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562 |
---|---|
한자 | 樓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지역에 있는 누각과 정자.
[개설]
누정(樓亭)은 전통 시대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으로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건물이며, 정자는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건물인데,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환경에 부합되는 자연 친화적이며 한국적인 건축물로 손꼽힌다.
[누정의 기능]
누정은 보통 강변이나 바닷가, 계곡, 언덕이나 산 위, 연못가 등 경관이 좋은 곳,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곳 등에 위치하며 의식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경관을 즐기거나 휴식 혹은 풍류를 즐길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또 누정은 위치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대체로 유흥상경, 시단(詩壇)의 형성, 강학(講學), 친목과 교류, 향약 등과 같은 사회적 모임 장소의 기능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누정은 기능에 따라 이름도 누(樓)·정(亭)·각(閣)·대(臺) 등으로 불린다.
[예산의 누정]
예산군은 조선시대 덕산, 대흥, 예산의 3개 군현 곳곳에 누정이 있었던 것이 지리지와 읍지류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일부는 그 건물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덕산현의 관가정(觀稼亭), 대흥현의 포정정(布政亭)[견사정(見思亭)], 예산현의 석가정(夕佳亭), 만세루(萬歲樓), 격양정(擊壤亭), 이수정(二水亭), 백월정(白月亭), 죽정(竹亭), 시경루(詩境樓), 평원정(平遠亭) 등이 기록에 남아 있다.
덕산현의 관가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현의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나 조선 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1800년대 이전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흥현의 포정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객관 동쪽에 있었던 관아 소속 건물로 장한공(張漢公)이 세운 것으로, 『여지도서』에는 관찰사 안침(安琛)[1445~1515]이 1500년대 초에 견사정(見思亭)이라 이름을 고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1871년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견사정은 14간이었는데, 지금은 없다.”라고 전한다. 이의무(李宜茂)[1449~1507]가 1506년(중종 1)에 지은 「견사정기(見思亭記)」가 전하며, 『여지도서』에는 이맹상이 포정정 아래 있던 연못과 포정정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관련 시가 남아 있다.
예산현에는 누정이 많았는데, 석가정은 동헌 뒤에 있던 건물로 1601년 허균이 지은 『조관기행(漕官紀行)』에서 석가정을 보고 대나무가 푸르러 유연한 맑은 운치가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 석가정은 없어졌으며, 아계 이산해의 『아계유고(鵝溪遺稿)』 시전록(柹田錄)에도 관련 시가 남아 전하고 있다. 만세루는 향천사에 있던 사찰의 문루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고, 이욱(李郁)의 시가 전한다. 격양정(擊壤亭)은 군 동쪽 20리[약 7.85㎞] 격양천 석문(石門) 위에 있었다 하며, 봉사 이형진(李馨振)이 세웠고,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노래를 지었다.
일산이수정은 신양면 서계양리에 남아 있으며, 1849년(헌종 15) 전주이씨 문중 자녀들의 강학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철수(李喆秀)[1824~1896]가 건립한 것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주변 지형지세를 보고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이라 이름 붙이고 글씨를 직접 써 남겨 주었다고 한다. 성산(省山) 이종권(李鍾淃), 우백(又白) 이종환(李鍾渙), 소련(小蓮) 이종진(李鍾珍), 호정(湖亭) 이평호(李平浩), 송령(松嶺) 이종열(李鍾悅) 등의 시판이 걸려 있다. 또한 아계 이산해의 문집 『아계유고』에는 「이수정기」가 남아 전하고 있다. 백월정은 군 동쪽 20리 백월산 아래에 있으며, 농암(聾岩) 윤홍순(尹弘淳)이 아들의 공부를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죽정은 덕산 북쪽 고산촌에 있었고, 학림정(鶴林正)은 이경윤(李慶胤)이 대나무를 그리고 구원(九畹) 이춘원(李春元)과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각각 율시 1수씩을 써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나 현재는 없다. 시경루는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화암사의 요사채 건물로 시경루와 무량수각(無量壽閣)에 추사 글씨의 편액이 걸려 있다. 화암사 뒷뜰 바위에는 시경(詩境)이라는 추사의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1977년에 예산군에서 복원하였다. 평원정은 대술면 상항리에 있는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 고택의 사랑채 건물이다. 사랑채에는 ‘평원정(平遠亭)’이 현판이 걸려 있다. 1637년 세워졌고 1846년 중수하였다.
[현황]
조선시대 지리지와 읍지 및 문헌에 나온 대부분의 누정은 현재 사라지고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으며, 현존하는 누정은 이수정과 평원정이 유일하다.
이수정은 예산 일산이수정이라는 명칭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평원정은 예산 수당 고택 자체가 국가민속문화재 제281호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누정을 통해서 예산 지역의 문인, 지성인들의 교류와 집회, 경관의 선택과 유서 등을 엿볼 수 있다. 예산 지역의 누정은 예산의 선비 문화나 산수(山水) 문화를 알 수 있게 한다. 예산의 누정 중에는 특별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 강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