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집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511
한자 溪東集跋
영어공식명칭 A text written behind Gye-dong jip
이칭/별칭 「계동집발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4년 - 장현광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26년연표보기 - 「계동집발」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7년 - 장현광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59년 - 「계동집발」 저자 전경창의 『계동집』 간행
배경 지역 전경창 출신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지도보기
성격 서발류|발문
작가 장현광

[정의]

1626년 대구 출신 문인 전경창『계동집』에 조선 후기 학자 장현광이 적은 발문.

[개설]

「계동집발(溪東集跋)」을 쓴 장현광(張顯光)[1554~1637]은 본관이 인동(仁同)이며, 자는 덕회(德晦)이고, 호는 여헌(旅軒)이다. 아버지는 증이조판서 장열(張烈)이며, 어머니는 경산이씨(京山李氏)로 제릉참봉(齊陵參奉) 이팽석(李彭錫)의 딸이다. 조정에서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거의 나가지 않다가 1602년 공조좌랑으로 부임하여 『주역』 교정에 참가하였고, 형조좌랑에 옮겨졌으나 3개월 만에 돌아왔다. 이후에도 조정의 천거가 그치지 않았는데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일생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전경창(全慶昌)[1532~1585]은 본관이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관직은 검열·정언에 이르렀다. 대구의 연경서원(硏經書院)에 제향되었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출신이다. 저서로 『계동집(溪東集)』이 있다.

장현광은 전경창의 문인인 손처눌(孫處訥)의 부탁으로 1626년 11월 『계동집』 발문 「계동집발」을 작성하였다. 「계동집발문」이라고도 한다.

[구성]

「계동집발」은 완성된 『계동집』 전체 구성의 개략을 설명하고, 『계동집』 소재의 대표적인 작품을 전경창의 인품과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다. 글 말미에 발문을 쓰게 된 경위를 밝히고 있다.

[내용]

「계동집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천(新川) 계곡은 달성부(達城府) 남쪽 파잠(巴岑)[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의 아래로 흐르는데, 공이 동쪽 물가에 살면서 호로 삼았다. 손형 처눌이 공을 스승으로 모셨었는데, 공의 언행을 모은 것과 「가헌(家憲)」, 「가령(家令)」 등 공의 작품, 만사(輓詞), 제문(祭文)을 모아 한 책으로 만들어 나에게 보내 왔다. 책을 읽어 보니 공이 뜻한 바와 행위는 속유(俗儒)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특히 「가헌」「가령」을 보니 집안을 바르게 하고 세속에 모범이 되는 좋은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수록된 글들을 보면 이는 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손형이 공의 행실을 기록한 행장을 부탁하였는데, 이 기록들 자체가 후세에 전할 만하기 때문에 행장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기에 발문을 지어서 돌려주는 바이다.

[특징]

「계동집발」전경창의 문인인 손처눌의 부탁으로 장현광이 쓴 글로, 『계동집』 간행에 앞서서 제작되었다가 간행 후 발문으로 편성된 것이다. 장현광의 『여헌집(旅軒集)』에는 「서전계동 경창 행록후(書全溪東 慶昌 行錄後)」으로 수록되어 있다. 발문이지만 행장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계동집발」은 행장에도 없는 전경창에 관한 사항이 담겨 있다. 손처눌전경창의 문인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실을 수 있었다. 또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서술하고, 대상을 우상화하여 기록하지 않았음을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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