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
1951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1951년 1월 25일을 기점으로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UN군이 중공군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펴기 위하여 한강을 향해 북진하도록 명령했다. 이른바 선더볼트(Thunderbolt)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참여했던 터키군이 151고지에서 백병전으로 중공군 474명을 사살하며 고지를 점령...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 용해곡 상봉에서 발원하여 광주시 서하리에서 팔당호로 흘러드는 하천. 한강의 지류이기도 한 경안천(慶安川)은 유역면적 561.02㎢ , 유로연장 49.3㎞, 하폭 1,930㎞, 하천연장 22.5㎞인 국가하천이다.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국도가 경안천 유역을 관통하고 있으며, 유역 내에 용인시와 광주시, 곤지암 인터체인지가 있다....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무덤. 우리나라에서 고분을 비롯한 매장 유적 중 가장 이른 것은 강원도 석회암 동굴 지대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인 흥수굴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매장 유적은 각 시대별로 변화하였다. 신석기시대의 패총 유적에서 발견되는 매장 유구는 주로 토광을 만들고 여러 가지 치레걸이로 장식한 시체를 안치하는 간단한 구조였다. 청...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고엔돌·되무덤·도무덤 등으로 부르거나 거북바위·독바위·칠성바위·마귀할멈 바위 등으로 불려진다. 대부분 강이나 바닷가 옆의 평지, 구릉 지대에 있으며 드물게는 산기슭이나 산마루에 있는 경우도 있다. 기능에 따라 제단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인류가 연모를 사용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이며, 이 시기부터 빙하가 물러간 약 1만년 까지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전기 구석기는 인류가 연모를 처음 사용한 시기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다. 중기 구석기는 약 12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이다. 이때 사람들이 만든 연모는 종...
-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행정 구역. 17세기 중엽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빼앗아 구성현으로 삼았다고 서술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본래 백제의 멸오였는데 후에 구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조령과 죽령 지역까지 점령하게 됨에 따라 한강 유역과...
-
사은정을 보수하여 고친 기록을 보면, 4인의 인연과 마지막 운명을 알 수 있다. ‘서로 의(誼)를 맺고 또 그 근처에 산소가 있는 언덕과 전원을 사이에 두고 지냈으며 한강 남쪽 용인 땅에 자리를 잡아 정자를 지으니 그 정자 이름이 사은정이다. 대체로 밭갈고 땔나무하고 낚시질하고 나물캐고 하는 네 가지 낙에서 취한 것으로 노년의 생활을 즐길 계획이었다. 또한 사현의 서로의...
-
1950년 7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인민군의 남진을 지연하기 위해 벌어진 전투.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인민군의 일부 부대가 김량장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자,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고 있던 국군 제8연대 2대대가 급히 투입되었다. 이들은 인민군을 기습하여 김량장에서 축출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인민군의 반격에 김량장 서쪽으로 이동했다. 195...
-
1951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을 축출한 전투. 1951년 1월 25일을 기하여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UN군이 중공군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펼치도록 하고, 한강을 향해 북진하라고 명령했다. 이 작전이 이른바 선더볼트 작전이다. 1951년 1월의 김량장 전투는 이 작전의 일환으로 터키여단이 중공군 제50군 예하 제49사단 제447연대...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백운산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탄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동막천이 발원하는 용인시 고기동은 성남시, 의왕시 및 수원시 장안구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곳에 바라산-백운산-광교산[582m]-형제봉 등 500m 내외의 산 능선이 남북 방향으로 쭉 뻗어 있어 황구지천의 최상류인 광교천과 탄천의 지류인 동막천, 손곡천의 분수계 역할을 하고...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유구(遺構). 마북동 석축유구는 탄천을 따라 형성된 잔구성 산지의 끝자락 구릉에 축조된 관방(關防) 유적이다. 내부와 주변에서 관련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구릉의 남측 사면에만 낮게 할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점으로 보아, 단기간의 전투 목적을 위한 군사 방어 시설인 보루로 판단된다. 마북동 석축유구는...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있었던 삼한 중의 하나. 용인이 마한 54개 소국 중 어느 집단에 속하였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소국들인 중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일화국(日華國), 고탄자국(古誕者國) 등이 용인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확실한 것은 3세기 무렵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을 거듭한 백제...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불교 관련 유물과 유적. 용인시에 남아 있는 불교유적으로는 신라 때의 백련암(白蓮庵)·용덕사(龍德寺) 등이 있고, 서봉사(瑞峰寺), 박곡사(朴谷寺)는 절터만 있다. 백련암은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향수산 기슭에 있는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801년(애장왕 17) 3월 5일에 신응(愼應)이...
-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정립하던 시대의 용인 지역의 역사.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한 군장사회들 중 하나였던 백제가 백제국가로 흥기하게 됨에 따라 그 중심지로부터 불과 30여㎞ 떨어져 있던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 세력권 안으로 흡수·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용인 지방은 『대동...
-
전통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용인은 조선시대의 용인현을 계승한 지명으로 고려시대에는 용구현과 처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중 용구현은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구성현 혹은 멸오(滅烏)라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 때 거서(巨黍)로 고쳐졌다가 고려 초에 용인으로 바뀌었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가 구성현을 차지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부아산 남쪽 가물람골에서 발원하여 송전리 송전마을에서 이동저수지로 흘러드는 하천. 송전천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동저수지에 유입되는 진위천의 최상류를 말한다. 건설교통부가 펴낸 『우리가람 길라잡이』에 의하면 진위천 최상류는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미리내고개 북쪽 계곡으로 나타나고, 서리에서 발원하는 송전천을 별도의 하천으로 표시하...
-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함흥군수를 지낸 안익(安翼)이다. 용인에서 출생하여 승사랑(承仕郞)을 지냈고,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릴 적 과천(果川)에 살았을 때, 부친이 병으로 고생하자 몸소 병구완에 전념하였다.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한강에 나가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렸고, 산천에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상(喪)을...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안기명의 정려각. 안기명의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함안군수 안익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병환으로 눕자 한겨울에도 한강까지 나아가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공양하였으며, 한밤중에 산중에 올라가 기도할 때는 호랑이가 감복하여 보호하였다고 한다.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묘소를 보살피자 사람들...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신라 시대에서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 사거리에서 신갈로 가는 도로를 따라 남하하다 보면 오른편에 삼막곡 저수지로 가는 조그만 도로가 있다. 이 도로를 따라 약 100m 가량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소실봉에서 남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가 보이는데, 고분군은 이 능선 말단부의 남사면을 따라 넓게...
-
동족촌이란 일반적으로 마을 주민 대다수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혈연으로 이루어진 촌락을 가리킨다. 집성촌과 비슷하긴 하지만 보다 혈연적으로 가까운 씨족집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상의 제사를 함께 지내며 동족 간의 상부상조를 위한 조직을 갖추어 집단행동을 취하는데, 이는 마을의 모든 생활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동족촌 안에는 기본적으로 종가와 사당, 재실, 서원, 모...
-
오늘날 용인은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불린다.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전자와 전기, 자동차, 원자력 등등, 모든 분야의 첨단 산업 시설과 연구소, 연수원 등이 용인 지역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교통이 편리하고, 산업 시설과 연구단지가 서울을 비롯한 인근 시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입지에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0년대 이후 수지구와 기흥구를 중심으로 급속...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할미산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할미산성은 성 내부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길이 180m의 공유 벽을 기준으로 북쪽의 내성, 남쪽의 외성으로 구분된다. 북쪽의 내성은 정상부를 포함한 높은 지대에 축조되었고, 남쪽의 외성은 비교적 낮은 지대에 조성되었는데, 형태상 사모형(紗帽形)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51m로, 할미산의...
-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물 분포 지역. 용인 지역은 한강 수계에 속하는 경안천과 탄천, 안성천 수계의 진위천 등과 그 샛강들이 흐르고 있으며 구릉 지대가 넓게 분포하고 있어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수습되고 있다. 용인 지역에는 기흥구의 동백동 유적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약 80여 곳의 유물산포지가 분포한다. 이러한 유물산포지는 일부 지역에 한정되...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恢). 정종의 일곱째 아들 이덕생(李德生)의 후손으로 승지에 추증된 이징후(李徵厚)의 손자이다. 양주(楊洲) 조희석(趙禧錫)의 외손자이며,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된 이제상(李齊尙)이다. 아들은 이정인(李廷仁)이다. 이상성(李相晟)[1690~1741]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
-
임진왜란 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임진산성은 원래 임진산의 정상, 곧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와 기흥구 보정동 산 82-2번지 일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산성지·풍덕천동성지·예진산성지 등으로도 불리는 임진산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성이기도 한데...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가옥.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시대 용인은 한양의 남쪽 100리 안에 위치하는 남교(南郊)로서 『성종실록(成宗實錄)』에도 “조사농장 기내거다(朝士農莊 畿內居多)”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한양의 명문사족들이 농장과 별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거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한양에 버금가는 주거 문화가 발달 할 수 있었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
경기도 용인 지역의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용인시는 전체적으로 요철 정도가 작은 전형적인 저평한 구릉성 산지이다. 일반적으로 기복이 높은 곳은 산지이며 상대적으로 낮은 곳은 평야와 계곡이 된다. 계곡이나 평야에는 하천이나 호수 또는 저수지가 있어 그 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결정하게 된다. 한반도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용인시 일대는 광...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부아산 남쪽 가물람골에서 발원하여 평택시 고덕면 동고리에서 안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한강권역의 안성천 수계에 속하며 안성천의 제1지류이다. 국가하천, 지방2급 하천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지방2급 하천 구간의 경우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건설교통부 발표기준)에서 시작하여 용인시와 화성시를 거쳐서 평택시 진위면에서 황구지천이 유입되고 있...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고려 후기 처인성 전투의 승리를 기리는 비. 고려 후기인 1232년(고종 10)에 처인성은 군창이 있던 지역으로, 전체 면적이 5,820평이고, 둘레가 425미터의 작은 토성이었다. 이 토성에서 세계를 제패한 몽고의 원정군 사령관 살리타가 보잘것없는 고려의 승병장 김윤후가 이끄는 의병대와 일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원정군 사령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 340m 고지 서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 88골프장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삼거교 부근에서 북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서 낙생저수지를 수원으로 하여 왼쪽에서 흘러드는 동막천(東幕川)에 합류한다. 다시 이매동에서 중천(中川)을 합하여 계속...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우리나라에서 토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로 통칭한다. 빗살무늬 토기는 입구가 넓고 바닥은 뾰족하여 포탄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청동기시대의 토기는 무문 토기로 통칭되며, 바닥이 납작해지고 문양은 점차 축소되거나 없어진다. 그러나 입구를 두겹으로 겹쳐 만든 후 몸통...
-
685년 경기도 용인을 포함한 한강 하류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통일신라시대의 행정 구역.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9주 5소경의 지방 제도를 새롭게 마련했다. 한산주는 광주를 주치로 하여 한강 하류를 둘러싼 광범위한 지역을 관활하였는데, 지금의 용인 지방인 구성현도 이 한산주에 포함되었다. 한산주는 본래 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