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음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253
한자 息陰堂
이칭/별칭 명발제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봉정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식음당 건립
현 소재지 식음당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봉정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식음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봉정리
성격 사당
양식 팔작지붕|오량집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나주오씨 문중
관리자 나주오씨 문중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당.

[개설]

식음당(息陰堂)은 1919년 오익수(吳益洙)가 오현석(吳玄錫)[1646~1708]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건립하였다. 원래 나주오씨 선산 언덕에 식음정(息蔭亭)이 있었으나, 지금은 정자는 사라지고 오현석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변하여 식음당이라 한다. 오현석이 세운 식음정은 광산구에 석문동천(石門洞天)이라고 불리는 석문산과 주변의 노송과 괴석이 둘러진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였으며,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뜻이다. 본래 오현석이 띠집을 지어 유유자적하며 지냈던 곳이다. 식음당은 정남향으로 이곳에서 해가 밝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명발제’라고 하였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오현석의 학덕을 높이 평가해 호를 식음(息蔭)으로 지어 주고 식음당이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 또한, 김창협의 아버지 김수항(金壽恒)이 영암에 유배되어 있을 때는 종종 식음당에 들려 시주(詩酒)로 즐겼으며, 1698년(숙종 24)에는 ‘오 상사(吳上舍) 계휴(啓休)에게 주다’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 이 외에도 기봉(棊峯) 남정중(南正重)[1653~1704], 정이(定而) 조정만(趙正萬)[1654~1739]의 시가 남아 전한다.

[위치]

식음당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봉정마을에 있다.

[변천]

식음정(息蔭亭)은 본래 오현석이 지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오현석을 제향하는 사당인 식음당(息陰堂)이 되었다.

[형태]

식음당은 5단의 화강석 석계를 놓고 5단의 기와로 기단을 올린 위에 주초석을 놓고 배흘림의 형태를 가진 원형 기둥을 세웠다.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었다. 내부는 중앙에 대청을 놓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천장이 우물천장으로 대들보 위에 사다리꼴 판대공을 보아지와 함께 마룻보와 마룻대를 가구한 오량집[五樑架]이다. 처마는 홑처마로 양철 물받이를 달았고 담장은 토석으로 혼축한 담장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이다.

[현황]

식음당은 100년이 된 정자로 규모 있게 건축되어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식음당 인근에는 문학적 교류를 알 수 있는 기정진(奇正鎭)·오계수(吳繼洙)·오준선(吳駿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934년에 세운 도림사(道林祠)와 상지마을 일대가 자연마을과 더불어 문화유적이 풍부하여 이를 잘 연계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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