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현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행정면. 용인군의 남쪽 4개 면이라는 뜻으로 남촌의 ‘남’자와 4개 면의 ‘사’자를 따서 남사면이 되었다. 본래 처인현 지역이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합쳐 용인군 현내면이 되어 아곡·남산·매릉·완장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촌면의 진목·원암·전궁·아곡 등 4개 리와...
-
조선 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회부(晦父). 1455년(세조 1) 현감으로 있으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용인현(龍仁縣)에 현령(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하여 용인현이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현령이 임명되었겠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방축동과 아곡동을 합쳐서 한 글자씩 취해 방아리가 되었다. 본래는 용인현 남촌면의 아곡동(牙谷洞)과 현내면의 방축동을 합쳐서 아곡리라고 하였다. 현내면은 고려시대 처인현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다. 이동저수지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넓은 들을 포용하고 있다. 일부 구릉지를 제외하면 논농사 중심의 평야...
-
전통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용인은 조선시대의 용인현을 계승한 지명으로 고려시대에는 용구현과 처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중 용구현은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구성현 혹은 멸오(滅烏)라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 때 거서(巨黍)로 고쳐졌다가 고려 초에 용인으로 바뀌었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가 구성현을 차지하...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을 관할하던 행정 구역.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 지방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10도제를 실시하면서 관내도에 설치했던 29주(『고려사』「지리지」에서는 17개주만 확인이 가능) 중 하나이다. 10도 또는 5도 양계 중 관내도(關內道) 혹은 양광도(楊廣道)에 속해 있던 17개 주 중 하나이다.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변에 처인성이 있으며 고려시대 처인현의 소재지가 있던 곳이다. 아꼴마을[衙谷]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관청이 있었다고 하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본래 고려시대 처인현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 이후 용인현에 속하게 되었고 현내면 지역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산(南山)과 아곡(衙谷)을 합쳐 아곡리가 되었...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시대 지방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면서 이전에 충청도 지역을 1314년(충숙왕 1) 양광도라 개칭하였다. 현재의 충청남도·충청북도 일원과 강원도 일부 및 고려시대 용인 지역의 명칭이었던 용구현(龍駒縣)을 포함한 경기도 남부 지역이 해당된다. 『고려사』「지리지」와『세종실록』「지리지」에 실려...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
고려 초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 건국 초기에는 지방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호족들에게 일임되고 있었는데, 성종 때 지방관의 설치를 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방에 외관을 파견한 것은 983년 12목의 설치를 시초로 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개폐를 거듭하다가 1018년 지방 제도가 일단락되었다. 용구현(龍駒縣)은 고려 건국 초기에 지방 제도를 개...
-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의 두 고을을 합쳐 용구에서의 ‘용’자와 처인에서의 ‘인’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옛 용인현(龍仁縣)·양지현(陽智縣)과 죽산도호부(竹山都護府)의 일부가 합해 이루어진 시이다. 용인현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멸오현(滅烏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거서현(巨黍縣)으로 이름...
-
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1403년(태종 3)과 1406년(태종 6)에 고려 말 이래의 문란된 지방 제도를 개편하려 했으나 시행되지 못하다가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서야 개편하였다. 이때의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치고 내부의 면리를 형성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용인은 경기도의 남부 중심부에 위치한 도시로, 극동은 백암면 고안리, 극서는 수지구 고기동, 극남은 남사면 원암리, 극북은 수지구 고기동이다. 용인은 서울에서 동남 쪽으로 30㎞ 떨어진 도시로 행정구역상 동쪽은 이천시와, 서쪽은 수원·의왕·화성시와 접하고 남쪽은 안성시, 북쪽은 성남 및 광주시와 접하고 있다....
-
경기도 용인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해방이전까지 용인 지역의 정치는 주로 국가 기구에 의한 권력 작용, 즉 국가의 지역 주민에 대한 일방적인 통치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일찍이 백제의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을 도읍지로 하여 건국한 이래 용인 지방은 백제의 영토에 귀속되어 오랫동안 백제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용...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병합해 만들어진 용인현은 수원진영(水原鎭營)에 소속되었으며 남양부(南陽府)에서 관할하였다. 수원진에 부속된 시기에는 16개 면을 종5품의 현령이 다스렸으며,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1872년(고종 9)에 작성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로 보아 이와 같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부아산 남쪽 가물람골에서 발원하여 평택시 고덕면 동고리에서 안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한강권역의 안성천 수계에 속하며 안성천의 제1지류이다. 국가하천, 지방2급 하천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지방2급 하천 구간의 경우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건설교통부 발표기준)에서 시작하여 용인시와 화성시를 거쳐서 평택시 진위면에서 황구지천이 유입되고 있...
-
경기도 용인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용인의 명칭유래가 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의 옛 지명을 복원하고 역사성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용인군 구흥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지군을 통합하고 죽산군의 일부를 편입, 내사면·외사면·원삼면을 증설하였다. 1937년 4월 1일 수여면이 용인면으로 개칭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있는 처인구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동부에 있는 처인구를 관장하면서 주민의 편의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쳐 용인현이라 하였다. 1975년 용인면이 용인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과 함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1996년 3월 1일 용...
-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처인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1018년(현종 9)에 이미 그 이름이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이래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을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
-
처인성은 현 행정구역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2리 산 43번지에 있는 성곽이다. 면적은 약 1,764㎡(5,820평)이며, 둘레는 425m이다. 북측면 좌측에 문대(門臺)가 있고 남쪽 면의 서측에 후문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으나 1979년 복원공사 때 이 부분을 절단하여 연대 등을 조사한 후 복토하여 지금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붕괴가 심하여 정확한 축조공법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고려 후기 처인성 전투의 승리를 기리는 비. 고려 후기인 1232년(고종 10)에 처인성은 군창이 있던 지역으로, 전체 면적이 5,820평이고, 둘레가 425미터의 작은 토성이었다. 이 토성에서 세계를 제패한 몽고의 원정군 사령관 살리타가 보잘것없는 고려의 승병장 김윤후가 이끄는 의병대와 일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원정군 사령관...
-
1232년 12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처인성에서 처인부곡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231년 몽고의 1차 침입 이후 고려 정부는 1232년 6~7월에 강화로 천도하였다. 몽고는 기존의 화약을 파기한 책임을 물어 1232년 10월 2차 침입을 감행하였다. 몽고의 2차 침입은 고려 정부의 천도가 몽고와의 대결을 전제로 했다는 점이 명백해진 상태에서의 군사적인 해...
-
고려 후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수원부에 속해 있던 부곡이었으나 1232년(고종 19) 처인성(處仁城) 전투에서 승첩하자 지역민에 대한 전공의 포상으로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어 처인현이 되었다. 「최서묘지명(崔瑞墓誌銘)」·『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
-
경기도 용인을 관적으로 하는 성씨. 우리나라 성씨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 할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15세기에 존재한 전국의 성씨 종류와 본관의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용구현 토성으로 진(秦)·이(李)·송(宋)·용(龍)·엄(嚴) 등 5개와 처인현 토성 이(李)·서(徐)·지(池)·섭(葉)·김(金)·강(康) 등 6개를 나열하고 있다. 또 양지...
-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권력, 즉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