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호동 원사호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63
한자 沙湖洞元沙湖-堂山祭
이칭/별칭 사호동 원사호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45년 8.15광복 이후 - 사호동 원사호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어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원사호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원사호마을 중앙지도보기
의례 장소 아들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원사호마을 입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느티나무]|할머니당산[느티나무]|아들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원사호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사호동 원사호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원사호마을의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 아들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제일이 2월 1일이 되는 때도 있었으나, 이는 매우 특이할 일이 있을 때였다.

[연원 및 변천]

원사호마을은 1600년경에 이천서씨(利川徐氏)의 이주와 정착으로 형성되었으며, 마을 앞에 넓은 황룡강이 흘러 마치 호수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속칭 '새우개'라고도 하였다. 당산제는 마을 형성 이후부터 지냈던 것으로 보이며, 8.15광복 이후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신당/신체의 형태]

원사호마을의 당산은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 아들당산으로 모두 세 곳이다. 할아버지당산은 마을 위쪽, 할머니당산은 마을 중앙, 아들당산은 마을 입구에 있었는데, 모두 느티나무가 신체 역할을 하였다.

[절차]

사호동 원사호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가 되면 마을 회의를 열어 유사 및 유사를 돕는 사람을 선출한다. 유사는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맞고, 산고 등의 궂은 일이 없으며, 개고기를 비롯한 궂은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된다. 제비(祭費)는 각 호마다 걷기도 하고, 마을 제답의 세로 충당하기도 한다. 제물(祭物)은 유사 부부가 장에 가서 구입하는데, 과일, 포, 나물, 돼지머리 등으로 소박한 편이다. 음식은 유사집에서 유사 부부가 협력하여 만든다. 제기(祭器)와 돗자리는 매년 새로 구입하여 사용하며, 제사가 끝나면 유사가 소유한다. 음식 장만 시에는 청결에 각별히 유의하는데, 한지로 입을 가리기도 한다. 제일(祭日)을 며칠 앞두고 마을 입구와 당산 주변, 유사집 주변, 샘 주변에 왼새끼에 백지를 꽂은 생대를 양쪽으로 세워 금줄을 친다. 금토는 제일 아침 일찍 금줄이 쳐진 곳과 마을 골목에 놓아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금줄을 치게 되면 외부인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샘과 유사집의 출입도 삼가해야 하는데, 제물 장만에 쓰는 물은 금줄이 쳐진 샘에서만 길어다, 목욕재계 후 사용해야 한다. 정월 열사흗날 밤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준비된 제물을 갖춰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 아들당산 3곳에 제사를 지내는데, 유사 부부와 이들을 돕는 사람만 참여한다. 원사호 당산제는 별도의 당산굿을 치지는 않았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현황]

사호동 원사호마을 당산제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탄압으로 간소화되었다가 8.15광복 이후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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