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302
한자 孫處訥
영어공식명칭 Son Cheonul
이칭/별칭 기도(幾道),모당(慕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3년 6월 25일연표보기 - 손처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7월 6일 - 손처눌 대구 수성 지역 의병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599년 - 손처눌 대구향교 재건
활동 시기/일시 1602년 7월 - 손처눌 연경서원 중건
활동 시기/일시 1605년 - 손처눌 선사재와 연경서원에서 통강 시작
활동 시기/일시 1615년 - 손처눌 영모재에서 통강 시작
몰년 시기/일시 1634년 6월 15일연표보기 - 손처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94년 - 손처눌 청호서원 배향
출생지 상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상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지도보기
수학|강학지 계동정사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지도보기
수학|강학지 연경서원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지도보기
묘소|단소 손처눌 묘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97-2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4[황금동 산79-4]지도보기
성격 학자|의병장
성별 남성
본관 일직(一直)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가계]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 호는 모당(慕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손세경(孫世經)이고, 할아버지는 현감 손치운(孫致雲)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충의위 이탄(李坦)의 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하성조씨(夏城曺氏)이다. 아들은 손첨(孫添)·손잠(孫潛)·손침(孫沈)이다. 동생은 손처약(孫處約)이다.

[활동 사항]

손처눌은 1553년(명종 8) 6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계동정사(溪東精舍)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이후 향시(鄕試)에 여러 차례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포기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손처눌은 가족을 이끌고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최정산으로 피난하였다. 1592년 7월 6일에 대구 지역의 유림이 주축이 되어 팔공산 부인사에서 의병을 조직하였는데, 이때 수성 지역 의병장을 맡았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황금동 부모님의 묘소 아래 영모당(永慕堂)을 짓고 후세를 교육하였다. 1599년에 난중에 소실된 대구향교(大邱鄕校)를 재건하였고, 1602년 7월에는 연경서원(硏經書院)을 중건하였다. 1604년에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제자로서의 예를 올렸고, 1605년에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선사재(仙査齋)와 연경서원에서 학생들에게 통강(通講)[경전 강독 및 질의응답]을 실시하였다. 『연경서원 통강록』에는 이때 교육받았던 117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1615년(광해군 7)에 서사원이 사망하자 영모당(永慕堂)에서 홀로 20년간 통강을 계속하였다. 『영모당 통강 제자록(永慕堂通講諸子錄)』에는 202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손처눌은 대구 성리학의 1세대인 전경창의 제자로 2세대이다. 손처눌연경서원영모당에서 교육을 실시하여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대구 지역을 교육과 학술, 문화의 고을로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손처눌은 1634년(인조 12) 6월 15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손처눌의 저술로는 『모당문집(慕堂文集)』, 『모당일기(慕堂日記)』가 있다.

[묘소]

손처눌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97-2에 있다.

[상훈과 추모]

손처눌은 1694년(숙종 20) 영모당 옛터에 건립된 청호서원(靑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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