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증식계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69
한자 産米增殖計畵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 시기/일시 1920년대 - 산미증식계획 시행
관할 지역 간석지 - 충청남도 보령군 남포면|오천면|주포면|청소면|천북면 일원

[정의]

일제의 근대화와 산업화 추진 결과로 인한 식량 부족을 우리나라의 식량 수탈로 충당하고자 보령 지역에 실시한 쌀 증식 계획.

[개설]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부터 일제가 조선을 자국의 식량 공급 기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쌀 증식 정책을 말하며, 보령 지역에서는 간석지 개간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일제는 19세기 말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추진한 결과로 인해 식량 부족 현상이 초래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식량을 수탈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특히 1918년 일본에서 쌀 파동이 일어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였다.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부터 15개년 계획으로 추진되었는데, 일제는 이 계획에 맞춰 미곡 증산을 위한 개간사업과 간척사업으로 농지를 확장하였다. 또한 수리시설이 미흡한 농지를 개선하여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계획들이 수립되었다. 이렇게 증산된 쌀은 군산항이나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보령 지역 역시도 장항선 개통 후에는 장항을 통해 쌀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이같은 산미증식계획으로 보령 지역에서는 간석지 개간이 매우 성행하였다. 이는 보령 지역이 해안을 끼고 있기 때문에 지리적인 영향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에 보령 지역에서 간석지 개간이 진행된 사례의 자료는 17건 정도 확인된다.

[관련 기록]

보령 지역에서 일본인에 의해 간석지 개간이 진행된 사례를 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보령군 남포면[현 보령시 남포면] 소재 국유 간석지 318정(町)[954,000평, 315,371㏊]을 1920년에 5년 한 대부, 답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오천면 오포리 소재 간석지 65정 4600평[199,600평, 65.983㏊]을 답으로 짓기 위해 경성 거주 다카쓰키 히사요시[高橋久吉] 외 2인에게 1922년 12월 말까지 대부 허가를 내주었다. 그리고 주포면 은포리[현 주교면 은포리]의 간석지 87,892평[29.055㏊]을 답으로 이용하기 위해 1930년 12월까지 준공 조건으로 마사이 유타[正井瀧太]에게 매립 허가를 주었으며, 주포면 은포리 앞 간석지 118,405평[39.142㏊]을 마사이 유타가 1930년 매립 준공하였다.

천북면 장은리 소재 간석지 70,030평[23.150㏊]는 답을 목적으로 주포면 은포리 강응회 외 1명에게 1931년 매립 허가를, 웅천면 소황리 독산리 간석지 116,294평[38.444㏊]는 답을 목적으로 대천면 대천리 임길평 외 2명에게 1931년 매립 허가를 내주었다. 그리고 천북면 하만리, 사호리 간석지 195,000평[64.462㏊]은 답을 목적으로 천북면 하만리 마츠모토 쇼타로[松本增太朗] 외 1명에게 1931년 매립 허가를 내주고, 이 지역 간석지 공사를 충남흥업주식회사에서 맡겨 1932년 완공시켰다. 청소면 죽림리 간척지 110,000평[36.694㏊]은 요시다 소헤이[吉田宗平]가 1929년 면허 취득 후 1935년 매립 준공을 하였다.

[내용]

간척공사에서 주목되는 일본인 마사이 유타는 1886년 일본 출생으로 1915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거주하여 농사경영 농사개량 등 조선인 농민을 지도하였으며, 산미증식계획에 앞장섰다. 또한 그는 530여 명의 소작인을 거느린 대지주로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을 철저히 이행한 인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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