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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16
한자 二·二八 民主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0년 2월 28일연표보기 - 2·28민주운동 전개
성격 민주운동

[정의]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난 학생 민주운동.

[역사적 배경]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에 예정된 민주당의 강연회에 학생들이 참여할 것을 우려한 자유당 경북도당과 공립학교 당국이 학생들에게 일요일 등교를 지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각 공립학교의 2월 28일 일요일 등교 지시는 2월 25일에 학생들에게 하달되었다.

경북고등학교에서는 3월 3일부터 예정되어 있던 학기말 시험의 일부를 일요일에 실시한다고 발표하였고, 대구고등학교에서는 토끼 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대구여자중학교[현 대구일중학교대구여자고등학교·경상중학교·경북여자고등학교·제일여자중학교[현 대구제일중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공업고등학교 등에서 각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운동회·졸업식 연습·보충수업·무용회·졸업생 송별회 등의 명목으로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였다.

[경과]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은 1960년 2월 25일 교장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준비 관계로 곤란하다·, ‘무슨 이유로 변경하느냐·, ‘그날이 민주당 강연회가 아니냐’ 등을 이유로 들어 일요 등교 거부 의사를 밝혔다. 1960년 2월 26일 경북고등학교에서는 학생위원회를 소집하여 ‘시험 일자 변경의 부당성, 휴식의 자유 보장, 정치 사안으로 피해를 볼 수 없음, 강연회 참석은 학생의 선택 자유’ 등의 이유를 들어 학교의 조치에 따를 수 없다고 결의하였다.

1960년 2월 27일 경북고등학교 학생위원장 자격의 이대우(李大雨)는 결의문 작성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방에서 대구고등학교 및 대구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현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의 대표들과 함께 만나 시위 결행 여부를 놓고 토의하였다. 그러나 결론은 내리지 못하였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에서는 2월 28일 이전부터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사건으로 교내가 들썩였다.

1960년 2월 28일 대구고등학교에서 먼저 교문을 나섰으며, 경북고등학교도 결의문 초안을 3분의 1 정도 낭독하고는 학생들이 일제히 교문을 나섰다. 결의문의 내용은 “일요일에 학생을 동원하는 부당한 처사를 시정하고 학원 내의 학구적인 자유를 찾기 위한 우리의 뜻을 사회에 알리자”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가두시위를 벌이면서 ‘학생 시위의 자유를 달라’, ‘학원의 정치적 이용을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구의 대구고등학교, 경북사대부고, 경북여자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날의 시위는 고등학생이 중심이었고, 각 학교 단위로 펼쳐졌으며, 직접적인 정치적 구호는 나오지 않았다.

[결과]

2·28민주운동은 학원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하였던 이승만 정권에 정면으로 공격을 가함으로써 민주주의 가치를 확산시킨 사건이었다. 민주 학생들 스스로가 정치의 수단 혹은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한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이 학교를 이승만 독재의 도구로부터 탈피시키고자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고,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전망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3·15부정선거 반대 시위를 거쳐 4·19혁명으로 계승되었다. 2·28민주운동은 한국 현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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