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전동 용전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34
한자 龍田洞龍田-堂山祭
이칭/별칭 용전동 용전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45년 해방 이후 - 용전동 용전마을 당산제 중단
재개 시기/일시 1990년대 중반 - 용전동 용전마을 당산제 재개
의례 장소 당산나무 -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 용전사거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대보름
신당/신체 당산나무[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전동 용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용전동 용전마을 당산제는 마을 입구인 용전사거리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시는 공동 제의이다. 본래 두 곳의 당산에서 제를 지냈으나 해방 이후에 중단되었으며, 현재의 당산제는 '용전 들노래'[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용전동 일대에서 불려지던 노동요] 복원을 계기로 1990년대 중반에 복원된 제의이다.

[연원 및 변천]

용전마을은 진주정씨(晉州鄭氏)와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처음 들어와 형성하였다고 전해지는데, 1849년 광산김씨 김상홍이 과거에 급제하여 마을에 솟대를 세웠다고 하니, 그 이전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당산나무 두 곳에서 당산제를 지내왔으나, 8.15해방 이후 중단되었다가 '용전 들노래'를 복원하면서 1990년대 중반에 당산제도 복원하여 지내고 있다. 제의는 과거보다 축소되고 변화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전마을의 당산은 두 곳으로 마을 중앙에 할아버지당산, 마을 아래쪽에 할머니당산이 있었다고 한다. 수종은 느티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당산제가 없어지면서 일제강점기 때 마을 '소작회'의 회장이었던 노남용이 당산나무를 베어 버렸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따라서는 고사(枯死)되었거나 경지 정리로 없어졌다고도 알려져 있다. 용전마을 안에는 당산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과거 당산나무가 있던 곳으로, 현재 용전동 331~332번지 일대를 가리킨다. 현재 당산나무는 용전사거리[용전동 629-35]에 있는 수령 150여 년의 느티나무로, '용전 들노래' 기념비가 그 앞에 세워져 있다.

[절차]

용전동 용전마을 당산제는 과거에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냈다. 정월 초닷새에 마을회의를 열어 제관과 축관, 화주를 선정하는데, 제관과 축관은 아들이 많고 학식이 있는 마을 어른을, 화주는 정결한 사람을 뽑는다. 제물(祭物)은 삼실과, 나물, 돼지머리, 밥, 떡 등을 준비하는데, 제비(祭費)는 마을 재산의 이자로 충당하였다. 당산제 당일 오전에는 마을 입구와 당산나무 주위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뿌려 부정의 출입을 막았다. 밤 10시 무렵에 나발을 불어 제의 시작을 알렸으며 화주집에서 장만한 음식은 정결한 마을 사람들이 당산으로 옮겨 진설하였다. 제물 중 돼지머리 윗턱은 할아버지당산에 아래턱은 할머니당산에 진설하였다. 제의(祭儀)는 유교식으로 진행되어 제관들과 성인 남자들만 참여가 가능하였으나, 농악대도 함께 참여하였다. 제의 후에 마을 소지, 개인 소지 순으로 소지를 올리고 할머니당산 헌식터에 제물을 조금씩 떼어 헌식하였다. 음복 후에 다시 나발을 불어 제의가 끝남을 알렸다.

현재 당산제는 정월대보름에 지낸다. 오전 10시 무렵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굿을 치면서 당산나무 앞에 가서 간단한 제를 지낸다. 제물은 돼지머리, 나물, 밤, 대추, 곶감, 사과, 명태, 막걸리 등으로 간소하다. 제비는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각출하여 마련하고, 제물을 마련하고 남은 돈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을 음식을 장만한다. 당산나무에 금줄을 두르고, 제물을 진설하고 헌작한 후 재배하는 간단한 순서로 진행하고 있다.

[부대 행사]

과거에는 당산제가 끝나고 다음날인 정월대보름에 마을샘을 시작으로 당산나무를 거쳐 집집마다 굿을 치는 마당밟이가 벌어졌다. 또한 동쪽과 서쪽으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였다. 현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을 나누었으며, 동쪽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서쪽이 이기면 흉년이 든다는 속신이 전해오기도 한다. 줄다리기 후에는 공동으로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놀았다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마을 창고에 줄을 보관하였는데, 줄이 오래되어 삭으면 태우거나 액막이용으로 줄의 일부를 잘라 문지방 위에 걸어 두기도 하였다. 이후 25일에는 마을의 여러 가지 사항들을 결정하는 마을회의를 개최하였다.

[현황]

용전동 용전마을 당산제는 8.15해방 이후 중단되었다가 '용전 들노래'를 복원하면서 1990년대 중반에 함께 복원되어 지속되고 있다. 다만 제의는 과거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고 변화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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