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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001
한자 慶山-八公山-文化的價値-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희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팔공산의 문화유산과 문화적 가치 재조명.

[개설]

팔공산(八公山)은 경상북도에서 관리하는 팔공산도립공원과 대구광역시에서 관리하는 팔공산자연공원으로 구분된다. 팔공산의 지리적 범위는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하양읍, 칠곡군 가산면, 영천시 신녕면·청통면과 대구광역시 동구, 군위군 부계면에 걸쳐있다. 팔공산의 총면적은 경상북도가 90.242㎢, 대구광역시 동구가 35.365㎢로 총 125.607㎢에 이른다.

이 중 경산시 와촌면에 해당되는 면적은 9.229㎢이다. 공원 내 마을지구로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퍽정지구, 솔매기지구, 대한지구가 있다. 팔공산은 경산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탐방객들이 찾는 곳이다. 팔공산이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것은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유산·설화 등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헌 속의 팔공산]

팔공산은 통일 신라 시대 오악(五岳)[토함산, 지리산, 계룡산, 태백산, 공산] 중 하나로 산악숭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雜志)의 제사지(祭祀志) 중사(中祀) 편에 따르면 “오악은 동쪽의 토함산[대성군(大城郡)], 남쪽의 지리산[청주(菁州)], 서쪽의 계룡산[웅천주(熊川州)], 북쪽의 태백산[내이군(奈已郡)], 중앙의 부악(父岳) 또는 공산(公山)[압독군(押督郡)]이다”라고 하여, 오악의 중심부로 경산의 팔공산을 기록하고 있다.

또 지금의 와촌면 일부는 조선 시대 영천군(永川郡)에 속해 있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경상도 영천군 편에는 “공산은 고을 서쪽 30리에 있다. 대구부(大丘府) 조에도 있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세호(金世鎬)[1806~1884]가 경상도 71개 군현의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교남지(嶠南誌)』의 하양군 산천(山川) 조에는 “군의 북쪽 20리에 있고, 칠곡 동쪽 경계에서부터 대구 북쪽 경계를 지나온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팔공산은 고대 산악숭배의 대상으로 주목받았으며, 전통시대 편찬된 지리지와 읍지 등에서 비중 있게 언급되어 있다.

[경산 팔공산의 천년 고찰과 불교 문화유산]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통일 신라 시대 때 오악 중 하나였던 팔공산은 자연스레 불교의 성지로 인식되었다. 많은 신라인들이 불교를 섬기기 위해 신성시하였던 팔공산을 찾았고, 팔공산에 사찰과 암자, 탑 등을 만들어 놓고 부처님을 섬겼다. 그 결과 현재까지 팔공산에는 유서 깊은 선본사(禪本寺)·불굴사(佛窟寺)·천성암(天成庵)과 같은 사찰이 세워졌으며, 현재까지도 탑과 불상 등 많은 불교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다.

1. 선본사[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699]

팔공산 관봉에 위치한 선본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직영 사찰로 491년(신라 소지왕 13) 극달(極達)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1641년(인조 19) 수총(秀聰)이 중창하였으며, 1766년(영조 42) 기성(箕成)이 중건하였다. 1820년(순조 20) 운암(雲岩), 1877년(고종 14) 낙허(樂虛)가 각각 중수하였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1957년에 건물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선본사에는 갓바위로 널리 알려진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이 있다. 높이는 4m이고, 자연석을 머리에 이고 있어서 흔히 ‘갓바위 부처’라고 부른다. 638년(신라 선덕여왕 7) 원광(圓光)의 제자 의현(義玄)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갓바위 부처의 형태는 전반적으로 앉아 있는 대좌(臺座)의 모습을 하고 있다.

왼손은 대좌를 한 다리와 수평으로 나란히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놓여 있고, 오른손은 다리를 잡으며 손끝이 땅을 보고 있다. 얼굴은 둥근형에 살짝 올라간 눈매이고, 눈썹 사이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돌출되어 있다. 귀는 비교적 길게 어깨선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불상의 앞면과 옆면은 옷자락이 내려와 다리를 덮고 있다.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조선 시대 지도인 『1872년 지방지도』 중 「하양현지도」에서도 확인된다. 「하양현지도」를 보면 선본암(禪本菴) 바로 옆에 갓바위 형태의 불상이 그려져 있고 관봉(冠峯)이라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도 관봉에 불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본사 경내에 있는 선본암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역시 신라 시대의 탑으로 추정되는데, 현재의 석탑은 1979년에 복원한 것이다. 갓바위 부처로 유명한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선본사 사이에 위치한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2층 기단(基壇)에 탑신(塔身)은 3층으로 올리는 것이 일반적 형태였는데, 선본암삼층석탑 역시 이를 따르고 있다. 기단에는 네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세로로 줄무늬가 새겨져 있고 탑신에는 모서리마다 세로 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의 각 밑면은 5줄씩 계단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위로 갈수록 퍼지는 형태다.

한편, 선본사 칠성각에는 1802년(순조 2) 국성(國成)이 그린 경산 선본사 신중탱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2호]가 있다. 신중탱화는 전체 3폭의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01.5㎝, 세로 117.3㎝이다. 신중탱화 아래쪽에는 제작 시기와 참여자가 기록되어 있어 탱화의 사료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신중탱화에는 ‘□경칠년임□사월초팔일(□慶七年壬□四月初八日)’이라 기록되어 있어 가경(嘉慶) 7년인 1802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탱화 참여자에는 국성(國成)을 비롯하여 경보(景甫), 경오(慶晤), 상언(商言), 채언(采彦), 성의(成義), 율영(律英), 여성(如性), 금점(錦占), 화윤혜(華允慧) 등 총 10명이다.

2. 불굴사[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

불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불굴사는 690년(신라 신문왕 10년)에 창건되었는데, 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50여 채의 건물과 12개의 암자가 있었을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흘러 절의 규모가 줄어들었다가 1723년(경종 3)에 새로 중건하였지만 1736년(영조 12) 홍수로 산사태가 나면서 다시 보수하였다.

1860년(철종 11) 유혜(有惠)·쾌옥(快玉)이 중창하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 1939년 은해사의 백현(伯鉉)에 의해 다시 중창되었다. 1988년 당시 주지였던 원조가 원래 있었던 대웅전의 위치를 찾으면서, 대웅전 자리에 적멸보궁을 지어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불굴사 경내에는 경산 불굴사 삼층석탑[보물 제429호]이 있다. 탑은 선본암삼층석탑과 같은 형태로, 기단이 2단이며 기단 위의 탑신(塔身)은 3층으로 되어 있어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에는 장방형의 긴 돌로 사각형을 만들어 탑의 영역을 구성하고 2단 기단 사이에는 괴임돌을 두었다.

위층 기단의 네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세로 줄무늬가 새겨져 있고 3층 탑신도 모서리마다 세로 줄무늬가 있다. 가운데 돌에는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을 새겨 놓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모두 하나의 돌을 이용하여 짰으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는 모두 4단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남아 있다.

불굴사 내에는 고려 시대에 제작된 불굴사석조입불상(佛窟寺石造立佛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이 있다. 지면에 있는 화강암 바위를 그대로 활용하여 받침대로 만들고, 받침대 위에 불상이 세워져 있다. 받침대는 모두 2단인데, 아랫단은 사각형의 형태이며 윗단은 연꽃무늬를 조각해 전반적으로 둥근 형태이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가 233㎝, 어깨 폭이 75㎝, 머리 높이가 53㎝이다. 즉 불상의 머리가 전체 높이의 4분의 1을 차지하여 전반적으로 머리 부분이 몸에 비해 크게 조각되었다. 머리 정수리 부분에는 둥근 육계가 솟아있고, 머리모양은 이마 경계선을 따라 구분 지어져 있다.

불상의 얼굴은 훼손되어 있어서 다시 새긴 모습이며 목에는 세 줄의 삼도가 표현되었다. 불상의 옷은 양 어깨에서부터 발목까지 덮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전면을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한다.

불굴사 뒤편에는 창건 이전에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원효굴이 있는데 석굴의 형태이다. 일명 홍주암(紅珠庵)이라고도 한다. 원효굴은 1976년 내부 보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신라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불상 1점이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

3. 천성암[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216-111]

천성암은 정확한 창건 시기를 알 수 없으나 통일 신라 시대인 문무왕[661~681] 대와 흥덕왕[826~836] 대 두 시기가 전해지나, 창건자로 알려진 의상대사가 702년(성덕왕 1)에 입적하였으므로 문무왕 대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내의 산령각 좌우에는 의상대사가 중국 북경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천도복숭아 두 그루가 있다. 오랫동안 쇠락해 있었지만, 1954년 요사채, 1959년 관음전, 1960년 산령각을 차례로 건립하며, 암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4. 원효암[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386-73]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휴게소에서 관음휴게소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일출지에 못 미쳐 우측에 원효암이 있다. 원효암에는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경산원효암마애여래좌상(慶山元曉庵磨崖如來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6호]이 있는데, 원효암 극락전 뒤편에 있는 약 4m 바위의 전면에 반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형태는 연화좌 모양 위에 결가부좌한 좌불로 뒤쪽에는 광배(光背)가 표현되어 있다.

[팔공산에 얽힌 전설들]

경산의 팔공산은 오래전부터 영산(靈山)으로 인식되었던 만큼, 여러 편의 신이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팔공산에 얽힌 이야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연 소원을 들어주는 갓바위이다. 갓바위를 찾아 정성껏 기도를 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매년 갓바위를 찾는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불굴사는 1736년(영조 12) 큰 홍수로 산사태가 일어나 사찰이 소멸된 적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전라도 순천의 송광사(松廣寺)에 머물던 한 노승이 현몽하여, 불굴사를 중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찰 내 약사여래입상도 1736년 홍수로 매몰된 것을 노승이 현몽한 것을 토대로 다시 찾아낸 것이라고 한다.

불굴사 원효굴은 신라 시대 원효가 최초로 수도 정진을 하던 곳이며, 김유신(金庾信)이 17세 때 삼국 통일을 기원하며 수련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원효굴 내부에는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만큼 이곳에 좋은 약수가 있어, 신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선본사갓바위가 갓을 쓴 남성상[양(陽)]을, 불굴사의 약사여래입상이 족두리를 쓴 여성상[음(陰)]을 상징한다 하여 근처 마을 이름이 음양리(陰陽里)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와촌면 소월리의 갈밭마을에는 약 200여 년 전까지 100호 이상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마을 위의 작은 계곡 옆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아마 팔공산에 있는 바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바위에는 매일 밤 섬광이 비치고 공중에서 불빛이 새어나와 주민들이 바위를 들어 젖혀보니, 바위 아래에 있던 용의 새끼가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마을 주민들이 이유 없이 모두 마을을 떠나고 마을이 황폐해졌다는 것이다. 이 바위를 ‘용바위’라 부르며, 바위 밑에는 당시 용이 살던 흔적으로 방 모양의 넓은 홈이 파여져 있다.

[경산 팔공산의 문화적 가치]

우리나라 불교는 인도와 달리 불교에 기복신앙이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소원을 빌곤 한다. 대입수학능력시험 때만 되면 부모님들이 자녀의 합격을 위해 갓바위를 찾는 것도 익숙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경산의 팔공산은 고대 불교문화와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선본사·불굴사·원효암·천성암 등의 사찰과 암자, 여러 불상과 탑 등 많은 불교 문화유산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유적들에는 신라 시대 김유신·의상대사·원효대사 등의 명현들을 비롯하여 이름 모를 지역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이러한 팔공산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현재 경산시에서는 여러 문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갓바위 일대를 중심으로 매년 개최되는 경산갓바위소원성취 축제갓바위를 콘텐츠화한 문화 축제이다. 지난 2015년에는 경산학회에서 팔공산 갓바위 유네스코 등재 추진을 위한 국제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경산의 팔공산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경산 시민과 함께하는 명산으로서, 그 문화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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