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77
한자 大邱 巴洞 岩蔭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산112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 12월 6일~12월 23일 - 대구 파동 암음유적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2년 7월 16일~8월 9일 - 대구 파동 암음유적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파동 암음유적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산112 지도보기
성격 바위그늘 유적
크기(높이,길이,둘레) 8.5m[가로]|2m[깊이]|3m[높이]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늘 유적.

[개설]

대구 파동 암음유적(大邱巴洞岩蔭遺蹟)국립대구박물관에서 학술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 12월 6일부터 2000월 12월 23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신천 좌안 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2012년 7월 16일부터 2012년 8월 9일까지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바위그늘 전면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 포함층이 확인되었고, 주변부에서 남북국시대 돌방무덤[石室墓]과 제사 지내는 곳[祭祀處], 시기 미상의 토광묘 2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류, 석기류, 금속류 등의 유물 조각도 다수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파동 암음유적이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신천의 중상류 지역으로 서쪽의 산성산[653.4m], 동쪽의 법이산[333.9m] 사이 긴 협곡 지역이다. 신천 동안에는 좁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나 서안에는 산성산 자락이 바로 이어진다. 대구 파동 암음유적신천 서안, 즉 산성산 동쪽에 형성된 용두골이라고 불리는 작은 골짜기 입구의 남쪽에 있다. 동쪽에 바로 연접하여 신천이 흐르고 있다.

[형태]

대구 파동 암음유적신천에서 약 30m 정도 떨어져 있다. 신천과는 경사면을 이루면서 연결되나, 바위그늘 뒤쪽은 비교적 경사가 급한 산사면이다. 바위그늘 앞쪽에는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낙반석(落磐石)이 있다.

바위그늘 전면부는 5개의 층위로 구분되어 있다. Ⅰ층은 표토층으로 교란된 층이며, 백자편·청자편·기와편이 수습되었다. Ⅱ층은 삼국시대에서 남북국시대에 이르는 문화층으로 경질 토기 조각과 굽다리접시[高杯], 사발[碗], 뚜껑[蓋] 등이 출토되었다. Ⅲ층은 신천 범람에 의하여 생긴 퇴적층이다. Ⅳ층은 청동기시대 문화층으로 바위그늘과 낙반석 사이에서만 확인되었다. 민무늬토기 조각과 갈돌[磨石], 갈판[碾石], 홈자귀[有構石斧], 격지[剝片] 등이 확인되었다. Ⅴ층은 단단한 고토양층이다.

바위그늘의 규모는 너비 8.8m, 깊이 2m, 높이 4.8m이며, 암질은 화강암이다. 형태는 전체적으로 앞쪽이 좁고 뒤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평면사다리꼴의 암괴이다. 바위그늘의 주체부에 해당하는 암석의 앞면은 비교적 편평하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위쪽이 아래보다 약 2m 정도 돌출되었고, 30° 가량 기울어져 있다. 구조적으로 협소하며,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식량을 가공하는 갈돌과 갈판 등이 확인되는 점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생활 공간으로 이용된 것은 분명하다. 수렵이나 채집 활동 시 임시로 머물던 야영지와 같은 성격의 유적일 가능성이 있다.

[현황]

대구 파동 암음유적은 전면 발굴 조사 이후 신천 좌안 도로 노선이 교량으로 변경되고 교량 기초 부분의 위치가 조정되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파동 암음유적에서 북쪽으로 신천을 따라 내려가면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일대에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이 형성되어 있고, 남쪽 신천 상류부에도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에 고인돌 유적이 형성되어 있다. 대구 파동 암음유적은 청동기시대 신천을 이용한 경제 활동과 관련되는 연구에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