있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수산면 괴곡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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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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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과거 향교(鄕校)가 있던 곳이므로 향교골, 교동(校洞), 향미골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읍부리(邑部里)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제천면 읍부리가 되었다. 1940년 제천면이 제천읍으로 승격함과 아울러 대성정(大成町)이 되었고, 1949년 동제(洞制) 실시로 대성정을 교동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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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과거 향교(鄕校)가 있던 곳이므로 향교골, 교동(校洞), 향미골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읍부리(邑部里)가 되었고, 1917년 제천군 제천면 읍부리가 되었다. 1940년 제천면이 제천읍으로 승격함과 아울러 대성정(大成町)이 되었고, 1949년 동제(洞制) 실시로 대성정을 교동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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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교동에 있는 수령 약 300년의 보호수. 음나무는 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으로 충청북도 전역에 분포하며, 일명 해동피나무 또는 엄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25m에 달하며 크고 밑이 퍼진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둥글며, 가장자리가 5~9개로 길게 갈라지고 열편(裂片)에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는 잎보다 길다. 꽃은 7~8월 황록색으로 피고, 복산형꽃차례[復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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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1590년(선조 23) 청풍향교가 물태리에서 옮겨 오게 되면서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교동 또는 교동리라 부르게 되었다. 달리 향교골 또는 향곳골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말 청풍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금성면 교리가 되었고, 1947년 1월 31일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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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지역에 분포한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2008년 제천시 지역 교량은 총 204개소에 길이는 1만 8328.2m로 이 가운데 고속도로에는 50개소 ,093.3m, 국도는 38개소 4638.8m, 지방도는 27개소 1687.1m, 시·군도는 89개소 3909.0m가 분포한다. 제천시 지역의 교량은 시기별로 보면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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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1590년(선조 23) 청풍향교가 물태리에서 옮겨 오게 되면서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교동 또는 교동리라 부르게 되었다. 달리 향교골 또는 향곳골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말 청풍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금성면 교리가 되었고, 1947년 1월 31일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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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에 있는 국민 관광지. 1999년도에 수립된 ‘관광 비전 21’에 의하여 청풍호반권의 명소화 사업, 수상 레포츠 단지 조성 사업이 계획되었고, 2002년도에는 제3차 충청북도 권역별 관광 개발 계획에 포함된 금월봉지구, 교리지구, 능강지구, 계산지구, 제천온천지구 등의 5개 지구에 만남의 광장, KBS 제천 촬영장 등을 추가한 7개 관광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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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교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교리의 마을 입구에 있는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날을 택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교리 동제는 그 연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기 이전까지 유지되어 왔다. 정월 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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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 탑골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절터. 교리 절터는 남한강[청풍호]이 인접한 탑골의 암반 지대와 골짜기에 평탄 대지를 조성하여 고려 시대에 건립된 사찰의 터이다. 지표상에서 수습되는 기와편, 토기편, 도자기편을 볼 때 고려 전기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인 18세기경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제천에서 청풍으로 가는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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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제천 지역의 경우 해방 이전에는 초등 교육이 겨우 보급되는 상황에서 일반 중등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천여자실과여학교와 제천공립농업학교의 설립으로 실업 교육이 시작되어 운영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제천의 교육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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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아이들이 풀을 가지고 노는 놀이. 풀쌈 놀이는 아이들이 산이나 들에서 뜯어온 풀잎이나 줄기를 비교하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이를 지방에 따라서는 ‘풀겨루기’라고도 한다. 각종 문헌에서 ‘초전(草戰)’, ‘초희(草戱)’, ‘투초(鬪草)’, ‘교전희(較全戱)’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풀쌈 놀이는 오래전부터 손쉽게 즐기던 놀이라는 것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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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은 사람과 장소 간 물적 이동이며 물적 이동은 교통수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 수상 교통, 항공 교통으로 나누어지고, 육상 교통기관은 다시 도로, 자동차 교통, 철도 교통 등으로 나누어진다. 제천시 지역의 교통로 개통은 신라 시대까지 소급된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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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우리나라에는 1987년만 해도 기독교 교회들이 무려 13개 교파 75분파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파 통합 및 분파의 통합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제천 지역의 기독교 교회는 10개 교파 17개 분파 및 소속 불명 10개 분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제천의 감리교회 교단으로는 1904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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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문(季文)·유도(有道), 호는 구계(癯溪). 증조할아버지는 권주(權霔)이고, 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다. 어머니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초로(李楚老)의 딸이고, 부인은 원만춘(元萬春)의 딸 원주 원씨(原州元氏)이다.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형이고 권혁(權爀)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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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꾸불꾸불한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굴골 또는 굴곡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구곡(九谷, 九曲)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상구곡천[일명 상굴골]과 하구곡[일명 하굴골]으로 나뉘어 있었다. 1914년 굴탄리[일명 굴단리]를 통합하여 구곡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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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홉 구비가 진 냇가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구론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가 구룡(九龍)으로 바뀌었다. 1914년 경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九谷里[구실]’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자감동[일명 잘개밋골]·장터[일명 장터거리, 새장터거리]·한내[일명 한천(寒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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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와 구곡리를 연결하는 다리. 제천시 봉양읍 구곡리의 지명을 따서 구곡교라 이름 붙였다. 2차선 교량으로 총연장은 105m, 총 폭은 9.5m, 유효 폭은 8.1m이다. 높이는 5.6m, 경간 수는 7개, 최대 지간장은 15m이며, 설계 하중은 DB-24톤, 통과 하중은 43.2톤이다. 상부 구조는 RC슬라브교이며, 하부 구조는 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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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구곡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구곡리 동제는 제천시 수산면 구곡리의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앞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 자정 무렵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뒤에 자리하고 있었던 서낭당이 1980년대 후반에 일부가 허물어졌다. 이에 서낭당을 크게 개축하려는 논의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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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 제천에서 충주 방면으로 국도 38호선을 따라가다 제천시 봉양읍을 지나면 왼쪽으로 구곡리 및 마곡리로 접어드는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7㎞쯤 가면 구곡리에 이른다. 구곡리 선돌은 제천시 봉양읍 구곡리에서 공전리로 넘어가는 길가 마을 어귀의 민가 앞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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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꾸불꾸불한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굴골 또는 굴곡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구곡(九谷, 九曲)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상구곡천[일명 상굴골]과 하구곡[일명 하굴골]으로 나뉘어 있었다. 1914년 굴탄리[일명 굴단리]를 통합하여 구곡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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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홉 개의 골짜기 또는 아홉 마을이 있으므로 구실 또는 구곡이라 하였다. 아홉 마을은 논골, 밋골, 부르실, 새알재, 아랫집골, 이녀골, 안골, 점골, 집골 등이다. 조선 말 청풍군 근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구곡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구곡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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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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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와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에 걸쳐 있는 산. 봉우리 꼭대기의 바위 형세가 거북과 같아 구담봉 또는 구봉이라 하였다.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구담(龜潭)은 청풍부 치소에서 동쪽으로 30리에 있으며, 단양과 경계이다. 금석을 깎아지른 듯이 웅장하게 우뚝 솟았고, 남쪽의 언덕 아래는 한 조각의 땅도 없으니 가히 들어 올렸다고 할 만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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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와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에 걸쳐 있는 산. 봉우리 꼭대기의 바위 형세가 거북과 같아 구담봉 또는 구봉이라 하였다.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구담(龜潭)은 청풍부 치소에서 동쪽으로 30리에 있으며, 단양과 경계이다. 금석을 깎아지른 듯이 웅장하게 우뚝 솟았고, 남쪽의 언덕 아래는 한 조각의 땅도 없으니 가히 들어 올렸다고 할 만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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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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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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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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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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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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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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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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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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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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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홉 구비가 진 냇가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구론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가 구룡(九龍)으로 바뀌었다. 1914년 경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九谷里[구실]’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자감동[일명 잘개밋골]·장터[일명 장터거리, 새장터거리]·한내[일명 한천(寒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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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림(朴用霖)이 제천 구룡마을의 풍경을 노래한 10수의 칠언 절구 한시. 박용림[1873~1954]은 제천 출신의 문인으로, 「구곡가」 형식을 차용해 「구룡구곡(九龍九曲)」를 지은 것으로 보아 화서학파의 일원으로 보인다. 이 시는 제천 구룡마을의 경치를 구곡(九曲)으로 나누어 노래한 것이다. 구곡의 형식을 빌려 경치를 읊은 한시나 시가는 주자(朱子)의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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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구룡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보조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금성면 구룡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1945년 착공하여 1948년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은 120만 ㎡, 만수 면적은 1,000㎡이고, 홍수 면적은 1,300㎡, 구역 면적은 4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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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홉 구비가 진 냇가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구론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가 구룡(九龍)으로 바뀌었다. 1914년 경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九谷里[구실]’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자감동[일명 잘개밋골]·장터[일명 장터거리, 새장터거리]·한내[일명 한천(寒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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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개석식 고인돌 3기와 선돌 1기가 조사되었는데, 구룡리 고인돌 1호에서는 돌덧널의 무덤방과 돌깔림 구조가 확인되었고, 2·3호는 원래 자리에서 옮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제천 시내에서 청풍 방면으로 지방도 597호선을 따라가면 금성면 소재지에 이른다. 이곳의 북서쪽에 자리 잡은 금성초등학교 운동장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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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구룡리 서낭제는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한내, 대문밭, 잘개미골, 장터거리 등에서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구룡리 서낭제는 금성면 구룡리 한내 등에서 음력 1월 14일에 지냈던 마을 제사로 새마을 운동 당시에 당집을 부순 후부터 현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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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금성초등학교에 있는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선돌. 금성초등학교 내 운동장 북동쪽에 발굴 조사 후 이전, 복원한 고인돌과 함께 있으며, 1호 고인돌로부터 남동쪽으로 25m 떨어져 위치해 있다. 구룡리 선돌은 위쪽이 좁고 아래쪽이 넓은 사다리꼴 형태로, 두툼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윗부분을 손질하여 뾰족한 형태이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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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에서 발원하여 남동류하다가 구룡리에서 청풍호로 흘러드는 하천. 본래 구룡리는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자감동, 장터, 한내 등을 병합한 마을이다. 이곳은 아홉 굽이가 있는 내가 되므로 구론 또는 구곡(九曲)이라 하였는데, 이곳을 흐른다고 하여 구룡천이라고 불린다. 또한 이를 ‘대사천’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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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림(朴用霖)이 중국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본떠 제천 구룡마을 여덟 곳의 경승지를 읊은 한시. 「구룡팔경(九龍八景)」은 「구룡구곡(九龍九曲)」을 지었던 박용림[1873~1954]이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구룡마을의 경치를 중국 소상팔경에 맞추어 지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소상은 중국 후난 성[湖南省] 둥팅 호[洞庭湖]의 남쪽 샤오수이[瀟水]와 샹수이[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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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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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와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에 걸쳐 있는 산. 봉우리 꼭대기의 바위 형세가 거북과 같아 구담봉 또는 구봉이라 하였다.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구담(龜潭)은 청풍부 치소에서 동쪽으로 30리에 있으며, 단양과 경계이다. 금석을 깎아지른 듯이 웅장하게 우뚝 솟았고, 남쪽의 언덕 아래는 한 조각의 땅도 없으니 가히 들어 올렸다고 할 만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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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와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에 걸쳐 있는 산. 봉우리 꼭대기의 바위 형세가 거북과 같아 구담봉 또는 구봉이라 하였다.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구담(龜潭)은 청풍부 치소에서 동쪽으로 30리에 있으며, 단양과 경계이다. 금석을 깎아지른 듯이 웅장하게 우뚝 솟았고, 남쪽의 언덕 아래는 한 조각의 땅도 없으니 가히 들어 올렸다고 할 만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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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문화의 총체. 구비 전승이란 비석에 새긴 것처럼 유형화(類型化)되어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말이다. 단순하게 말로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이 마음에 새긴 것처럼 절실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구비(口碑)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구비 문학(口碑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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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 연모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로부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는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쯤까지를 말한다. 구석기 시대는 대략 30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시기는 지질학에서 말하는 신생대 제4기[Quaternary: 250만 년 전~1만 년 전]와 거의 겹치고 있다. 구석기 시대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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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구세군 교단 소속의 교회. 1865년(고종 2) 영국에서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그리스도교 전도회’를 창립하였는데, 이것이 구세군의 전신이다. 그리스도교 전도회는 1878년(고종 15) 구세군으로 개칭하고, 조직은 군대식 제도를 모방하고 교회를 국제적인 단일 조직으로 하여 윌리엄 부스가 초대 대장이 되었다. 1908년(순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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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구세군 교단 소속의 교회. 1865년(고종 2) 영국에서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그리스도교 전도회’를 창립하였는데, 이것이 구세군의 전신이다. 그리스도교 전도회는 1878년(고종 15) 구세군으로 개칭하고, 조직은 군대식 제도를 모방하고 교회를 국제적인 단일 조직으로 하여 윌리엄 부스가 초대 대장이 되었다. 1908년(순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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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홉 개의 골짜기 또는 아홉 마을이 있으므로 구실 또는 구곡이라 하였다. 아홉 마을은 논골, 밋골, 부르실, 새알재, 아랫집골, 이녀골, 안골, 점골, 집골 등이다. 조선 말 청풍군 근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구곡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구곡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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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구암(久菴). 할아버지는 호조 참판을 역임한 윤비경(尹飛卿)이고, 아버지는 윤명운(尹明運)이다. 윤봉구(尹鳳九)[1681~1767]는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1725년(영조 1) 청도 군수가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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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佰), 호는 성암(省菴)·사정(思亭)·구옹(龜翁). 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장윤(李長潤)이며, 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이다. 어머니는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판관 김맹권의 딸이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인 이지함(李之菡)의 형이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의 아버지이다. 이지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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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 우거한 문신. 본관 김해(金海). 자는 구용(九用). 아버지는 김신(金信)이다. 김정하(金鼎夏)[1608~?]는 1650년(효종 1) 사마시와 문과에 합격하고, 사헌부 감찰과 부사를 역임하였다. 제천에 우거하였으며, 남당서원과 제천의 풍경에 대하여 읊은 시가 제영(題詠) 등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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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유진찬(兪鎭贊), 유진익(兪鎭翊) 형제가 제천 명지동의 가을 경치를 읊은 두 수의 칠언 율시. 유진찬[1866~1947]은 개항기의 유학자로서 1888년(고종 25) 별시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제천 의병이 기병하여 활약했던 1896년(고종 33) 제천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1929~1943년 경학원 부제학으로 있으면서 한시를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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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천 청풍이 본관인 왕사(王師).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자는 구을(丘乙)이고, 호는 무극노인(無極老人)이며, 초명은 청분(淸玢)이다. 혼구(混丘)[1250~1322]는 어릴 적부터 탑을 만들고, 벽을 향하여 앉아 사색에 잠겼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자애로워 소미타(小彌陀)라 불렸다고 전한다. 10세 때 무위사(無爲寺)로 출가하여 천경 선사(天鏡禪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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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대장리, 동막리, 양화리에 걸쳐 있는 산. 본디 이름 없는 산이었다가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형도에 구진산(求陣山)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다. 제천시 금성면 대장리 둔전골[屯田谷]이 있고 봉화재, 고마창(高馬倉) 등 군사 관련 지명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진을 쳐서 구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한자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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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대장리, 동막리, 양화리에 걸쳐 있는 산. 본디 이름 없는 산이었다가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형도에 구진산(求陣山)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다. 제천시 금성면 대장리 둔전골[屯田谷]이 있고 봉화재, 고마창(高馬倉) 등 군사 관련 지명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진을 쳐서 구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한자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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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구철조(具哲祖)는 본관이 능성(綾城)이며, 오위사과(五衛司果)를 지낸 관료 출신이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제천의 호좌의진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원주 수성장으로 임명되어 도망간 원주군수를 대신하여 향리 조직을 통제하고 원주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면서 의병 모집과 군수 물자의 공급을 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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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학산[971m] 아래 있는 마을이므로 구학이라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백운산맥 팔왕재[파랑재]에서 아홉 마리의 학이 마을 송림으로 날아와 앉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동점리를 통합하여 구학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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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학산[971m] 아래 있는 마을이므로 구학이라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백운산맥 팔왕재[파랑재]에서 아홉 마리의 학이 마을 송림으로 날아와 앉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동점리를 통합하여 구학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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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학산[971m] 아래 있는 마을이므로 구학이라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백운산맥 팔왕재[파랑재]에서 아홉 마리의 학이 마을 송림으로 날아와 앉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동점리를 통합하여 구학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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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 산에서 살던 아홉 마리의 학이 사방으로 흩어져 신림의 황학동·상학동·선학동, 봉양의 구학리·학산리, 영동의 황학산, 백운의 방학리·운학리, 송학의 송학산에 각각 한 마리씩 날아가 ‘학’자가 들어가는 아홉 곳의 지명이 생겨났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구학산은 선캄브리아기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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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서 송학면을 거쳐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평창 간을 연결하는 지방도. 지방도 82호선은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평창을 연결하는 도로로, 총연장은 141.36㎞이다. 1차로 2.04㎞, 2차로 82.25㎞, 4차로 53.47㎞, 6차로 3.6㎞ 등 복잡한 차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천 권역을 남북 간으로 경유하는 노선은 충주시 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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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탄지리에서 수산면 계란리를 거쳐 충청남도 보령시와 경상북도 울진군을 연결하는 국도.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에서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까지 연결되는 국도 36호선의 길이는 292.42㎞이며,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1969~1974년 영주~울진 구간의 건설을 시작으로 하여 1996~2001년 법전우회도로가 완공되었다. 주요 터널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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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원월리에서 송학면 입석리를 거쳐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과 강원도 동해시를 연결하는 국도. 국도 38호선 전 구간[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강원도 동해시]의 길이는 약 320㎞이다. 충청북도와 강원도 지역의 광물을 경기도와 서해안 지역으로 연결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제천시 백운면과 봉양읍, 송학면을 통과하는 국도 38호선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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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에서 팔송리를 거쳐 경상남도 마산시와 평안북도 자성군 중강진을 연결하는 국도. 국도 5호선은 본래 평안북도 자성군 중강진에서 경상남도 마산을 잇는 도로로, 남한에서는 강원도 철원까지 이어져 있다. 총 길이는 51만 9,352m이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현동~중리 구간이, 2002년에는 영산~창녕 구간[9㎞]과 성산~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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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에 있는 종합 휴양 시설. 청풍리조트는 국민연금 가입자와 국민연금 수급권자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여가 시설과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2000년 9월 25일 국민연금공단이 풍광이 뛰어난 청풍호반에 건립하였다. 레이크호텔과 힐하우스로 구성되어 있다. 레이크호텔은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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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국보(國寶), 호는 기옹(寄翁). 할아버지는 이조 판서 남용익(南龍翼)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남정중(南正重)이며, 어머니는 이조 참판 이인환(李寅煥)의 딸이다. 서인(西人) 집안으로 계통으로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 이후에 경사(京師)에서 공부하였다. 남한기(南漢紀)[1675~1748]는 1710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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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국빈(國賓), 호는 회와(悔窩)·가주(可洲). 아버지는 호조 참의 안안후(安安厚)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아들로 삽교(霅橋) 안석경(安錫儆)[1718~1774]이 있다. 충주 가흥(可興)에 거주하였으며 청풍 김씨(淸風金氏)와 혼인하였다. 안중관(安重觀)[1683~1752]은 1702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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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 수산리에 걸쳐 있는 월악산의 주봉.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건설부 고시 제565호로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동식물과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연 문화유산이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리었으며 소사(小祀)를 지냈다. 풍수상 음기가 강한 여성 산이라 한다. 주봉인 월악영봉(月岳靈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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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청풍면 장선리, 봉양읍 구곡리에 걸쳐 있는 산. 국사봉(國思峰)은 조선 시대 충신 유안례(劉安禮)[1426~1506]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즉 영월에 유배된 단종이 승하하자 유안례는 지금의 금성면 활산리 안살미에 살면서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동쪽 영월을 향하여 절을 하며 의리와 충성을 다하였다 한다. 이로 인해 국사봉(國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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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청풍면 장선리, 봉양읍 구곡리에 걸쳐 있는 산. 국사봉(國思峰)은 조선 시대 충신 유안례(劉安禮)[1426~1506]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즉 영월에 유배된 단종이 승하하자 유안례는 지금의 금성면 활산리 안살미에 살면서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동쪽 영월을 향하여 절을 하며 의리와 충성을 다하였다 한다. 이로 인해 국사봉(國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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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서 송학면을 거쳐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평창 간을 연결하는 지방도. 지방도 82호선은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평창을 연결하는 도로로, 총연장은 141.36㎞이다. 1차로 2.04㎞, 2차로 82.25㎞, 4차로 53.47㎞, 6차로 3.6㎞ 등 복잡한 차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천 권역을 남북 간으로 경유하는 노선은 충주시 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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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용겸(用謙), 호는 국포(菊圃). 경창군(慶昌君)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유색(李惟穡)이다. 아들로 충민공 이도철이 있다. 이덕초(李悳初)[1803~1885]는 음사로 진잠 현감과 금구 현감, 보성 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관직은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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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1854~1924]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아 1889년(고종 26)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주역』를 공부하던 40세에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를 만났다. 윤응선은 본래 양평 출신인데, 병인양요 이후 조부를 따라 청풍 장선으로 이주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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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경윤(李憬胤)[1526~1578]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소(君紹)이다. 공민왕 때 정승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로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닦은 이제현(李齊賢)의 9세손이며, 할아버지는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화를 입은 이원(李黿)[?~1504]이지만, 후일 그 아우인 이타(李鼉)의 양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를 지낸 이발(李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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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현감을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요(君饒)·자범(子汎), 호는 치헌(痴軒). 할아버지는 권영화(權永和)이고, 아버지는 광주 판관 권질(權耋)이다. 권경유(權景𥙿)[?~1498]는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급제하고 148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문관 검열에 등용된 뒤 교리에 이르렀다. 1490년(성종 21) 호당(湖堂)[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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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권재중(權在重)[1853~1919]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이 영남 지역의 의병을 규합하기 위하여 서상렬(徐相烈)을 소모사[소토사]로 파견하였을 때 인연을 맺은 후 줄곧 그의 종사관으로서 종군하였다. 호좌의진이 영남 일곱 고을의 의병을 예천에서 규합하여 태봉의 일본군 기지를 공격할 때 참여하였으며, 조령의 일본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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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 거주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 증조할아버지는 정진(鄭振)이며,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정언신(鄭彦信)이고, 아버지는 정율(鄭慄)이다. 동생인 정세구(鄭世矩)는 사마시와 문과를 거쳐 감사를 역임하였으며, 아들인 정담(鄭儋)은 사마시를 거쳐 뒤에 영월 군수에 이르렀다. 정세규(鄭世䂓)[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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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필(君弼), 호는 농수(農叟). 증조할아버지는 호조 판서 이경직(李景稷)이고, 아버지는 감찰(監察) 이구성(李九成)이다. 아들로 이광세(李匡世)가 있다. 이문정(李聞政)[1656~1726]은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다. 종제인 이진유(李眞儒)가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을 숙청하자 이에 절교하고 충주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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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꾸불꾸불한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굴골 또는 굴곡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구곡(九谷, 九曲)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상구곡천[일명 상굴골]과 하구곡[일명 하굴골]으로 나뉘어 있었다. 1914년 굴탄리[일명 굴단리]를 통합하여 구곡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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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꾸불꾸불한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굴골 또는 굴곡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구곡(九谷, 九曲)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상구곡천[일명 상굴골]과 하구곡[일명 하굴골]으로 나뉘어 있었다. 1914년 굴탄리[일명 굴단리]를 통합하여 구곡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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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와 구곡리를 연결하는 다리. 제천시 봉양읍 구곡3리의 굴탄마을 지명을 따와 굴탄교라 이름 붙였다. 왕복 2차선 교량으로 총연장은 128m, 총 폭은 7.7m, 유효 폭은 7.1m이다. 높이는 5m, 경간 수는 9개, 최대 경간장은 14.5m이며, 설계 하중은 DB-24톤, 통과 하중은 43.2톤이다. 상부 구조는 RC슬라브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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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현감을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요(君饒)·자범(子汎), 호는 치헌(痴軒). 할아버지는 권영화(權永和)이고, 아버지는 광주 판관 권질(權耋)이다. 권경유(權景𥙿)[?~1498]는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급제하고 148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문관 검열에 등용된 뒤 교리에 이르렀다. 1490년(성종 21) 호당(湖堂)[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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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기수(權夔洙)[?~1896]는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교관(敎官) 출신이다. 호좌의진이 1896년(고종 33) 5월 제천의 남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한 후, 유인석(柳麟錫)을 따라 서북 지방으로 이동하는 서행(西行)에 참여하였다. 이때 서행하려던 의병 측은 화서학파의 중요한 근거지인 서북 지역에 미리 유치경(兪致敬)과 이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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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도연(權道淵)[1886~1910]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1908년(순종 2) 여름 이강년(李康秊)이 체포된 이후, 이강년의 뒤를 이어 호좌의진을 이끈 김상태(金尙台)의 휘하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주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접경지대인 소백산 일대에서 전개된 일본군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3월 초 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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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권상하(權尙夏)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양성(權養性)이고, 할아버지는 권제응(權濟應)이며, 아버지는 청풍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이다. 어머니는 김재균(金載均)의 딸이고, 부인은 송수연(宋守淵)의 딸이다. 권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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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명상(權命相)[1883~1951]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많은 운동가들이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거둘 때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활동하였다.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내의 역량을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던 시기이었다. 1919년 가을 정인옥(鄭寅玉)에게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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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문(季文)·유도(有道), 호는 구계(癯溪). 증조할아버지는 권주(權霔)이고, 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다. 어머니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초로(李楚老)의 딸이고, 부인은 원만춘(元萬春)의 딸 원주 원씨(原州元氏)이다.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형이고 권혁(權爀)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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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서 문필 활동을 한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 할아버지는 사헌부 집의 권격(權格)이며, 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추증된 권상명(權尙明)이다. 어머니는 용인 이씨(龍仁李氏)로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유학자 권상하(權尙夏)이며, 작은아버지는 이조 판서 권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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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권순명(權順明)[1876~?]은 제천의 장담에 살던 농민으로, 1908년(순종 2) 여름 김춘쇠(金春釗)의 부하로 가담하면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600여 명의 동료와 함께 경기도 양주군·가평군,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서 군자 금품을 거두면서 일본군 수비대와 여러 차례 교전하였다. 특히 1908년 9월 30일 강원도 홍천군 남천리(南川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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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온(仲蘊), 호는 청은(淸隱). 증조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고, 할아버지는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를 역임하고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며, 아버지는 권상명(權尙明)이다. 어머니는 이세백(李世白)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며, 부인은 어사상(魚史商)의 딸 함종 어씨(咸從魚氏)이다. 옥소(玉所) 권섭(權燮)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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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권영선(權永先)[?~1908]은 1908년(순종 2) 1월 초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에 거주하던 중 김윤학(金潤學), 이근백(李根伯), 이동인 등과 의병 장비를 감추고 있다가 영천 수비대에게 발각되면서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운학동[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에서 총살되었다. 당시 제천에서 활동하던 의병 주력 부대는 1907년(순종 1) 말 북상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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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한 아동 문학가. 권오순(權五順)[1919~1995]은 황해도 해주에서 교육 사업을 하던 권영붕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일본식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 집에서 어린이 잡지를 읽으면서 독학하였다. 1933년 『어린이』 5월호에 동시 「하늘과 바다」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후 『아동문예』에 여러 편의 동시를 투고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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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로(敬魯), 호는 청은(淸隱). 권용일(權用佾)[1884~1971]은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딱밭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장으로 일하던 18세 때 청풍의 일본군 헌병 주재소에서 할당하는 마초(馬草)의 감면을 요구하다가 질책을 받자 헌병들을 구타하고 주재소에 불을 지른 뒤 도망쳤다. 이후 행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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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유회(幼晦), 호는 초당(草堂). 증조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고, 할아버지는 강릉 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를 역임하고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며, 아버지는 권상하(權尙夏)이다. 어머니는 이세백(李世白)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며, 부인은 김진수(金震粹)의 딸이다. 권욱(權煜)[165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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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소설가. 권운상(權雲相)[1955~1996]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에서 권수(權洙)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중경고등학교를 다니던 1973년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하였으며, 국민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면서 유신 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학생 시위를 주동하였다가 1976년 제적되었다. 이후 광부·재단사·조선소 도장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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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권재중(權在重)[1853~1919]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이 영남 지역의 의병을 규합하기 위하여 서상렬(徐相烈)을 소모사[소토사]로 파견하였을 때 인연을 맺은 후 줄곧 그의 종사관으로서 종군하였다. 호좌의진이 영남 일곱 고을의 의병을 예천에서 규합하여 태봉의 일본군 기지를 공격할 때 참여하였으며, 조령의 일본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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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종필(權鍾弼)[1885~1965]은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에 살았다.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의 만세 운동에 뒤이어 제천에서도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이범우의 주도로 4월 17일 제천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 계획에 이기하·전필현 등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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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진(權璡)[?~1896]은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보수적인 성향의 선비로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정운경(鄭雲慶) 등과 함께 단양 영춘 현곡리의 동학 지도자들을 처단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자 정운경과 함께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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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송산(松山), 호는 청계(淸溪), 이명은 권태준(權泰俊). 최욱영(崔旭永)[1854~1919]은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민긍호(閔肯鎬)[?~1908, 개항기 의병장]에 호응하여 신림(神林) 안강리(安康里)에서 의병을 모집한 뒤 여러 곳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후에는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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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회(聖會). 권형규(權亨奎)는 8세 때 어머니가 회충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다, 주변에서 닭 한 마리를 병자 방에서 굽고 꿩 한 마리를 다른 방에서 구운 다음, 닭과 꿩을 바꾸어 병자에게 먹이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눈 덮인 겨울 산에 올라 꿩을 구하러 다녔다. 숲 속을 헤매고 있는데 풀숲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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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호선(權灝善)[?~1897]은 청풍에 살던 선비이다. 호좌의진이 중부 권역의 20개 고을을 관장하던 충주부를 공략할 때 활약하였다. 당시 호좌의진의 주력 부대는 박달재를 경유하여 공격하였는데, 권호선은 신지수(辛芝秀)·조달승(曺達承) 등과 함께 별동 부대를 거느리고 청풍 쪽을 돌아서 충주성을 공략하였다. 충주를 빼앗기고 제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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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권상하(權尙夏)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권도상(權道相)이다. 공화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전개된 3·1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나라 안팎에서 여러 개의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서울에서는 3·1 운동의 감동 속에서 한성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때 권희목(權熙穆)[1891~1930]은 이규갑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인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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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를 상징하는 시목(市木). 느티나무는 장수를 상징하는 민족의 보호수로 아늑한 시민적 정서를 갖고 있는 한편, 가식이 없고 온화하며 순박한 제천 시민의 기질을 나타내어 통합 제천시를 상징하는 나무로 지정되었다. 높이 25m, 지름 3m 안팎이고 생장 속도가 빠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홍갈색이고 비늘처럼 떨어진다. 잔가지는 가늘며 어린 것은 잔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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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귀사리저수지는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한 저수지로서, 1945년 착공하여 같은 해 준공하였다. 유효 저수량은 8,000㎥, 제당 높이는 6m, 제당 길이는 73m이다. 유역 면적은 19만 ㎡, 만수 면적은 3,000㎡이고, 인가 면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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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16일에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행하는 풍습. 귀신달구기는 집안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액운을 막기 위해 행하던 풍속이다. 제천 지역에서는 음력 정월 16일을 ‘귀신 달군 날’, ‘귀신 달린 날’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이날 밤에 귀신이 사람 사는 집을 기웃거린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월 16일에는 집집마다 보름을 지내고 난 음식이 많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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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16일에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행하는 풍습. 귀신달구기는 집안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액운을 막기 위해 행하던 풍속이다. 제천 지역에서는 음력 정월 16일을 ‘귀신 달군 날’, ‘귀신 달린 날’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이날 밤에 귀신이 사람 사는 집을 기웃거린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월 16일에는 집집마다 보름을 지내고 난 음식이 많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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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16일에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행하는 풍습. 귀신달구기는 집안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액운을 막기 위해 행하던 풍속이다. 제천 지역에서는 음력 정월 16일을 ‘귀신 달군 날’, ‘귀신 달린 날’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이날 밤에 귀신이 사람 사는 집을 기웃거린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월 16일에는 집집마다 보름을 지내고 난 음식이 많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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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산. 제천현 관아의 남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72년 간행된 『제천현지도(堤川縣地圖)』에 따르면, 제천현 관아 동헌의 아후봉에서 남쪽으로 제7남산(第七南山)을 표기하여 제7봉이 남산(南山)이었음을 알 수 있고, 산봉우리 앞 북쪽으로 홍살문을 세운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봉우리를 관아 밖의 남산으로 인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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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그네를 타며 부르는 유희요. 「그네뛰는 소리」는 오월 단오 때 아녀자들이 그네를 뛰면서 흥겨워 부르는 도구 유희요이다. 그네뛰기는 단오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단오가 되면 각 마을마다 큰 나무에 그네를 매고 주로 동네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네를 뛴다. 그네를 뛰면서 수다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정보와 놀이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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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 유제항의 문집. 유제항(柳濟恒)[1892~1973]은 마지막 화서학파의 문인이다. 『극와사고(克窩私稿)』는 유제항의 후손인 유연수(柳然壽)와 유남균(柳南均)에 의해 1999년 충청북도 제천의 대유출판사에서 영인 출판되었다. 1책 필사본으로 시와 화서학파 인물들의 행장과 서간문을 수록하고 있다. 서간문이나 비지문에는 충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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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전형적인 산간 고을이었던 제천은 근대를 거치면서 항일 의병의 본산이 되어 탄압을 받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저항 운동을 경험하였다. 경제면에서는 밭곡식을 주로 재배하였는데 점차 담배 재배 등 수익성 작물의 재배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철도·도로 등 산업 기반 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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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 서구적인 신식학교가 19세기 후반 우리 사회에 도입된 이후 갑오교육개혁,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학교 체제로 정착해 나가게 된다. 신식 학교를 처음 접했을 때 조선의 민중들의 시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식 학교는 외세와 침탈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식 학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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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 서구적인 신식학교가 19세기 후반 우리 사회에 도입된 이후 갑오교육개혁,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학교 체제로 정착해 나가게 된다. 신식 학교를 처음 접했을 때 조선의 민중들의 시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식 학교는 외세와 침탈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식 학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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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글자를 풀어서 놀이 삼아 부르는 유희요. 「글자풀이 소리」는 글자의 차례를 따라가면서 그 소리나 뜻에 맞게 일정한 내용을 풀어 가는 문자 유희요이다. 이를 「뒤풀이 소리」, 「한글뒤풀이」 등이라고도 한다. 「글자풀이 소리」는 술자리나 화전(花煎) 놀이판에서 유흥을 위하여 많이 불렀다. 2004년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주민 전복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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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피하거나 금기시하는 말과 행동. 금기어는 사람의 어떠한 행위나 언사가 자신 및 타인에게 나쁜 해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언어나 행동을 표현한 말이다. 금기어의 판단 기준은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 “강변에서 멧새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 “단옷날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와 같이 금기의 대상과 금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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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북진리와 교리에 걸쳐 있는 산. 금병산(錦屛山)은 한벽루 북쪽으로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단 병풍을 친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 병풍산(屛風山), 병산(屛山)이라고도 불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금병산은 청풍부 북쪽으로 강 건너 서로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한 떨기의 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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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금산(錦山). 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고, 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다. 아들로 통덕랑 이시진(李時振)이 있고, 동생으로 사마시에 입격한 이대건(李大建)과 이대적(李大迪)이 있다. 이대수(李大遂)[1547~1603]는 제천시 진야리(陳夜里)[현 신월동]에서 태어나 제천시 장락동에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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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금성면사무소에서 청풍 방면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 약 2㎞를 달리면 고교천이 나온다. 고교천 다리를 건너 바로 좌회전하여 약 2㎞를 달리면 우측으로 중전리 마을이 있다. 계속해서 약 600m를 더 가면 도로변 우측으로 50여m 들어가서 제천 중전리 고가가 위치하고 있다. 제천 중전리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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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고 슬기롭고 참된 어린이, 충효와 예절 생활 실천으로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며 민주 시민 생활 태도를 기르는 예절 바른 어린이, 자율적인 면학 활동을 통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실력 있는 어린이, 다양한 학습 활동을 통하여 창의적인 학습 능력을 기르는 창의적인 어린이, 충실한 체육 활동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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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고 슬기롭고 참된 어린이, 충효와 예절 생활 실천으로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며 민주 시민 생활 태도를 기르는 예절 바른 어린이, 자율적인 면학 활동을 통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실력 있는 어린이, 다양한 학습 활동을 통하여 창의적인 학습 능력을 기르는 창의적인 어린이, 충실한 체육 활동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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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 있는 농공 단지. 금성테크노빌은 지역 농업의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지역 생산 농·특산품의 고부가가치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지역 농업의 생산 경쟁력을 강화하며, 과학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지역 농업 생산 기반[지역 농업 기반의 첨단화, 유통 시설의 확충 및 농업 정보화]을 구축하기 위하여 제천시가 건립하였다.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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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와 중전리를 연결하는고속국도 55호선 상의 다리.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의 지명을 따서 금성교라 이름 붙였다. 금성교는 상·하행선의 출발 기점을 중심으로 금성교[춘천] 하행과 금성교[부산] 상행으로 불린다. 왕복 4차선으로 2개의 다리는 동일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크기와 구조가 같다. 교량의 총길이는 830m, 총 폭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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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행정 구역. 1917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수면(錦繡面)과 성산면(城山面)을 통합하면서 의 ‘금(錦)’자와 ‘성(城)’자를 따서 금성면(錦城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 지역으로 북진·성내·월굴·백석동·중리·포전·위곡·월림·진동·구룡·적덕·사창·활산·주포·소사·대사·칠전 등 17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1914년 제천군 금수면으로 개칭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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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금성면 성내리 동제는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성내마을 앞 봉명암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에 마을을 지켜 주는 동신(洞神)에게 무병장수와 풍년을 빌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금성면 성내리 동제의 연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금성면 성내리 동제는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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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금성면 포전리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에 택일을 하여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인데,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에서는 산천고사(山川告祀)와 서낭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을 구해 왔다. 금성면 포전리 동제의 연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마을 입구에 있는 서낭목인 느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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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고 슬기롭고 참된 어린이, 충효와 예절 생활 실천으로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며 민주 시민 생활 태도를 기르는 예절 바른 어린이, 자율적인 면학 활동을 통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실력 있는 어린이, 다양한 학습 활동을 통하여 창의적인 학습 능력을 기르는 창의적인 어린이, 충실한 체육 활동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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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고 슬기롭고 참된 어린이, 충효와 예절 생활 실천으로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며 민주 시민 생활 태도를 기르는 예절 바른 어린이, 자율적인 면학 활동을 통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실력 있는 어린이, 다양한 학습 활동을 통하여 창의적인 학습 능력을 기르는 창의적인 어린이, 충실한 체육 활동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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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운호(鄭雲灝)가 제천의 명산인 감악산의 약수탕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정운호[1862~1930]는 정양(鄭瀁)의 11세손으로, 의병장 정운경(鄭雲慶)의 삼종제이다. 향리의 이름 있는 한학자로 월림 정씨의 종손이다. 「금수약수탕(金水藥水蕩)」은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백련사(白蓮寺) 마당에 있는 약수탕을 찬양한 작품으로, 그 샘물이 병자에게 효험이 있음을 노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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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금성면 성내리,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걸쳐 있는 산. 본디 이름은 백운산이었으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로 있던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몹시 아름다운 이곳의 가을 경치에 감탄하여 금수산(錦繡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군조에 인용된 김일손(金馹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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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금수산에 있는 남근 모양의 바위. 금수산 남근석은 금수산 정상에 위치한 남근 모양의 바위로, 기자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체(身體)이다. 풍수지리상으로 금수산이 여자의 지근이 강한 형국이라 인근 마을의 남자들이 단명(短命)한다 하여 비보(裨補)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서 무암사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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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금수산에 있는 남근 모양의 바위. 금수산 남근석은 금수산 정상에 위치한 남근 모양의 바위로, 기자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체(身體)이다. 풍수지리상으로 금수산이 여자의 지근이 강한 형국이라 인근 마을의 남자들이 단명(短命)한다 하여 비보(裨補)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서 무암사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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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금수산에 있는 남근 모양의 바위. 금수산 남근석은 금수산 정상에 위치한 남근 모양의 바위로, 기자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체(身體)이다. 풍수지리상으로 금수산이 여자의 지근이 강한 형국이라 인근 마을의 남자들이 단명(短命)한다 하여 비보(裨補)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서 무암사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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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 능강계곡에 있는 피서지. 금수산 얼음골은 능강구곡의 하나인 취적대 아래에 있는 골짜기이다. 취적대 아래에는 얼음구멍[일명 빙혈]이 있어 유명하다.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금수산 얼음골은 지대가 높고 남북을 가로막고 있어 햇볕이 드는 시간이 짧아 여름철에도 바위가 차가워지고 얼음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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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 능강계곡에 있는 피서지. 금수산 얼음골은 능강구곡의 하나인 취적대 아래에 있는 골짜기이다. 취적대 아래에는 얼음구멍[일명 빙혈]이 있어 유명하다.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금수산 얼음골은 지대가 높고 남북을 가로막고 있어 햇볕이 드는 시간이 짧아 여름철에도 바위가 차가워지고 얼음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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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 능강계곡에 있는 피서지. 금수산 얼음골은 능강구곡의 하나인 취적대 아래에 있는 골짜기이다. 취적대 아래에는 얼음구멍[일명 빙혈]이 있어 유명하다.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금수산 얼음골은 지대가 높고 남북을 가로막고 있어 햇볕이 드는 시간이 짧아 여름철에도 바위가 차가워지고 얼음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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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금수산 일원에서 재배하는 박과에 속한 덩굴 식물. 오이는 박과에 속한 한해살이 덩굴성 재배 식물로 학명은 ‘Cucumis sativus L’이다. 오이의 원산지는 인도와 히말라야이며 우리나라에는 1,500년 전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이는 전체에 잔털이 있는 덩굴손으로 감아 뻗으면서 자라며, 잎은 삼각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잎 가장자리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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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매년 가을 개최되는 산악 등반 마라톤 대회. 금수산 전국 산악 마라톤 대회는 제천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홍보하고, 전국의 산악 동호회와 지역 마라톤 동호회의 연합과 결속을 다지며, 비인기 운동 종목인 마라톤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홍보하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997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에서 아름다운 금수산[1,01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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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을 지내는 명절. 한식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의 하나였다. 한식은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날인데, 이를 금연일(禁烟日), 숙식(熟食), 냉절(冷節) 등이라고도 한다. 이때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로 겨울 동안에 무너져 내린 산소를 돌보기도 한다. 한식은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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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에 있는 산. 1993년 아시아시멘트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점토를 채취하던 중 땅속에 있던 기암괴석 무리가 발견되었는데 모양이 금강산 만물상을 쏙 빼어 닮아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다가 제천시에서 명칭을 공모하여 금월봉[높이 226m]이라 명명하였다. 달리 두꺼비바위라고도 한다. 석회암 지대에서 시멘트 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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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축 산성. 견제산성은 월악산 북쪽의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봉우리 중에서 제천시 청풍면과 금성면, 그리고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를 이르는 동산[해발 896.2m]의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금수산의 중록(中麓) 세 봉우리 위에 있고 둘레가 약 5.8㎞쯤 된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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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두레패끼리 농기를 빼앗는 놀이. 기싸움은 두레패끼리 농기에 대한 ‘형’ 또는 ‘선생’ 다툼을 하면서 서로 농기를 뺏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농기싸움’, ‘농기뺏기’ 등이라고도 한다. 주로 정월 초나 여름에 풍물을 치며 들로 일하러 나갈 때 이웃 농기가 절을 안 하면 상대편 농기를 꺾거나 빼앗아 선후배를 가린다. 심할 경우 싸움이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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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주포리와 장평리를 연결하는 고개. 주폿고개는 고개가 위치한 주포리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한국지명총람』에는 “주폿고개[장터고개·기너미고개·개너밋재]는 주포리(周浦里)에서 장평리로 가는 고개, 장평 사람들은 주폿고개라고 부르며, 주로 주포리에 주포장이 서므로 장터고개, 또는 윤조원(尹調元)[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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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기삼(箕三), 호는 혜인(惠人). 시호는 충문(忠文). 증조할아버지는 조진관(趙鎭寬)이고, 할아버지는 조인영(趙寅永)이며, 아버지는 현령 조병석(趙秉錫)이고 조병기(趙秉夔)에게 입양되었다.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大妃)의 조카이다. 어머니는 김유근(金逌根)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생모는 이의석(李義碩)의 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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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춘향의 지조와 절개를 내용으로 하는 유희요. 「기생 소리」는 고전 소설 「춘향전」의 여주인공인 춘향이가 지조와 절개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사설로 부르는 가창 유희요이다. 일반 대중에 널리 퍼져서 단가 형식의 소리가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퍼져 전승되고 있다. 「기생 소리」는 기억하는 제보자에 따라 「춘향이 소리」, 「노랫가락」 등의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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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의 자선 사업가.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기서(岐西).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의 10세손이다. 정해봉(鄭海鳳)[1888~?]은 천성이 온후하고 인자하였으며, 친척들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였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흉년이 들면 춘궁기에 100여 가구의 사람들에게 양곡을 풀어 구제하였고, 사찰에까지 보조를 아끼지 않았다. 제천시 금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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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하는 법적 또는 제도적 단위의 최소 결합체. 기업이란 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운용하는 자본의 조직 단위이다. 기업은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기본적 단위이며, 생산 수단의 소유와 노동의 분리를 기초로 하여 영리 목적을 추구하는 독립적인 생산 경제 단위를 이룬다. 우선 기업의 가장 큰 역할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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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국보(國寶), 호는 기옹(寄翁). 할아버지는 이조 판서 남용익(南龍翼)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남정중(南正重)이며, 어머니는 이조 참판 이인환(李寅煥)의 딸이다. 서인(西人) 집안으로 계통으로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 이후에 경사(京師)에서 공부하였다. 남한기(南漢紀)[1675~1748]는 1710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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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이숙(李塾)이고, 어머니는 군수 송현(宋鉉)의 딸이다. 반남 박씨 박세훈의 딸과 혼인하였다. 첫째 아들은 현감을 지낸 이시현(李蓍顯)이고, 둘째 아들은 이시선(李蓍先), 셋째 아들은 이시정(李蓍定), 넷째 아들은 이시성(李蓍聖)이다. 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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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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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한 문학가. 박지견(朴持堅)[1923~2004]은 호는 기호(豈乎)이며, 황해도 신계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34년간 중등 교사로 근무한 뒤 정년퇴직하였다.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제천에 터를 잡았다.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6년 제천문학회를 창립하고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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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제천 지역은 중부 내륙 지방의 산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충청북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나고 있어 냉해·설해·가뭄 등의 피해와 아울러 때로는 풍수해·산사태 등의 자연 재해가 심한 편에 속한다. 1973~2002년간의 제천 지역 연도별 연평균 기온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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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공동으로 길쌈하며 겨루는 놀이. 길쌈놀이는 동네의 부녀자들이 한데 모여 공동으로 실을 내어 옷감을 짜며 경쟁하는 풍습이 놀이화가 된 민속놀이이다. 길쌈놀이는 삼남 지방[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음력 7월부터 8월 추석까지 특히 성행했다. 온 동네 부녀자들은 장정들이 조직하는 두레와 같은 형태의 공동 길쌈을 조직하고 길쌈 솜씨를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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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돈적(敦謫). 할아버지는 비안 현감 김인갑(金仁甲)이며, 아버지는 하담 김시양(金時讓)이다. 김곡(金縠)[1599~1661]은 문장이 뛰어나고 충효를 실천하는 데 극진하였다. 1624년(인조 2) 제천 현감을 거쳐 합천 군수·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묘소는 충청남도 괴산군 개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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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 시호는 문정(文貞). 증조할아버지는 김생해(金生海)이고, 할아버지는 김원효(金元孝)이며, 아버지는 형조 참판 김상준(金尙寯)이다. 어머니는 이천우(李天祐)의 딸이다. 김광욱(金光煜)[1580~1656]은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증광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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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회(思晦). 아버지는 부사 김상관(金尙寬)이고, 작은아버지인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양자로 들어갔다. 아들로 김수흥(金壽興)과 김수항(金壽恒)을 두었다. 김광찬(金光燦)[1597~1668]은 제천 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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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과 이범윤 의진의 의병. 김교헌(金敎憲)[?~1908]은 단양군 영춘 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관료이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전군장인 정운경(鄭雲慶)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다가, 후에는 제천 의병을 치러 오는 관군이 출동하였을 때 원주 신림 쪽을 방어하는 파수장으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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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 봉강서원(鳳岡書院)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중(而中), 호는 졸탄(拙灘). 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성균관 대사성 김식(金湜)이고, 아버지는 참봉 김덕무(金德懋)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윤인(尹麟)의 딸이다. 김권(金權)[1549~1622]은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0년(선조 13) 별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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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김규철(金奎喆)[1881~1929]은 궁내부 주사(主事)를 역임한 관료이었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청풍 지역에서 조동교(趙東敎)·신기영(申基永)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이명상(李明相) 부대의 중군장을 맡은 적도 있다. 주로 단양과 금수산(錦繡山)을 근거지로 제천·청풍·단양·충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는데, 이강년(李康秊)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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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김규환(金奎桓)은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을 전후한 시기 이강년(李康秊)이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해를 넘기면서 탄환이 고갈되고 일본군의 토벌 작전이 강화되면서 의병이 점차 수세에 몰렸는데, 1908년(순종 2) 여름 이강년이 청풍의 작성 전투에서 일본 군경에게 체포되고 의병 진영이 흩어지자, 이강년과 함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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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의 열녀.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진위(振威) 김기호(金基鎬)의 처이다. 시집가서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공경으로 남편을 대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도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늙은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이틀 후에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슬픔을 억누른 채 예로써 장례를 지내고 삼우제(三虞祭)까지 지낸 후에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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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김길통(金吉通)[1408~1473]과 관련된 유물로 보물 제716호로 지정된 「김길통 좌리공신교서(金吉通 佐理功臣敎書)」 1첩이 있다. 1981년 3월 18일 지정되었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공신 교서란 공이 있는 신하에게 왕의 명을 받들어 공신도감(功臣都鑑)에서 발행하는 공신 임명 증서를 말하는데, 이 교서는 성종이 자신이 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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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의 효자. 김남석(金南錫)은 본관이 강릉(江陵)이며, 지금의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 살았다.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70세에 동맥 경화증에 걸려 병석에 눕자 극진히 봉양하였다. 그 모습을 본 면 사람들이 감동하여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1960년 면장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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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한 화가. 김례호(金禮鎬)[1926~1971]는 평양 출신으로 사업을 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학 경력은 확실하지 않으나 해방 전부터 이중섭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일찍부터 동료들로부터 ‘한국의 고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개성 있고 역량 있는 작가로 평가되었다. 해방 후 평양미술연구소와 평양미술학교에서 활동하다가, 1949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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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득겸(得兼), 호는 묵묵재(墨墨齋).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김명주(金命冑)는 17세기 말엽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며, 자질이 뛰어나고 문장과 음악, 시가에 능하였다. 취병산(翠屛山)[금병산]에 은거하여 음영(吟詠)으로 여생을 소요하였다. 남휘당(覽輝堂) 이연(李演)이 그의 행장(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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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백선(金伯善)[1873~1896]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맹영재가 조직한 포수 부대에 참여하여 농민군을 진압할 때 공을 세워 조정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고 절충장군의 첩지까지 받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자 지평군수 맹영재에게 의병을 일으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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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명화(明火). 김병명(金秉明)[?~1896]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에서 살았다. 단발령 이후에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이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하였을 때 의병 운동에 참여하였다. 호좌의진은 충주성을 공략하고 곳곳에 자리 잡은 일본군 주둔 지역을 공격하였는데, 특히 충주의 가흥에 자리 잡은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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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부. 본관은 청풍(淸風). 남편은 김병우(金秉祐)이고, 아버지는 김익한(金益漢)이다. 청풍 김씨(淸風金氏)는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항상 공손하게 내조하였다.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온몸을 정성껏 보살폈으나 효험이 없자 뒤뜰에 제단을 마련하여 3년간 천지신명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정성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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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김봉용(金鳳容), 자는 주서(周瑞), 호는 청은(淸隱). 문간공(文簡公) 김세필(金世弼)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김수명(金秀命)이다. 김상한(金商翰)[1848~1917]은 이기문(李基文)에게 배웠다. 어린 시절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유생 시절에 정국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려 3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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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의(聖儀). 증조할아버지는 처향(妻鄕)인 제천에 들어왔던 김시양(金時讓)이고,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 김추만(金秋萬)[1629~1671]이다. 아들로 진사 김덕유(金德裕), 김덕조(金德祚)가 있다. 김봉지(金鳳至)[1649~1675]는 1675년(숙종 1) 생원과 진사 양시에 입격하였으며, 벼슬은 밀양 부사를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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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사두(金思斗)[1865~1896]는 원주의 안창마을에 세거하던 연안 김씨(延安金氏) 출신으로 사종(四從)간인 김사정(金思鼎)과 함께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 문중을 대표하여 참가하였다. 초기에 의진을 이끈 이춘영(李春永)의 처가 집안이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호좌의진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중군장 안승우(安承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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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매(公梅), 호는 벽하(碧河). 원주 안창마을에 세거하던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자손이다. 김사정(金思鼎)[1869~1942]은 진사를 지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김백선(金伯善) 등이 안창에서 의병에 가담하였을 때 사위인 이춘영을 매개로 하여 문중 대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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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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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김봉용(金鳳容), 자는 주서(周瑞), 호는 청은(淸隱). 문간공(文簡公) 김세필(金世弼)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김수명(金秀命)이다. 김상한(金商翰)[1848~1917]은 이기문(李基文)에게 배웠다. 어린 시절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유생 시절에 정국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려 3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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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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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의 의병. 김선이(金仙伊)[1880~?]는 순흥군 봉양마을에 살던 1907년(순종 1),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말미암아 의병이 일어나자 참여하였다. 순국한 이강년(李康秊)의 뒤를 이어 의병 활동을 전개한 김상태(金尙台) 의병장의 휘하에 투신하였다. 1909년(순종 3) 이래 봉화·영천·영월 등 소백산맥을 낀 접경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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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은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하여 충주성과 곳곳에 자리 잡은 일본군 주둔 지역을 공격하였다. 특히 충주의 가흥에 자리 잡은 일본군 기지는 남한강 물길을 중간에서 차단하여 내륙으로 통하는 소금 등의 공급을 방해하였다. 이에 가흥의 일본군 기지를 제압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가흥 공격 작전이 수행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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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세균이 살았던 가옥. 김세균(金世均)[1812~1879]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공익(公翼), 호는 만재(晩齋)이다. 아버지는 서윤(庶尹) 김병문(金炳文)으로, 현감인 큰아버지 김병선(金炳先)에게 입양되었다. 1834년(순조 34) 진사시에 합격하고, 1841년(헌종 7)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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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수돌(金水乭)[?~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의 지도하에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포군으로 활동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일본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와 방어전에 치중하고 있을 때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부대에서 활약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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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수동(金壽童)[1885~1910]은 단양의 영춘면 동대리 수발마을에 살았으며, 군대 해산 이후 의병 운동에 투신하였다. 1907년(순종 1) 9월 이강년(李康秊) 부하로 의병 활동을 시작하여 그해 말까지 문경·단양·영춘·영월 등의 군내에서 양식과 짚신 등 군수 물자를 징발하는 일을 하였다. 갈평·영월·장현(獐峴)·영춘 지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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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연지(延之), 호는 곡운(谷雲). 할아버지는 김상헌(金尙憲)이며, 아버지는 제천 현감과 청풍 군수를 역임한 김광찬(金光燦)이다. 김수항(金壽恒)이 동생이다. 김수증(金壽增)[1624~1701]은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1652년(효종 3)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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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거이(居易). 아버지는 호조 판서 김길통(金吉通)이다. 김순명(金順命)[1435~1487]은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6년(세조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교서관 정자가 되었다. 이어 승정원 주서·성균관 주부·호조 좌랑·호조 정랑 등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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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으로 이거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시언(時言),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할아버지는 영상공 김석(金錫)이고, 아버지는 비안 현감 김인갑(金仁甲)이다. 어머니는 남양 홍씨이다. 부인은 제천 이대수(李大遂)의 딸 경주 이씨이다. 장인 이대수는 제천의 사족(士族)이었다. 김시양(金時讓)[1581~1643]은 처가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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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청풍 황강서원에 배향된 인물.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노천(老泉), 호는 사서(沙西)·동천(東泉)·정우당(淨友堂), 시호는 문의(文毅). 할아버지는 김질(金耋)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숙필(金叔弼)이다. 손자로 김권(金權)이 있다. 김식(金湜)[1482~1520]은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1501년(연산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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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靜), 호는 지암(止菴)·여호(驪湖).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김신겸(金信謙)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좌의정 이명(頤命)의 딸이다. 김양행(金亮行)[1715~1779]은 민우수(閔愚洙)의 문인으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연구에 힘썼으며, 낙론(洛論)을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17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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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언형(金彦型)[1892~?]은 1920년 7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김덕선, 정호척, 김재현, 주효점, 지달하 등과 함께 대한독립신민단을 조직하였다. 본부는 노령에 두었으며 북간도 연길현 옹성패자명월구에 참모부를 설치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신민단은 이민족 지배 반대, 국내외 자본주의 및 군국주의 타파, 계급 제도 타파, 빈곤 해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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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용이(金用伊)[?~1896]는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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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용준(金龍俊)은 경기도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의 의병으로 포군으로 활약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춘영(李春永), 김백선(金伯善) 등이 지평의 포군을 기반으로 의병을 처음 일으켰을 때 참가하였다. 나중에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던 가흥, 수안보 등을 공략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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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김우경(金祐京)은 본관이 청풍(淸風)으로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서 살았다. 군대 해산 후 1907년(순종 1)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종군하여 금수산·청풍·단양 전투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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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부원군에 봉해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정(以定). 아버지는 영의정을 역임한 김육(金堉)이고, 딸은 현종 비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김우명(金佑明)[1619~1675]은 1642년(인조 20)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 참봉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세마(洗馬) 등을 역임하였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청풍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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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운선(金雲仙)은 원주에서 평민으로 태어났으며, 포군으로 활동한 듯하다.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가담하여 우선봉으로 활약하였다. 나중에 원주에 들어가서 참위(參尉) 손재규(孫在奎)의 부하로 있다가 1907년(순종 1) 여름 군대 해산이 있은 후 손재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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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정치인이자 관료. 김유택(金裕澤)[1911~1975]은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경성고등상업학교, 일본 규슈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은행[한국은행의 전신]에 입사하여 해주 지점 지배인을 역임하였고, 해방 후 조선은행 이사로 취임하였다. 1950년 이후 한국은행 총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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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군대 해산 후에 제천에서 활동하던 의병의 주력 부대가 1907년(순종 1) 말 북상하고, 이후 일본군 수비대와 맞서는 의병 활동이 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될 무렵 일본군은 의병들의 ‘귀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한편, 의병 및 의병 협조자들에게 강력한 탄압을 가하였다. 김윤학(金潤學)[?~1908]은 1908년(순종 2) 1월 초 제천시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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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중수(仲綏), 호는 학고(鶴皐). 증조할아버지는 김득선(金得善)이며, 할아버지는 김단(金鍴)이며, 아버지는 경주부 윤을 역임한 단계(檀溪) 김해일(金海一)이다. 어머니는 이은진(李殷鎭)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고, 부인은 오시만(吳始萬)의 딸 동복 오씨(同福吳氏)이다. 김이만(金履萬)[1683~1758]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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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아버지는 효자로 동몽교관의 관직과 정려를 받은 김종려(金宗礪)이다. 김이중(金履重)은 아버지를 본받아 극진히 부모를 모셨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살폈고, 병이 깊어져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흘려 넣음으로써 회생시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피눈물을 흘리며 3년간 묘소를 지키는 등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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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의 대제중학교를 설립한 교육가. 김익로(金翼魯)[1917~1993]는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경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강원도 진부에서 오대물산을 창업하여 목재소, 정미소, 운수 업체 등을 경영하여 성공하였다. 오대산 일대의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평생 동안 66.16㎢에 1,200만 그루의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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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시(聖時). 김인구(金仁求)[1860~1933]는 단양의 향산리에서 살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여하였다. 단양 등지에서 전개된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전투 이후에 충주 방면으로 퇴각하던 본진으로 돌아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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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재관(金在觀)[?~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에 호응하여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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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허주자(虛舟子). 증조할아버지는 김극형(金克亨)이며, 할아버지는 김징(金澄)이고,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김구(金構)이다. 어머니는 이몽석(李夢錫)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심징(沈澂)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이다. 김재로(金在魯)[1682~1759]는 1702년(숙종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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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 시호는 문정(文貞)에서 문간(文簡)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호조 정랑 김효정(金孝貞)이고, 어머니는 김해 허씨(金海許氏)로 판관 허윤공(許允恭)의 딸이다. 부인은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여익(宋汝翼)의 딸이다. 김정(金淨)[1486~1521]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성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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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 우거한 문신. 본관 김해(金海). 자는 구용(九用). 아버지는 김신(金信)이다. 김정하(金鼎夏)[1608~?]는 1650년(효종 1) 사마시와 문과에 합격하고, 사헌부 감찰과 부사를 역임하였다. 제천에 우거하였으며, 남당서원과 제천의 풍경에 대하여 읊은 시가 제영(題詠) 등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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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아들로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김이중(金履重)이 있다. 김종려(金宗礪)는 본관이 강릉(江陵)이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어려서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종일관 지극한 슬픔과 예를 다하는 행동이 어른보다 나아 주변의 칭송을 들었다. 어머니를 봉양할 때도 지극한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하늘에 기도하여 쾌유를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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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정치인. 김종무(金鍾茂)[1908~1987]는 본관이 김해(金海)이며, 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우체국에 근무하면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여 1937년경 송학면장을 역임하였다. 노의중과 함께 제천주조주식회사의 창립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이후 제천부읍장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에는 대한독립촉성회 쪽에서 반탁 운동에 참여하였고 군청 내무과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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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부이자 효녀. 본관은 청풍(淸風). 남편은 김준구(金俊九)이고, 아버지는 김진학(金鎭學)이다. 아들로 김태희(金泰希)가 있다. 청풍 김씨(淸風金氏)는 15세에 시집가서 일찍 남편을 여의고 남매를 두었는데, 낮이면 나무하며 김을 매고, 밤이면 길쌈과 바느질로 가난하던 집안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친정 부모가 나이 들자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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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김준석(金俊石)은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에서 군인 출신인 박여성(朴汝成)이 제천의 청풍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합류하였다. 주로 금수산과 단양 하일(夏日) 전투 등에서 일본군과 싸움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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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에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회(而晦). 아버지는 빙고 별검(氷庫別檢) 김전(金㙉)이다. 김중명(金重明)[1614~1685]은 1645년(인조 23) 무과에 급제하고, 송시열(宋時烈)의 천거로 효종의 북벌 계획에 참여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다. 1671년(현종 12) 영흥 대도호부사로 재직 중 관내 사노(私奴)가 주인을 죽인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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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군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송헌(松軒) 김약시(金若時)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낸 김표(金彪)이며 재종숙인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1591년(선조 2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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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열녀. 충주 박씨(忠州朴氏)는 김진규(金振奎)의 처이며, 효행이 조정까지 널리 알려져 고종에게서 동몽교관의 관직과 정려를 받은 김이중(金履重)의 6세손 며느리이다. 남편이 병석에 누워 여러 해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조상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며 크고 작은 집안일을 홀로 처리하였다. 남편이 세상이 떠나자 탄식하며 스스로 독약을 먹고 남편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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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목(金鎭睦)[1899~?]은 제천 남천 출신으로 주로 미주에서 활동하였다. 3·1 운동 때 경성공업전문학교 졸업반 학생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대한문까지 행진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어 이틀간 구금되었다. 석방된 후 일본어 서적을 모두 불태우고 졸업반인데도 총독부 관립 학교라 하여 나가지 않았다. 경성공업전문학교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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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건중(建中), 호는 오애(浯涯).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 김류(金瑬)이며, 아버지는 한성부 판윤 김경징(金慶徵)이다. 김진표(金震標)[1614~1671]는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도 검찰사(江都檢察使)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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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김차명(金次明)[1875~?]은 강릉시 월면 해전리에 살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변학기(邊鶴基) 부대의 좌익장으로 경상북도 북부에서 강원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후에 변학기가 이강년(李康秊)과 합치자 이강년 의진의 선봉이 되었으며, 흔히 ‘박선봉’으로 불렸다.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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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김창로(金昌魯)는 1907년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투신하여 종사관으로 활약하다가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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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이다. 어머니는 안정 나씨(安定羅氏)로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며, 부인은 연안 이씨(延安李氏)로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의 딸이다. 형으로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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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철상(金喆相)[1878~1966]은 본관이 영양(英陽)으로, 경상북도 용궁 사람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내리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의병 운동에 가담하였다. 마고성(麻姑城) 전투 이후 의진이 힘을 떨치지 못하게 되자 제천으로 옮겨 호좌의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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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김춘삼(金春三)[1879~1945]은 청풍의 사창리에 살았다. 1907년(순종 1) 7월 봉기한 조동규(趙東奎) 부대에 참여하여 전령(傳令)의 책임을 맡았다. 15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충주·제천·청풍·원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으며, 같은 해 8월에는 청풍 읍내를 포위 공격하여 주재소에 불을 지르는 등 항전을 전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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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천에서 거란병을 크게 무찔러 격퇴한 무신. 본관은 언양(彦陽). 아버지는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인 언양군(彦陽君) 김선(金鐥)의 후손 예부 시랑(禮部侍郞) 김부(金富)이다. 김취려(金就礪)[1172~1234]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서 태어났다. 음관(蔭官)으로 정위(正尉)에 임명된 뒤 동궁 위(東宮尉)를 거쳐 장군(將軍)으로서 동북계(東北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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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해풍(海豊). 자는 춘백(春伯), 호는 집의당(集義堂). 김태원(金泰元)[1863~1932]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출사하여 별군직과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직후 김하락·구연영·조성학·신용희 등과 함께 이천에서 봉기할 때 선봉장을 맡았다. 백현(魄峴)·이현(梨峴) 등지에서 접전하여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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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종백(宗伯), 호는 단곡(檀谷). 증조할아버지는 김윤안(金胤安)이며, 할아버지는 김득선(金得善)이고, 아버지는 김단(金鍴)이다. 어머니는 권극해(權克諧)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은진(李殷鎭)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김해일(金海一)[1640~1691]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입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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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삼궁(三弓), 호는 시백(時伯). 형으로 김현갑(金顯甲)과 김현장이 있다. 김현세(金顯世)[1886~1950]는 강원도 정선 출신이다. 포수 생활을 하던 형 김현갑이 이강년(李康秊)의 중군장인 김상태(金尙台) 의진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가자 이를 구해 내고, 둘째 형 김현장이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자 대신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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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임보(任甫), 호는 사담(沙潭). 증조할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 충무위(忠武衛) 부사직(副司直) 김예강(金禮剛)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김윤검(金允儉)이며, 아버지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김범(金範)이다.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 계공랑(啓功郞) 조한신(曺漢臣)의 딸이다. 아우인 김홍미(金弘微)는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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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일(仲一), 호는 복암(復菴). 김화식(金華植)[1866~?]은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에게 학문을 배웠다. 유인석이 주도하는 호좌의진이 일어날 때는 고향인 보령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수백 리 길을 달려와 의진에 합류하였다. 단발령 이후에 장담의 선비들이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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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칠(公七), 호는 학음(鶴陰). 학고(鶴皐) 김이만(金履萬)의 6세손이다. 김휘두(金輝斗)[1831~1907]는 진잠 현감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문집으로 『학음선생유집(鶴陰先生遺集)』이 전한다. 문집에 수록된 시문에서는 외국과의 수교나 문물 수용 등 서구의 근대 문명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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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어린이들이 눈을 가리고 노는 놀이. 봉사 놀이는 술래가 수건 따위로 눈을 가린 다음 붙잡히는 사람을 잡고 옷맵시와 몸매를 더듬어서 이름을 맞히는 민속놀이이다. 제천 지역에서는 봉사 놀이를 ‘까막잡기’ 또는 ‘소경놀이’라고 한다. 봉사 놀이는 전국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이다. 술래의 눈을 가릴 수 있는 손수건 또는 천이 필요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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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과 신월동에 걸쳐 있는 산. 원래는 무명산이었는데 최근에 ‘까치봉’ 또는 ‘까치산’이라 불리고 있다. ‘까치 작(鵲)’ 자와 ‘산봉우리 봉(峰)’ 자를 써서 작봉(鵲峰)이라고도 부른다. 지리적으로 제천 시내의 뒷동산이라 할 수 있는 산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알려진 까치들이 노송에 깃들면서 명칭이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정상부가 가파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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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과 신월동에 걸쳐 있는 산. 원래는 무명산이었는데 최근에 ‘까치봉’ 또는 ‘까치산’이라 불리고 있다. ‘까치 작(鵲)’ 자와 ‘산봉우리 봉(峰)’ 자를 써서 작봉(鵲峰)이라고도 부른다. 지리적으로 제천 시내의 뒷동산이라 할 수 있는 산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알려진 까치들이 노송에 깃들면서 명칭이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정상부가 가파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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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에 있는 고려 시대 토석 혼축 산성. 작성산성은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와 성내리의 경계인 작성산 정상부와 계곡 상부를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둘레는 약 1100m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의 고적편에 “작성(鵲城)이라 하고 금수산 북쪽 기슭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성으로 그 안에 석탑이 있다”고 하였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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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와 포전리에 걸쳐 있는 산. 작성산은 이웃의 동산과 함께 중부권에서는 작성산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이곳 사람들은 이를 까치성산으로 부르고 있다. 까치성산이 최근까지 발간되는 모든 지표상에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지형도를 만들면서 한자 표기인 까치 ‘작(鵲)’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까치성산에는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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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과 신월동에 걸쳐 있는 산. 원래는 무명산이었는데 최근에 ‘까치봉’ 또는 ‘까치산’이라 불리고 있다. ‘까치 작(鵲)’ 자와 ‘산봉우리 봉(峰)’ 자를 써서 작봉(鵲峰)이라고도 부른다. 지리적으로 제천 시내의 뒷동산이라 할 수 있는 산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알려진 까치들이 노송에 깃들면서 명칭이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정상부가 가파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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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정해진 놀이판 위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고누는 땅이나 마루, 목침(木枕) 등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말을 놓거나 옮기며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원시적인 형태로 놀이판의 형태와 그에 따른 놀이 방법이 다양하여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널리 하던 놀이이다. 상대편 말을 수를 써서 포위하거나 떼어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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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정해진 놀이판 위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고누는 땅이나 마루, 목침(木枕) 등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말을 놓거나 옮기며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원시적인 형태로 놀이판의 형태와 그에 따른 놀이 방법이 다양하여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널리 하던 놀이이다. 상대편 말을 수를 써서 포위하거나 떼어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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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와 한수면 덕곡리를 연결하는 고개. 꼬부랑재는 충주댐 수몰 전에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골안[谷內]에서 덕산면 신현리 일명 ‘와룡산(臥龍山)’에 있는 고산사(高山寺)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또한 골안과 쇠시리재의 분기점으로 행인들의 이동이 빈번했으나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성천 변에 국도 36호선이 개설되면서 꼬부랑재는 방치되어 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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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와 한수면 덕곡리를 연결하는 고개. 꼬부랑재는 충주댐 수몰 전에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골안[谷內]에서 덕산면 신현리 일명 ‘와룡산(臥龍山)’에 있는 고산사(高山寺)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또한 골안과 쇠시리재의 분기점으로 행인들의 이동이 빈번했으나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성천 변에 국도 36호선이 개설되면서 꼬부랑재는 방치되어 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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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정해진 놀이판 위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고누는 땅이나 마루, 목침(木枕) 등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말을 놓거나 옮기며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원시적인 형태로 놀이판의 형태와 그에 따른 놀이 방법이 다양하여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널리 하던 놀이이다. 상대편 말을 수를 써서 포위하거나 떼어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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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정해진 놀이판 위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고누는 땅이나 마루, 목침(木枕) 등에 놀이판을 그려 놓고 말을 놓거나 옮기며 승부를 겨루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원시적인 형태로 놀이판의 형태와 그에 따른 놀이 방법이 다양하여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널리 하던 놀이이다. 상대편 말을 수를 써서 포위하거나 떼어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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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이름인 꽃당이 또는 꽃댕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화당(花堂, 花塘)이라 하였다. 하지만 옛 땅이름 죽관리(竹串里)로 보아 ‘화(花)’는 꽃이 아니라 ‘고지’, ‘곶’에서 나온 말이다. 곧 지형이 곶과 같이 튀어나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외에도 옛날 고을 원이 살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향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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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이름인 꽃당이 또는 꽃댕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화당(花堂, 花塘)이라 하였다. 하지만 옛 땅이름 죽관리(竹串里)로 보아 ‘화(花)’는 꽃이 아니라 ‘고지’, ‘곶’에서 나온 말이다. 곧 지형이 곶과 같이 튀어나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외에도 옛날 고을 원이 살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향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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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동현동에 있는 월드비전 충북지부 제천가정개발센터의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방과 후 공부방. 꽃때말공부방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습 환경이 열악한 아동들에게 학교 교육 이외의 보충적 학습 지도를 통해 아동의 학습 능력 향상 및 학교 적응력 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꽃때말’은 월드비전 친선 대사인 탤런트 김혜자의 저서 『꽃으로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