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서원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건축, 종교건축, 관청건축, 휴양건축, 복지와 교육건축, 상업과 공업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
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 주(周)나라(B.C.12~A.D.3) 때의 역경(易經) 가운데 “관국지광 이용빈우왕(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이라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관광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관광 여행은 종교적·민속적 색채가 강했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와 정착되면서 전국 각지에...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용인 지역에서 교육은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실시가 되었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적 교육기관인 향교나 재지 사족들이 선현의 제향을 위해 세운 서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용인 지역에는 포은 정몽주 등 많은 선현의 유택이 있다. 따라서 그 학덕을 따르기 위해 이주...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하(景賀), 호는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이다. 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伉), 할아버지는 권속(權謖),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다. 1657년(효종 8) 진사가 되었으며,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이 된 후 이조좌랑·정언·지평·부교리·수찬·헌납·교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674년 겸보덕(兼輔德)에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에 능곡(陵谷)과 원촌(院忖)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능원리라 하였다. 능곡은 정몽주의 무덤이 있기에 이것을 능에 비유하여 능골이었다가 능곡이 되었고, 원촌은 포은 정몽주의 신위를 모신 충렬서원이 있어 유래했다. 원래 옛 용인군 모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우명동·내곡·원촌·능곡의 4개 동·리를...
-
능원마을은 북쪽으로 숫돌봉이 솟아서 좌우로 능선이 발달하여 광주시 오포읍과 경계를 이루고 이으며 멀리는 성남시 분당이 된다. 마을 앞에는 오산리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산리에서 경안천과 합류하는 오산천이 흐르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서출동류(西出東流)라고 하는 명당의 한 기본요소를 충족시킨다. 오산천을 따라 수지와 광주를 연결하는 43번 국도가 관통하고 있으며...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1동과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대지고개 북쪽은 대지산·숫돌봉 등 300m 내외의 산으로 되어 있으며, 동쪽은 능원천이 발원하여 경안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대지고개 북쪽에는 강남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동쪽에는 채석장이 있어서 상당 부분이 패여 나갔으며, 바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남쪽에는 천주교 명동성당공...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고등 교육 기관. 현재 우리나라 고등 교육법에 의하면 교육부장관의 지휘 감독을 받는 고등 교육 기관은 수업 연한에 의해 전문대학·대학(대학원 포함)·각종 학교로 구별해 볼 수 있다. 근대 이후 용인의 고등 교육기관의 효시는 1953년 양지면 남곡리에 세워진 중앙농림대학으로 6년간 유지되다가 서울로 이전하였다. 1970년대 후반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동림리에 있는 현대 섬유 미술 및 판화 전문 사립 미술관. 마가미술관은 지방화시대의 도래와 21세기를 겨냥하여 수도권에 인접한 입지 조건으로 경기도 성남시, 수원시, 용인시, 광주시 등 주변의 신도시 주민들에게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섬유 미술(fiber art)과 판화(print making) 작품을 통해 예술 감상과 미적 체험의...
-
능원마을은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속하는 마을로 용인 지역의 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은 광주(廣州)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같은 리(里)에 속하는 우명동 마을이, 동쪽은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陵坪里)와 이웃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오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을 제외하고 구릉성 산지로 막혀 있는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43번 국도가 동서를 관...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었던 사립 강습소. 문맹 퇴치와 생활에 필요한 기초 교육을 교육목표로 삼았다. 독립운동 시기의 강습소는 한문을 주로 가르치는 서당이 아닌 지금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사설 초등 교육 기관이었다. 모현강습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인근의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던 곳이다. 충렬서원의 한문...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속하는 행정읍. 이 지역은 본래 쇄포면(灑布面)이라 하였다. 이는 삼으로 직조한 베와 목화에서 뽑아 낸 실로 직조한 무명천을 잿물에 삶아내고 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널어 말려 빛이 바래도록 포쇄하던 곳이라고 한데서 연유되었다. 그 뒤 고려 충신 정몽주의 묘가 있게 된 뒤로 충신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으로 개칭되었다. 본래 용인군 지역으로 초하·부곡...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와 동림리에 걸쳐 있는 산. 정상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남북으로 길며, 남서쪽에 있는 안골고개 방향으로 완만한 경사의 능선이 이어진다. 산의 동쪽에는 능골고개가 있고, 남서쪽에는 안골고개가 있으며, 남동쪽에는 능원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개울이 있고, 그 북쪽으로는 능원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산의 북서쪽 골짜기에는 포은 정몽주...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사원(士元), 호는 섬촌(蟾村)·정암(貞庵)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손자이고, 문충공(文忠公) 진후(鎭厚)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로 현감 이덕로(李德老)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권상하(權尙夏)를...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聲甫), 호는 오헌(梧軒)이다. 증조부는 민광훈(閔光勳), 할아버지는 민시중(閔蓍重), 아버지는 이조판서 민진주(閔鎭周)이다. 외조부는 정상징(鄭尙徵), 부인은 조태동(趙泰東)의 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715년에는 주부·정랑에 올랐다.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이다. 증조부는 민여건(閔汝健), 할아버지는 민기(閔機), 아버지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부인은 신승(申昇)의 딸이고 아들은 민진장(閔鎭長), 형제는 민시중(閔蓍重)·민유중(閔維重)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거주했...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세심(洗心)이다.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준길(宋浚吉), 부인은 윤지선(尹趾善)의 딸이다.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다. 아들은 민형수(閔亨洙)이...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치구(稚久).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홍처윤(洪處尹)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조(祖)·부(父)·자(子) 3대가 장원하여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어졌다. 장원하자...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요계(蓼溪)이다. 군수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영의정 송상기(宋相琦)의 천거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되었다. 지평(持平)·장령(掌令)·진선(進善)·집의(執義) 등을 지내고,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右贊成)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
-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
본관은 영일이며 휘(諱)는 보(保)요 호(號)는 설곡(雪谷)이며 중추원사 정종성(鄭宗誠)의 아들이고 포은 선생의 장손(長孫)이다.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예안현감(禮安縣監)에 이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다. 조선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나 세종(世宗)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1456년(세조 2)...
-
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지(源之), 호는 만사(晩沙)이다. 증조부는 심금(沈錦), 할아버지는 심종열(沈宗悅), 아버지는 심설(沈偰)이다. 외조부는 청원도정(靑原都正)이었던 이간(李侃)이고, 부인은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며, 그의 아들 심익현은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해 효종과는 사돈관계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정시문과에 병과...
-
정습명을 시조로 하고 정보와 정지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는 신라 때 간관(諫官)을 지낸 정종은(鄭宗殷)이며 그 후손인 정습명(鄭襲明)을 중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와 정극유(鄭克儒)를 중시조로 하는 감무공파가 있다. 이 양파는 시조를 같이하면서도 그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서로 촌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가 가장 유명하며...
-
능원리는 1914년에 생긴 이름이다. 모현면에 속한 우명동과 원촌을 합치고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가 있는 능내[내기] 마을과 원촌의 첫 글자를 따서 능원리라고 하였다. 능원마을은 능원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능원1리가 되며 원촌(院村)이라고도 하는데, 포은 선생을 모신 충렬서원(忠烈書院)이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선조대왕의 왕후의 능(陵)자리...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광조를 모신 서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였다. 심곡서원은 1650년(효종 원년)에 ‘심곡(深谷)’이라는 사액현판과 토지와 노비 등을 임금에게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의 두 고을을 합쳐 용구에서의 ‘용’자와 처인에서의 ‘인’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옛 용인현(龍仁縣)·양지현(陽智縣)과 죽산도호부(竹山都護府)의 일부가 합해 이루어진 시이다. 용인현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멸오현(滅烏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거서현(巨黍縣)으로 이름...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조선 전기에 세워진 향교. 용인향교는 1400년(정종 2)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용인이란 지명이 1413년(태종 13)에 생겼으므로 그 이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1986년 5월 31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9월 10일에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용인향...
-
조선 후기 도암 이재가 지은 향교·서원 등에서 지켜야 할 학칙서. 『용인향숙절목(龍仁鄕塾節目)』은 향교나 서원 등의 교육·의례를 행하는 학칙서로, 이재(李縡)[1680~1746]의 『도암집(陶庵集)』제25권 잡저편에 기록되어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우봉이씨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절목에는 용인현의 양 서원, 즉 충렬서원과 심곡서원, 그리고 관내의 서당에서 강회(講會)를...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교 관련 단체와 기관. 유교단체란 유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각종 단체를 말한다. 유교단체로서 대표적인 것은 전통 시대에 유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조직인 향교와 서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나아가 향약(鄕約)에 바탕을 둔 향촌사회의 각종 계 조직이나 문인들이 선현의 정신을 기리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각종 유계(儒契) 같은 사적인 모...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되어 있는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 유교유물유적은 크게 유적 자료와 유물 자료로 나눌 수 있다. 용인 지역에서 전해 오는 유적 자료로는 서원, 향교, 사우, 누정, 정려, 비석 등의 건축물 등을 들 수 있다. 또 유물 자료로는 서원·향교 등에서 제사 의식 때 사용하는 신주(神主)와 제기, 유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문집과 가문의 역사를 담은 기록인 족보...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기계. 자는 사호(士鎬), 호는 대재(大齋)이다. 권상하(權尙夏)·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유일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 자의(諮議)가 되었다. 그 후 사헌부 지평, 집의, 경연관 등을 역임하였고, 이조·형조·호조의 참의를 거쳐 돈녕부도정에 이르렀다가 사직한 후 안성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782년(정조 6)부터...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2007년 10월 현재 경기도 용인시에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국보 9점, 보물 37점과 경기도에서 지정한 경기도유형문화재 12점이 있다. 용인시청에서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 보물 9점과 경기도유형문화재 8점을 집중 관리·소개하고 있다. 광교산 동쪽 서봉사(瑞峰寺) 터에 있는...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행(啓行), 호는 송서(松西), 시호는 문간이다.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한성판윤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1860...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눌(伯訥), 호는 풍서(豊墅) 또는 상와(常窩)이다. 증조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이희조(李喜朝), 아버지는 사간원 대사간 이양신(李亮臣)이다. 1747년(영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시강원의 동궁요속(東宮僚屬)에 임명되었고, 장악원정을 거쳐 1788년 동부승지에 특배되었...
-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충렬서원의 원장을 세 차례나 지냈고,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있는 덕봉서원의 원장도 역임하였다. 본관은 덕수. 자는 치보(治甫)·자삼(子三). 호는 수곡(睡谷)·수촌(睡村)·포음(浦陰)이다. 아버지는 시정(寺正) 이신하(李紳夏)이고,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이식(李植)이다. 증조부...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재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영조의 탕평정치(蕩平政治)에 맞선다는 이유로 자주 파직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용인의 한천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등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며,...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이다. 증조부는 우의정 이정구(李廷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이며, 아버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다.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전설별검(典設別檢)·의금부도사 등을 거쳐 진천현감(鎭川縣監) 때는 치적을 쌓았다. 1694년 인천현감(仁川縣監)·지평(持平)·장악...
-
충렬서원 영당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말기에 그려진 고려 후기의 문신 정몽주의 초상화. 원래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초상화로 알려진 작품은 1390년(공양왕 2)에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녹봉될 때 그려진 공신도상(功臣圖像)이라고 하나, 현전하는 작품은 모두 그 후대에 이모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초상화는 보물 제1110호로 지정된 인조기사모...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설곡(雪谷).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이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정종성(鄭宗誠)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로 제학(提學) 박중용(朴仲容)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병마사(兵馬使) 박등(朴登)의 딸이다. 아들은 정윤정(鄭允貞)·정윤화(鄭允和)·정윤관(鄭允寬)이고, 사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
충렬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1929년 간행된 조광조의 문집. 『정암선생문집(靜庵先生文集)』의 정고본(定稿本)은 조선 중기에 이기주(李箕疇)가 수집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유문(遺文)·사적과 이선(李選)이 수집한 유문, 5대손 조위수(趙渭叟)의 가장초본(家藏草本)을 모아 박세채(朴世采)가 교정·편차하고 부록과 연보를 붙인 것을 말한다. 그후 조...
-
조선 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윤칠(允七), 호는 모은(慕隱). 포은 정몽주의 18세손이고, 아버지는 정구현(鄭九鉉)이다. 정한영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발랐으며, 유가의 법도에 따른 특출한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한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관직은 종사랑과 감리서주사(監理署主事)를 지냈...
-
조선 말기 정원화가 아버지 정한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기문. 「정한영 효자비각기(鄭漢永 孝子碑閣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서원말의 정한영 효자비각 안에 걸린 현판으로, 정원화(鄭元和)가 부친인 정한영(鄭漢永)[1862~1947]의 효행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칭송한 기문(記文)이다. 비각 안에는 효자비와 행장기(行狀記)가 있는데, 효자비의 비문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조사의 사당. 조사(趙師)의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가천재(嘉川齋)로 태조의 생질이다. 태조가 조선 개국 후 중추부사를 제수하였으나, 고려 공양왕 밑에서 벼슬한 일을 내세워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양양(襄陽)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죽기 전에 후손에게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
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함...
-
경기도 용인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용인의 명칭유래가 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의 옛 지명을 복원하고 역사성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용인군 구흥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지군을 통합하고 죽산군의 일부를 편입, 내사면·외사면·원삼면을 증설하였다. 1937년 4월 1일 수여면이 용인면으로 개칭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지은 서원 건물이다. 그후 마을 이름도 충신을 사모한다고 해서 ‘모현면[현 모현읍]’으로, 정몽주의 묘소와 서원이 있다고 해서...
-
1608년(선조 41) 이정구가 충렬서원에 내린 사액을 기록한 기문. 「충렬서원 강당기(忠烈書院 講堂記)」는 충렬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걸린 기문(記文)으로, 충렬서원에 사액(賜額)이 내리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정구(李廷亀)[1564~1635]가 지은 기문이다. 이정구의 문집인 『월사집(月沙集)』에도 전한다.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
-
조선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충렬서원 역대 원장을 기록한 책첩.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배향한 서원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1년에 복원되었다. 『충렬서원 선생안(忠烈書院 先生案)』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기까...
-
조선 중기 정명한이 충렬서원의 강당과 사당 등을 중수한 내용을 기록한 부책. 충렬서원(忠烈書院)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배향한 서원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1576년(선조 9)에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에 경기도관찰사로 있던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현감 정종선,...
-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 용인의 충렬서원에서 행해지는 향례.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를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있으며, 이시직·정보·오달제를 종향하고 있다. 향사는 춘향(春享)과 추향(秋享)을 지내며, 매년 3월과 9월 중정일(中丁日)에 행한다. 용인 지역의 유림과 행정 단체장, 정몽주 후손 등 150여 명이 참석한다. 충렬서원 제집사(諸執事)는 헌관과 집사로 구분...
-
서원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현에 대한 봉사(奉祀)와 후손에 대한 교육(敎育)이다. 현대에는 교육은 학교 교육으로 흡수되었고 서원은 선현에 대한 공경과 제사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충렬서원 향사례-작주 충렬서원은 해마다 봄과 가을의 두 차례 향사충렬서원 향사례-청주를 올린다. 음력 3월과 8월이 되는데 천간(天干)에서 정(丁)이 두 번째 오는 날(中丁日)...
-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시는 서원이다.충렬서원 전경 포은 선생은 동방 성리학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되어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으나 1576년(선조 9) 현재의 죽전에 정암 조광조 선생과 함께 모시는 서원을 창건하게 되었다. 충렬서원과 관련된 기록 등을 참고하면 죽전서원이라고 불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타버린 후 1605년(...
-
조선 후기에 이재가 충렬서원 유생들이 원내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정리한 고문서. 『충렬서원학규』에 기록 된 절목(節目)은 서원 이외에 용인 지역에 있던 각급 향숙(鄕塾)에서도 본받아 유생의 교육 규범으로 활용되었다. 이재(李縡)[1737~1748]가 성책하면서 『소학』 등의 교재를 읽기 전에 먼저 정몽주의 글을 읽을 것을 권면하는 글을 서문에 남긴 것이 다른 학규에서 볼...
-
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전해 내려오는 명당에 대한 이야기. 용인시 모현읍의 능원리에는 포은 정몽주선생 묘가 있다. 묘 앞에는 선생의 제사를 받들고 있는 재실이 있고, 멀리서 마주보고 있는 곳에는 충렬서원이 있다. 그리고 정몽주 선생 묘 바로 옆에는 저헌 이석형(李石亨)의 묘가 있는데, 「포은선생 묘소에 얽힌 유래」는 이 두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정몽주 종택의 사당. 포은선생영당(圃隱先生影堂)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종택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후기인 1679년(숙종 5)에 처음 지어졌다. 영당이란 원래 이름난 이의 화상이나 조각상을 모시어 둔 사당을 말한다. 포은선생영당에서는 음력 4월 4일에 포은 선생의 제사...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이재(李縡)[1680~1746]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노곡(노루실)에 있었던 서원이다.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노론의 중신이자 학자로 활동하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만년에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선영 아래로 퇴거하여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여러...
-
경기도 용인시 소재 향교나 서원에서 지내는 제사. 용인 지역 향례는 용인향교·양지향교의 석전제(釋奠祭)와 충렬서원·심곡서원의 춘추향제(春秋享祭)가 핵심이다. 향교의 석전제는 매년 춘추 정일(丁日)에 행하므로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서원에서의 춘추향제는 춘추 중정일(中丁日)에 행한다. 용인 지역의 향례는 오랜 전통을 지닌 용인향교의 석전제가 기준이...
-
조선 후기 기호 지역에서 일어난 심성(心性)에 관한 학설 논쟁.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라고도 한다. 이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 등을 지지한 이들이 충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으므로 호론(湖論)이라 하며,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이재(李縡)를 지지한 이들은 서울·경기 낙하(洛下) 지역에 주로 살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