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16
한자 張胤植旌閭
이칭/별칭 효자 장윤식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월산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장윤식 정려 건립
현 소재지 장윤식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월산리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월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장윤식의 정려.

[개설]

장윤식 정려장윤식(張胤植)[1817~?]의 효행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1905년 건립하였다. 장윤식의 아버지 장진급(張眞汲)[1776~1844]도 효행으로 1868년(고종 5) 광시면 신흥리에 정려가 세워졌다. 장윤식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도(聖道)이다. 1852년(철종 3) 식년시 『사마방목』에 따르면 거주지가 여산[현 익산시 여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고종실록』1867년 5월 20일 내용에는 예산현의 진사 장윤식이 군수에게 백미 500석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어 1867년 이후에는 예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윤식은 공을 인정받아 조경묘참봉(肇經廟參奉)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장윤식은 1852년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1868년 예산현감, 1872년 청하현감으로 부임하여 여러 폐단을 시정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882년 가례 시 돈령부도정에 오르고, 1885년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에 오르는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장윤식은 아버지 장진급이 병이 들자 수년간 병구완을 하며 입으로 고름을 빨아 치료하거나 온갖 약을 구해 먹이고 하늘에 치성을 드리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고 한다. 지극한 정성에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예를 다해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위치]

장윤식 정려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월산리 월산마을의 가운데 민가 앞에 동쪽을 보고 서 있다.

[형태]

장윤식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의 건물이다. 석재와 시멘트로 기단을 조성한 뒤 화강암로 된 방형의 높은 주춧돌을 세우고 위에 원기둥을 올렸다. 정려의 왼쪽, 오른쪽 박공 밑에는 방풍판이 있다. 4면에 홍살을 두르고 하방 아래는 자연석으로 고맥이를 하였다. 정려의 내부 중앙 상단에는 ‘효자 가선대부 동지돈령부사 증종이품 가선대부 내부협판 장윤식지문 광무구년을사삼월 일 명정(孝子嘉善大夫同知敦寧府事贈從二品嘉善大夫內部協辦張胤植之門光武九年乙巳三月 日 命旌)’이라고 쓴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명정 현판 뒤에는 손자 장기일(張基日)이 정려를 건립하면서 장윤식의 행적과 효행을 기록한 정려기가 걸려 있다. 정려기 앞쪽에는 당시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공사원기(工師貟記)도 함께 걸려 있다. 공사 담당자들은 경복궁의 중건에 참여하였던 이름 있는 장인들이었다고 전한다.

[의의와 평가]

예산군에는 장윤식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있다. 광시면 신흥리에는 장윤식의 묘소가 아버지 장진급의 묘와 나란히 있다. 묘 앞에는 1895년 세운 묘비가 서 있으며, 비문은 계환(啓煥)이 짓고, 기일(基日)이 썼다. 또한 장윤식이 예산현감으로 있을 때 여러 폐단을 시정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1870년 세워진 현감 장윤식 영세불망비(縣監張胤植永世不忘碑)도 있다. 가로 57㎝, 세로 21㎝, 높이 127㎝이며 예산터미널 앞에 있다. 1891년 장윤식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돈녕 장공윤식 영세불망비(同敦寧張公胤植永世不忘碑)도 있다. 가로 49㎝, 세로 17㎝, 높이 174㎝이며 대흥중고등학교 비석군 사이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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