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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07
한자 張善徵
이칭/별칭 정지(靜之),두곡(杜谷),서엄(西崦),풍양군(豊陽君),정장공(正莊公),정장(正莊)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선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14년연표보기 - 장선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장선징 철원부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장선징 증광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7년 - 장선징 병조참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77년 - 장선징 한성부판윤 재임
몰년 시기/일시 1678년연표보기 - 장선징 사망
묘소|단소 장선징 묘소 -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산1-5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덕수
대표 관직 한성부판윤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있던 월파정의 주인이었던 조선 후기 문신.

[가계]

장선징(張善徵)[1614~1678]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자는 정지(靜之), 호는 두곡(杜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목천현령 장일(張逸)이고,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장운익(張雲翼)이다.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 계곡(谿谷) 장유(張維)이고, 어머니는 우의정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효종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오빠이다.

[활동 사항]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오른 아버지 장유 덕분에 음보(蔭補)로 영희전 참봉(永禧殿參奉)에 임명되었다. 세자익위사위수를 거쳐 1648년(인조 26) 김화현감에 제수되었다. 1662년(현종 3) 철원부사(鐵原府使)로 있을 때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67년(현종 8)에 병조참판으로 신풍군(新豐君)인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풍양군(豊陽君)에 봉해졌다. 이후 대사간·도승지·대사헌 등을 두루 거쳤고 공조와 예조의 판서, 좌우참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74년 숙종이 즉위하니 왕의 원구(元舅)로서, 좌참찬·판의금부사·지경연춘추관사 등을 거쳤다. 1677년(숙종 3) 한성부판윤에 재임 중에, 외척 김우명(金佑明)이 무고하여 송시열(宋時烈)이 거제에 유배되었다. 송시열의 신원을 위해 여러 차례 상소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관직이 삭탈되고 파직되었다. 이후 낙향하여 노들 나루가 보이는 곳에 있는 월파정에 은거하다가 1678년(숙종 4)에 나이 65세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승을 지낸 아버지 장유의 교훈을 이어받아 단아(端雅)하고 간결(簡潔)하였다. 조금도 척리(戚里)의 풍습이 없었고 청론(淸論)을 좋아하여 당시의 명망이 심히 중하였다고 당대에 평가받았다. 허적(許積)과 서로 친하여 숙종 초에 장선징과 함께 논사(論事)하였다.

[묘소]

처음에는 조선 시대 경기도 금양(衿陽)에 장사 지냈다가 9년 후에 아버지 장유의 무덤이 있는 경기 안산(安山)에 천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장(正莊)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7.26 내용 변경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월파정을 지었던 조선 후기 문신. →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있던 월파정의 주인이었던 조선 후기 문신. [활동 사항] 이후 낙향하여 동작 나루가 보이는 곳에 월파정을 짓고 은거하다가 1678년(숙종 4)에 나이 65세에 사망하였다. → 이후 낙향하여 노들 나루가 보이는 곳에 있는 월파정에 은거하다가 1678년(숙종 4)에 나이 65세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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