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01
한자 孫肇瑞
영어공식명칭 Son Joseo
이칭/별칭 인보(引甫),격재(格齋),면재(勉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12년연표보기 - 손조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35년 - 손조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51년 - 손조서 승여사 정랑 역임
활동 시기/일시 1455년 - 손조서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
몰년 시기/일시 1473년연표보기 - 손조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53년 - 손조서 서산서원[현 혜산서원]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775년 - 손조서 청호서원에 배향
출생지 송리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
거주|이주지 용평리 -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동
부임|활동지 봉산군 - 북한 황해도 봉산군
사당|배향지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산79-4]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혜산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일직(一直)
대표 관직 병조정랑|지봉산군사

[정의]

조선 전기 대구 청호서원에 배향된 문관.

[가계]

손조서(孫肇瑞)[1412~1473]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인보(引甫), 호는 격재(格齋) 또는 면재(勉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때 좌부대언을 지낸 손득수(孫得壽)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 손영유(孫永裕)이다. 아버지는 감찰 손관(孫寬)이고, 어머니는 김흡(金翕)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부인은 광흥승(廣興丞) 하숙(河潚)의 딸 진주하씨(晉州河氏)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손조서는 1412년(태종 1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났다. 1432년(세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35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을 거처 집현전학사로 발탁되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세종(世宗)을 보필하였다. 1451년(문종 1)에는 승여사(乘輿司)의 정랑이 되었고, 이후 병조정랑과 지봉산군사를 지냈다.

1455년(세조 1) 단종(端宗)이 양위(讓位)하자 손조서는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고, 1456년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성삼문과 박팽년 등이 죽임을 당한 후로는 두문불출하며 은거하였다. 1457년 단종이 사망하자 크게 슬퍼하며 단종에게 충절로 목숨을 바친 옛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한 죄책감으로 비분강개의 삶을 살았다. 이후 호조참의의 벼슬이 주어졌음에도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고, 1455년 이전의 벼슬을 묘비에 써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1473년(성종 4)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손조서의 저술로는 『격재집(格齋集)』 4권 1책이 있다. 손조서는 『사물잠(四勿箴)』을 일상생활에 가장 중요한 지침으로 일컬어서 평소 매번 철저하게 외워 마음속에 품고자 하였다. 또 손에서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놓지 않고 밤낮으로 연구하며 경학(經學)을 강론하였다. 손조서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정여창(鄭汝昌)[1450~1504] 등의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상훈과 추모]

손조서는 1753년(영조 29) 밀양의 서산서원(西山書院)[현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의 혜산서원(惠山書院)]에 배향되었고, 1775년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산79-4청호서원(靑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5.09 이름의 한자 오류 이름의 한자 조를 '肇'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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