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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벌노현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366
한자 仍伐奴縣
영어공식명칭 Ingbeollo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박명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삼국 시대[고구려] - 잉벌노현 설치
폐지 시기/일시 757년(경덕왕 16) - 잉벌노현에서 곡양현으로 개칭
관할 지역 잉벌노현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지도보기|신대방동지도보기|상도동지도보기

[정의]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인 757년까지 관할하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잉벌노현은 고구려와 신라의 지방행정구역 명칭이다. 475년 이후 고구려가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후 신라의 한산주 소속 현명(縣名)으로 사용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지명을 모두 한자식으로 바꿀 때 곡양현으로 개칭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잉벌노현은 고구려의 지방행정구역으로 757년 곡양현(穀壤縣)으로 개명되기 이전까지 신라에서 계속 사용하였던 지명이다. 설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475년 백제의 수도 지역인 서울 지역을 빼앗은 이후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새롭게 얻은 한강 지역을 체계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7 잡지6 지리4 고구려조에 “한산주 … 잉벌노현 …”라고 하여 잉벌노현은 고구려 한산주의 지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경덕왕조에 "한산주는 한주(漢州)라 고쳐 주 1·소경 1·군 27·현 46을 영속케 하고 …"라고 한 기록과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잡지4 지리2 신라조에 “곡양현은 본래 고구려 잉벌노현이었는데 경덕왕 때에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금주(黔州)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잉벌노현은 신라 한산주 잉벌노현을 거쳐 경덕왕 때에 한주 곡양현으로 개명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내용]

지금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관할하였던 잉벌노현은 고구려가 475년 한강 지역을 빼앗은 이후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삼국사기』에 한산주 소속 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757년까지 신라의 현명(縣名)으로도 사용하였을 것이다.

[변천]

『삼국사기』에 따르면 잉벌노현은 원래 고구려의 명칭이었고 경덕왕 때인 757년(경덕왕 16) 12월에 곡양현으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잉벌노현의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다. 곡양현은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에 금주로 개명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금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관할하던 잉벌노현은 고구려의 지방행정구역으로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였던 서울 지역을 빼앗은 이후 체계적으로 영역 지배를 시도하였음을 보여주는 지명이다. 또한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소재 호암산성에서 ‘仍伐’이 새겨진 청동숟가락이 확인됨으로써 『삼국사기』의 ‘잉벌노현’ 지명 기록이 가지는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8.14 내용 변경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9 신라본기9 경덕왕조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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