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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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季甸不祧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명산로 51-25[봉림리 5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997년 - 이계전 부조묘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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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 이계전 부조묘 삼문 앞 문열공한산이공리계전숭모비 건립 |
현 소재지 | 이계전 부조묘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명산로 51-25[봉림리 51] |
성격 | 부조묘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계전의 부조묘.
[개설]
이계전 부조묘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계전(李季甸)[1404~1459]을 모신 부조묘[큰 공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이계전의 본관은 한산,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목은 이색(李穡)의 손자이고 이종선(李種善)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났는데 1427년(세종 9)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가 된 이래 다수의 국가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1436년 왕명으로 김문(金汶) 등과 총 149권의 『강목통감훈의(綱目通鑑訓義)』를 편찬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정인지(鄭麟趾) 등과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또한 단종 복위 운동 때 세조를 도운 공로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좌익공신(佐翼功臣)에 녹훈되었다. 1459년 7월 경기관찰사에 임명되었는데 9월 사망하였다.
한산이씨 가문은 이계전의 7대손 이흡(李洽)이 덕산에 입향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계전 부조묘 제향이 예산군 봉산면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덕산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5.5㎞ 들어가면 봉림리 본동마을에 이른다. 본동마을에서 동북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1㎞ 거리에 재동마을이 있고, 재동마을 안쪽에 문열공 이계전의 부조묘가 있다.
[변천]
이계전 부조묘 현재 건물은 후손들에 의해 1997년 건립된 것이다.
[형태]
이계전 부조묘는 부조묘와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1월 3일 제향을 지낸다. 감실 안에는 좌측에 문열공, 우측에 충장공의 불천지위가 있다. 삼문 앞에는 1998년 후손들이 세운 ‘문열공한산이공리계전숭모비(文烈公韓山李公李季甸崇慕碑)’가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는 이계전 부조묘 외에 한산이씨 문중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이계전 부조묘 제향은 이흡 이 덕산에 입향한 이후 한산이씨가 봉림리 일대에 터를 잡고 세거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