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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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魚肥里-魚允中 |
영어음역 | Eobi-riwa Eo Yunjung |
영어의미역 | Eobi-ri and Eo Yunju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효림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이동읍 천리에서 어윤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77년 4월 10일 이동면[현 이동읍] 천리에서 이영구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하였다.
[내용]
이동면에 있는 어비천은 진위천이라고 하는데, 본래는 장호천이라고 불렀다. 이 장호천의 한 줄기에 어비울(魚悲鬱)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일본의 세력을 등에 입은 개화당의 거두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친로파 세력에 붕괴되고 김홍집이 살해되었을 때, 탁지부대신으로 있던 어윤중(魚允中)은 자신의 목숨 역시 경각에 달렸음을 알고는 밤낮으로 달려서 고향으로 피신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어윤중은 여장을 하고 가마를 탄 채 용인현을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 어윤중을 추격하던 관군은 당시 용인군수였던 김순응에게 파발을 보내어 길목을 지키도록 하였다. 긴급 명령을 하달받은 군수는 군정을 대동하고 급히 말을 달려 추격하면서 주민 정원로 등을 가세시켜 포위망을 압축하였다.
서울에서 용인은 백여 리가 넘는다. 밤낮으로 달렸으나 어느 지경까지 당도했는지를 알 수 없는지라 어윤중은 산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가마꾼들을 쉬게 하고는,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 이곳이 어디쯤이며 마을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서울에서 약 150여 리쯤 되는 곳으로, 마을 이름은 어비울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에 어윤중이 깜짝 놀라서 어비울의 한자를 어찌 쓰느냐고 하니까, 고기 어(魚)에 슬플 비(悲), 답답할 울(鬱)자를 쓴다고 말했다. 어윤중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가마꾼들을 독촉하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다그쳤다. 그리하여 가마에 올라 막 떠나려던 찰나에, 뒤에서 “섰거라!” 하면서 관군이 추격해 왔다. 아뿔사! 더 빨리 달리라고 고함쳤으나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일이 급하게 되자 가마꾼들은 모두 도망가고, 장옷으로 가렸던 얼굴이 드러나게 되자 정원로 등 군정들은 쇠돌이깨로 어윤중을 인정사정없이 죽여 버렸다. 사람들은 어윤중이 어비울, 즉 슬프고 답답한 곳을 잘못 지나간 것이라고 하였다. 그후 1910년(융희 4)에 순조는 어윤중을 규장각 대제학으로 추증하는 한편, 제관을 보내어 사당에 제사를 지내주고 영혼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어윤중이 죽은 곳을 어비리(魚肥里), 즉 고기가 살찌는 마을로 고쳐 쓰도록 하여 지금의 마을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60년대에 마을에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명실공히 고기가 살찌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어비리와 어윤중」은 슬프고 답답한 곳이라는 어비울이 고기가 살찌는 마을이란 뜻의 어비리로 변하게 된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지명유래담은 원래 유사한 사물이나 풍수지리에 입각한 형국론, 또는 역사적 사실 등과 결부되어 전승되는 예가 많은데, 「어비리와 어윤중」은 어윤중이란 인물의 죽음을 모티프로 차용하여 어비리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