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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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仁靑年會 |
영어음역 | Yongin Cheongnyeonhoe |
영어의미역 | Yongin Youth Association |
이칭/별칭 | 갑성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진갑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개설]
용인청년회는 1920년대 결성된 청년단체로, 전신인 갑성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야학활동과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설립목적]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용인의 중추기관이 되어 신사상운동에 주력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4년 3월 유재헌(劉載獻) 등에 의해 창립된 갑성회를 모태로 하여, 1926년 7월 24일 임시총회를 통해 내부 혁신, 사업 쇄신을 목표로 용인청년회로 개칭하였다. 회원은 박쌍화(朴雙和), 우영희(禹永熙), 임원규(林元圭) 등을 중심으로 50~60명이 있었다.
[활동사항]
용인청년회는 무산 아동야학을 설립하여 교육활동에 주력하는 등 ‘혁신’을 꾀하였다. 1927년 회원 간의 친목과 의사 교환을 위해 월례회를 개최했으며, 문화 계발의 강구를 목표로 회보를 발행했다. 소년체육의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운동경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경기도 용인군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1927년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대회, 1929년 제7회 조선형평사 기념식 및 정기대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용인의 중추기관이 되어 지방의 모든 사업을 위해 노력’하며 ‘신사상운동에 주력할 것’이라는 의지와 달리 구체적인 방침을 제시하지 못하여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용인청년회를 비롯한 청년단체는 일제의 지배구조 아래서 각각의 사회·경제적 이해를 도모하면서, 일제의 식민지배 구조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정치운동, 민족해방운동으로 성장해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렇듯 청년단체는 대중운동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초기 단계에서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경기도 용인군의 청년단체들은 조선청년총동맹과 같은 전국적인 청년운동 지도기관을 중추로 하여 운동의 질적·양적 변화를 꾀하였던 당시의 청년운동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