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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922
한자 祭禮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집필자 한미옥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돌아가신 조상을 받들고 복을 빌기 위해 행하는 추모 의례.

[개설]

제례는 조상을 추모하고 유덕을 기리는 의례다. 보통 제사(祭祀)라고 하며, 『예기(禮記)』에 ‘추양계효(追養繼孝)’라 하여 제사는 죽은 사람을 계속 공양하여 효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제사란 사후의 예라 할 수 있다. 제례에는 기제(忌祭)·묘제(墓祭)·차례(茶禮)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예서』에는 사시제(四時祭)·이제(禰祭)가 있고, 사당(祀堂)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제례는 부여(夫餘)에서 영고(迎鼓)라 하여 12월에 하늘에 제사하였고,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이라 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냈으며, 동예(東濊)에서는 무천(舞天)이라 하여 10월에 하늘에 제사지낸 기록을 통해 그 시초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도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하늘과 종묘사직에 제를 지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한편 사가(私家)의 제례는 고려 시대에는 대부(大夫) 이상은 증조까지 3대, 6품(品) 이상의 벼슬아치는 할아버지까지 2대, 7품 이하의 벼슬아치와 평민은 부모만을 가묘(家廟)를 세워 제사지내게 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거를 두어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고조까지 4대를 봉사(奉祀)하게 했고, 이러한 제례 풍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절차]

제례상례와 함께 일생 의례 중에서 변화가 가장 늦게 일어나는 의례이다. 따라서 화순 지역의 제례 역시 과거와 현재가 크게 차이는 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현재 화순 지역의 제례 절차를 기제사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돌아가신 날을 기일(忌日)이라고 하며, 대상(大祥)을 지낸 일 년 후부터 매년 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가 기제(忌祭)이다. 오늘날 보통 제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그런데 화순 지역에서는 기제를 돌아가시기 전날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제에는 4대 조상(四代祖上)까지 모신다. 지손인 경우에는 자기가 모시는 조상의 제사만을 지내기 때문에 2대 또는 3대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5대조 이상은 묘제(墓祭)로 모신다.

기일이 돌아오면 제주(祭主)는 이삼일 전부터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초상난 집이나 산고든 집 등 궂은 곳의 출입을 삼가며 시장에서 제수를 준비하여 기일 자시를 기하여 제례를 거행한다. 제사에는 제주의 팔촌까지 참여할 수 있다.

1. 제청(祭廳)

제청은 제사지내는 곳이다. 제청에는 병풍을 치고 교의를 세우며 제상을 놓고 향반 앞에 모사 그릇을 놓는다. 향반 위에 향합과 향로를 준비하고 모사 그릇에는 깨끗한 모래를 담고 띠[茅]를 묶어 꽂는다.

2. 지방(紙榜)

지방은 신위(神位)를 표시하는 신표(神標)로서 대개 가로 6㎝, 세로 22㎝ 정도의 한지에 붓과 같은 검은색 필기구로 세로로 내려서 쓴다. 맨 위에 고인을 높이는 뜻을 지닌 ‘현(顯)’자를 쓰고 그 다음에 조부모 이상의 경우에는 고조(高祖)나 증조(曾祖) 등과 같은 제주의 친족 호칭을 쓴다. 이어서 고조부(高祖父)·증조부(曾祖父)·조부(祖父)일 때는 ‘고(考)’자를 쓰고, 고조모(高祖母)·증조모(曾祖母)·조모(祖母)일 때는 ‘고(考)’자 대신 ‘비(妣)’자를 쓴다. 여기서의 고(考)는 사후의 부(父)를, 비(妣)는 사후의 모(母)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 ‘고(考)’자 다음에 관직이나 학위(學位)가 있으면 관직명이나 학위명을 쓰고, 없으면 ‘학생(學生)’이라고 쓴 다음 이어서 ‘부군 신위(府君神位)’라고 쓴다. 여자의 경우는 ‘비(妣)’자 다음에 ‘유인(儒人)’이라고 쓰고 그 밑에 본관(本貫)과 성씨(姓氏)를 쓴 다음 ‘신위(神位)’라 쓴다. 부군이란 바깥 조상의 존칭이다. 그런데 아우나 아내, 자식의 경우에는 맨 위에 ‘고(故)’자나 ‘망(亡)’자를 쓰고 ‘부군(府君)’ 대신 이름을 쓴다.

기제 때 모시는 신위는 조상 일위(一位)로 한정하는 경우도 있고, 합사(合祀) 즉 고비(考妣)를 함께 모시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가문의 법도에 따라 다르나 부부를 합사하는 경우가 많다. 합사할 때의 지방은 같은 종이 왼쪽에 고위(考位)[남자], 오른쪽에 비위(妣位)[여자]를 나란히 쓴다. 그런데 근래에는 지방 대신 고인의 초상화나 사진을 놓는 경우도 있고 사진이나 초상화를 지방과 같이 놓는 경우도 있다.

3. 제수(祭需)

제사에 소용되는 물건이나 음식을 제수 또는 제물(祭物)이다. 제사 음식은 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인 제수로는 메[밥], 삼탕(三湯), 삼적(三炙), 소채(蔬菜), 청장(淸醬), 청밀(淸蜜), 병(餠), 포(脯), 유과, 다식, 실과(實果), 제주(祭酒), 갱수(更水)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은 제찬 중에서도 주과포(酒果脯)란 말이 있듯이 술, 과일, 포는 제사 음식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난한 가정의 제사라도 최소한 이런 것들은 갖추어야 한다. 제사 음식을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만들되 특히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과일이라 하여 삼간다. 또한 개고기, 뱀장어와 갈치, 꽁치, 삼치 등과 같이 치자가 들어가는 어류와 호박 등은 제물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4. 진설(陳設)

제사 음식을 제상에 차려놓는 것을 진설 또는 진찬(進饌)이라고 한다. 진설에도 격식이 있지만,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한다”는 말처럼 가정마다 제수 진설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순 지역에서 진설하는 차례를 보면 신위 앞에서부터 첫째 줄에는 메[밥]와 갱[국]처럼 주된 음식을 놓고, 둘째 줄에는 적이나 전 등의 술안주, 셋째 줄에는 탕류, 넷째 줄에는 나물·간장·김치 등과 같은 밥반찬, 다섯째 줄에는 과일이나 과자류인 후식을 차린다.

5. 제차(祭次)

진설이 끝나고 자정이 되면 분향강신, 참신, 초헌, 아헌, 종헌, 유식(侑食), 계반(啓飯), 삽시(揷匙), 합문, 계문, 점다(點茶), 철시(撤匙), 복반(復飯), 사신(辭神), 음복(飮福), 철상(撤床)과 같은 절차에 따라 제사를 거행한다.

음복을 하면서 제물을 조금씩 떼어다가 대문 앞에 버리기도 한다. 이는 무주신(無主神)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이어 제상 위의 모든 제물을 뒤쪽에서부터 거두어 물리고 제사를 끝낸다. 그런데 근래에는 가정의례 준칙에 따른 제차를 실행하는 집안도 많은데 그 순서를 보면 신위 봉안(神位奉安)[고인의 사진이나 지방을 모심], 참신(參神)[참사자 일제히 신위 앞에 재배], 강신(降神)[제주가 분향하고 모사에 술을 약간 붓고 재배함], 헌작(獻酌)[술을 올리는 일인데 단헌이 원칙이나 초헌, 아헌, 종헌과 같이 삼헌까지도 무방함], 독축(讀祝)[제주나 다른 사람이 축문을 읽는 데 독축 후 제주가 재배함], 삽시(揷匙)[메에 숟가락을 꽂고 모든 참사자는 묵념], 헌다(獻茶)[숭늉을 국과 바꾸어 놓고 메를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숭늉에 세 번 담근 다음 수저를 거둠], 사신(辭神)[고인의 영혼과 작별하는 절차로 참사자 모두가 신위 앞에 재배], 신위 봉환(神位奉還)[사진을 거두고 지방과 축문을 불사름]으로 한다.

6. 단자(單子)

제사 지낼 때 음복을 가족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한다. 동네 사랑방에 모여서 노는 사람들이나 마을 청년들에게 떡과 몇 가지 안주와 술을 돌린다. 따라서 마을에서는 “오늘 밤 누구네 집 제사니까 몇 시경에는 밤참을 먹을 수 있겠다”고 하면서 밤참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풍속이 있었다. 또 이튿날 아침에는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이웃에도 음식을 돌린다.

또 제삿날 단자를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화순군 백아면 서유리에서는 어느 집에 제삿날이 돌아오면 저녁때쯤 받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목침이나 종이에 적어서 바구니와 함께 그 집안에 던지면 제삿집에서는 음식을 담아 보내준다고 한다. 주로 서당이나 글공부하던 학동들, 밤늦도록 품앗이로 길쌈하는 아낙네들, 사랑에서 노는 사랑꾼들이 단자를 보낸다. 제삿집에 단자가 오면 그냥 보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6 내용수정 북면-> 백아면
이용자 의견
윤** 2020년 1월 1일부터 북면에서 백아면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수정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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