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941
한자 佛窟寺
영어공식명칭 Bulgul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강학리 7]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90년연표보기 - 불굴사 건립
중수|중창 시기/일시 1723년 - 불굴사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860년 - 불굴사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39년 - 불굴사 중창
문화재 지정 일시 1965년 9월 1일 - 경산 불굴사 삼층석탑 보물 제429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불굴사 적멸보궁 건립 및 진신사리 봉안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불굴사 약사보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4월 30일 - 불굴사석조입불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8년 - 불굴사 관음전 건립
최초 건립지 불굴사 -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강학리 7]
현 소재지 불굴사 -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강학리 7]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원효
전화 053-854-0440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

[개설]

불굴사(佛窟寺)는 690년(신문왕 10)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범우고(梵宇攷)』 등 전통 시대 문헌 자료에는 불굴사가 신녕(新寧) 편에 기록되어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불굴사는 690년(신문왕 10)에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고, 옥희대사(玉熙大師)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또 원효대사불굴사 석굴에서 수행한 것을 계기로 옥희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전한다. 이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데,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전각 50여 동, 부속 암자 12개, 물방아 8대를 갖추고 승려와 신도들을 공양한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불굴사임진왜란 당시 훼손되었으며, 1723년(경종 3)에 이르러 중창하였다. 그러나 1736년(영조 12) 홍수와 산사태로 전각이 모두 매몰되었다. 이후 순천 송광사(松廣寺)의 한 노승이 불굴사로 와서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1860년(철종 11)에 유혜(有惠)와 쾌옥(快玉)이 중창하였으며, 1939년에 은해사의 장경파백현(張鏡波伯鉉)이 다시 중창하였다.

1988년에 원조(圓照)가 대웅전의 본래 위치를 찾았는데, 그 자리에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완공하였다. 진신사리는 1988년에 1과, 1990년에 7과를 각각 사리탑에 봉안하였다. 2014년에 사리탑의 사리를 이운(移運)하였는데, 모두 25과로 증식되었다고 한다. 1990년에 약사보전(藥師寶殿)을 신축하였으며, 2018년에 주지 덕관이 관음전(觀音殿)을 신축하고, 2019년에 석등을 복원하였다.

[활동 사항]

불굴사의 신도는 약 1,400명 정도이다. 사찰과 신도들이 불우이웃돕기 등 지역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불굴사는 적멸보궁, 약사보전, 지장전(地藏殿), 관음전, 산령각(山靈閣), 독성각(獨聖閣), 부도전(浮屠殿), 염불당(念佛堂), 범종각(梵鐘閣), 요사(寮舍), 공양실 및 종무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심 불전은 적멸보궁과 약사보전이다.

적멸보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팔작기와지붕 구조이며,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법당이다. 불상을 두지 않고 법당 뒤편에 사리탑을 조성하여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법당 안에서 투명 유리창을 통해 사리탑을 바라보면서 예배를 올린다. 적멸보궁 앞에는 보물로 지정된 경산 불굴사 삼층석탑(慶山佛窟寺三層石塔)이 있다.

약사보전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팔작기와지붕 구조이며, 내부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불굴사석조입불상(佛窟寺石造立佛像)이 자연암반 위에 2단의 받침대를 딛고 서 있다.

산령각과 독성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인 전각을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지장전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염불당도 지장전 1칸, 염불당 4칸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기와지붕 구조이다.

[관련 문화재]

불굴사는 지정문화재로 보물 1점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을 보유하고 있다.

보물 제429호인 경산 불굴사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 석탑으로, 불굴사 적멸보궁 앞에 위치해 있다. 석탑 주변에 좁은 탑구획(塔區劃)을 만들고 그 안에 기단부(基壇部)를 구축하였다. 하층 기단 면석(面石)의 각 면에 안상(眼象) 문양이 3개씩 장식되어 있고, 상층 기단 면석의 각 면에는 우주(隅柱)[바깥 기둥]와 1개의 탱주(撑柱)[기단부 중간에 새긴 기둥]가 있으며 상층 기단 갑석(甲石)[기단 위에 놓는 돌] 밑면에 부연(附椽)[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 또는 갑석 받침]이 있다. 하층 기단과 상층 기단 모두 갑석의 윗면에 높은 호형(弧形)과 낮은 각형(角形)의 괴임을 두었다. 탑신부는 3층 모두 지붕돌과 몸돌을 각각 1개의 돌로 조성하여 쌓았다. 각층 몸돌에는 우주가 있다. 지붕돌받침은 4단씩이고, 윗면에는 2단의 각형괴임을 내어 각기 윗층의 몸돌을 받치고 있다. 낙수면이 완만하고 네 모서리 전각(轉角)에 뚜렷한 반전이 있어 경쾌감을 준다. 상층부는 노반석(露盤石), 복발(覆鉢) 등의 장식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안정감이 있고 탑구(塔區)[탑 주변을 구분하는 구조물]가 마련되어 있어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 석탑으로 주목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인 불굴사석조입불상은 고려 시대 불상으로 약사보전 내에 위치해 있다. 불상의 머리 부분이 몸에 비해 다소 크게 조각되었다. 머리에 굵고 둥근 육계(肉髻)가 솟아있고, 얼굴의 입·눈·코·귀는 훼손되어 얼굴 크기에 맞게 다시 새겨졌다.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앞으로 향한 모습이나 왼손은 없어져서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다. 지금은 수리하여 보주(寶珠)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목 아래쪽과 머리 쪽에 있는 큰 구멍은 광배(光背)를 붙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불굴사에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성보물이 있다. 삼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石燈)은 화사석(火舍石)[불을 밝히는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통일 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등 앞에 있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두어 예를 갖출 때 쓰는 돌]은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양이 없는 일반형의 배례석이다. 또 불굴사 경내 담 동쪽 산기슭에 4기의 부도(浮屠)가 유존하는데 3기는 전형적인 조선 시대 석종형(石鐘形) 부도이고 1기는 현대 부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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