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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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川許氏 |
영어음역 | Yangcheon Heossi |
영어의미역 | Yangcheon H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좌리|원삼면 맹리 능안 |
집필자 | 정양화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좌리|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능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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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가좌리|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능안 |
입향시기/연도 | 1400년대 |
성씨시조 | 허선문(許宣文) |
입향시조 | 허창(許菖) |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허씨의 시조 허황옥은 원래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 이후 두 아들에게 허씨를 사성했으며 그 후 여러 본관으로 나뉘었다. 양천허씨의 시조는 허 황후의 30세손으로 전하는 허선문(許宣文)이다. 허선문은 공암현(孔巖縣)의 대부호로서 고려 건국에 공헌하여 공암촌주로 봉해지고 공암현을 식향(食鄕)으로 하사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공암을 본적으로 삼았는데 이후 공암이 양천(陽川)으로 고쳐짐에 따라 양천허씨로 불려지게 되었다.
허종(許琮)은 성종 때 우의정을 지냈으며 허침은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냈는데, 이 둘은 친형제이다. 허엽(許曄)은 선조 때의 동서 분쟁 당시 동인의 영수가 되었으며, 슬하의 허성(許筬)·허봉(許篈)·허난설헌(許蘭雪軒)·허균(許筠) 4남매가 모두 시문에 뛰어났다. 특히 허난설헌은 여류 시인으로 이름났고 허균은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로 널리 알려졌다. 이 밖에도 허목(許穆)과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許浚), 성종 때의 명필인 허계(許誡) 등이 있으며, 한말의 의병장으로 허위(許蔿)가 있다.
전적공파의 파조인 허창(許菖)의 묘가 조성된 이후 후손들이 들어와 세거하게 되었다. 후손들의 증언에 따르면 허창의 상여를 충주로 운구할 때 처인구 원삼면 미평리 부근에서 쉬었다고 한다. 그 때 회오리바람에 상여 위의 구름차일이 날려가 떨어진 곳이 지금의 묘 자리라고 한다. 지관에게 보이니 명당이라고 하여 그 자리에 묘를 쓰고 이후 자연스럽게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와 백암면 가좌리에 모여 살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묘역이 있다. 1970년대 이후 경부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초당 허엽의 묘역을 옮겨 새로이 조성하였다. 재실인 상고재와 허엽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