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제
-
능원마을은 북쪽으로 숫돌봉이 솟아서 좌우로 능선이 발달하여 광주시 오포읍과 경계를 이루고 이으며 멀리는 성남시 분당이 된다. 마을 앞에는 오산리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산리에서 경안천과 합류하는 오산천이 흐르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서출동류(西出東流)라고 하는 명당의 한 기본요소를 충족시킨다. 오산천을 따라 수지와 광주를 연결하는 43번 국도가 관통하고 있으며...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시각 예술 행위 및 그 결과물. 용인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아오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미술 문화가 전개되었다. 이는 남겨진 유물이나 문헌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 용인의 경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미술 활동의 흔적이 드물지만, 고려시대부터는 불교 미술이나 공예 면에서 중요한 자취들을 남겼다. 조선시대에 들어 용인이 사...
-
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서 고초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삼학사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달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달제(吳達濟)를 말한다. 오달제는 1609년(광해군 원년)에 용인에서 오윤해의 아들로 태어났다. 1634년(인조 12)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에 올랐고, 2년 뒤에 부교리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비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설화는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에 지역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설화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는 보다 넓은 지역을 단위로 하여 전해 내려오며, 민담은 지역성보다 흥미나 교훈을 위주로 하는 일반담이 많다. 현재 용인 지역에서 전해 오는 설화들은 실재했던 인물이나 사건과 관련한 경우가 많은데,...
-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정지(貞之). 석성현감을 역임하였다. 후손들이 매우 번창하였는데, 사후 2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거의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손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오희문의 아들 오윤겸(吳允謙)[1559~1636]도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심양에 잡혀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며,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아우이고, 오달제(吳達濟)의 아버지이다.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회화가 문사들의 예술 장르로서 애호되었다. 시·서에 뛰어난 문사들은 자신들의 뜻과 흥취를 표현하거나 탈속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을 기본적인 교양이자 고상한 풍류로 여겼다. 이와 같이 시·서와 더불어 문인 문화의 핵심을 이루었던 조선시대 회화는 특히 문사들에 의해 창작이념과 취향이 계도되면서 중세적 감상물로서의 성격을 형성하는 특징을...
-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 용인의 충렬서원에서 행해지는 향례. 충렬서원은 포은 정몽주를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있으며, 이시직·정보·오달제를 종향하고 있다. 향사는 춘향(春享)과 추향(秋享)을 지내며, 매년 3월과 9월 중정일(中丁日)에 행한다. 용인 지역의 유림과 행정 단체장, 정몽주 후손 등 150여 명이 참석한다. 충렬서원 제집사(諸執事)는 헌관과 집사로 구분...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들. 충효열이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녀자가 지조를 지켜 남편을 따라 순절하는 행실을 통칭한 것으로 이를 삼강행실이라고 하였으며 유교 이념의 기본 덕목이다. 충(忠)은 삼강행실의 첫 번째 덕목이다. 용인의 대표적 인물은 포은 정몽주이다. 그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충의백(忠毅伯)으로서 사...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일은 본래 학(鶴)과 백로 등이 서식하여 붙인 이름이었다가 병자호란 때 삼학사(三學士) 중 한 사람인 추담 오달제가 태어난 뒤 학일(學日)이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학일은 ‘하실’의 변음으로 ‘크다’ 와 ‘골짜기’가 합쳐진 ‘큰 골짜기가 있는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일은 18세기 중엽의 『...
-
학일마을[學日里]은 앞으로 장엄하게 솟아있는 구봉산과 서편에는 쌍령산, 북쪽으로는 문수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학일마을은 본래 마을에 학(鶴)과 백로 등이 서식하여 학일(鶴日)이라고 하였는데, 병자호란 때 삼학사(三學士) 중의 한 분인 추담(秋潭) 오달제(吳達濟) 선생이 태어난 후에 학일(學日)이라고 하였다. 18세기 중엽의 『양지현읍지』나 1789년 간행된...
-
한국민속촌은 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하여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현장학습장으로 활용하며, 나아가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된 국제 관광지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전통생활 문화가 총체적으로 재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예술까지도 향유할 수 있도록 꾸며져, 명실상부 종합 휴양 시설로서의 면모를 구축해 가고 있...
-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희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본래 중국 송나라 때 이름 높았던 대학사로,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고려 말 대호군을 지낸 오희보(吳希保)가 말년에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학일리 일대에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