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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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厚稙旌閭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905년 - 이후직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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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이후직 정려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
성격 | 정려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세워진 효자 이후직의 정려.
[개설]
이후직 정려는 효자 이후직(李厚稙)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05년 세워졌다.
이후직의 본관은 한산, 자는 성사(聖仕), 또는 휴은(休隱)이다. 취암 이흡의 9세손이다. 이후직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눕자 크게 걱정하여 용한 의원을 찾아가 진료를 부탁하였다. 어머니의 똥을 맛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무 거리낌 없이 어머니의 똥을 맛보았다고 한다. 가물치와 더덕을 약으로 쓰라는 말을 듣고 엄동설한에 가물치를 잡으려고 냇가로 가 보았으나 얼어붙은 내를 보고는 얼음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때 갑자기 얼음이 깨지며 가물치가 올라왔다. 또한 더덕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자 발밑으로 더덕이 튀어나왔다. 이후직은 가물치와 더덕이 하늘이 내린 것이라 생각하고 정성껏 고아 먹였으며 이후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후직의 효행이 고을에 널리 알려지자 정인(鄭寅) 등 덕산 유생들이 이후직을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칭송하며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 이후직은 1905년[광무 9] 효자 명정을 받았다.
[위치]
예산군 덕산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5.5㎞ 들어가면 봉림리 본동마을이 나온다. 이후직 정려는 본동마을의 북쪽에 있는 봉림교회 뒤편에 남향하여 서 있다.
[형태]
이후직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 양식이다. 20여 평[약 66㎡]의 땅을 정리한 다음 화강암과 시멘트로 낮은 기단을 다졌다. 기단 위에 화강암으로 된 팔각의 높은 주춧돌을 세우고 원기둥을 올려놓았다. 정려의 4면에는 홍살을 둘렀으며 양옆 박공 아래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내부 중앙 상단에는 1905년[광무 9] 6월 내려진 ‘효자 학생 이후직지려(孝子學生李厚植之閭)’라고 쓴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정려의 내부 뒷면 상단에는 성명호(成命鎬)가 지은 ‘휴은선생정려서(休隱先生旌閭序)’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군 봉산면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계전의 후손들이 다수 살고 있는 곳으로 한산이씨 가문의 지역적 기반이 튼튼한 곳이다. 덕산 지역 유생들의 적극적인 정려 건립 활동에는 한산이씨 문중의 뒷받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