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78
한자 禮山李成萬兄弟孝悌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02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민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97년연표보기 - 이성만·이순 형제 효제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78년 -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를 예산군 대흥면사무소 앞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09월 29일연표보기 -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02 지도보기
성격 효자비
관련 인물 이성만|이순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45㎝[전체 높이]|119.6㎝[비신 높이]|51.2㎝[폭]|15㎝[폭]|35㎝[이수]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이성만·이순 형제의 효심과 우애를 기리는 조선 전기의 비.

[개설]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이성만(李成萬), 이순(李順)형제의 효심과 우애를 기리기 위해 조선 연산군 때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세워진 비석이다. 1983년 9월 2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는 고려 말기 효자로 이름난 이성만, 이순 형제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497년(연산군 3)에 세운 것이다. 비문에 따르면 1418년(태종 18) 지신사 하연(河演)이 왕에게 충청도 대흥호장 이성만과 이순 형제의 효행과 우애를 알렸다. 형제는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고, 부모가 돌아가시자 형은 어머니의 무덤을, 아우는 아버지의 무덤을 지켰다. 아침에는 형이 아우의 집에, 저녁에는 아우가 형의 집에 가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이바지할 음식을 바치고 맛있는 것을 한 가지라도 얻게 되면 반드시 함께 먹었다. 그리하여 효자 대흥호장 이성만과 이순을 왕이 불러들이고 마을에 정문을 내려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위치]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는 예산군 대흥면행정복지센터 앞 도로 남쪽에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형태]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는 화강암으로 된 조선 초기 양식의 비석으로, 전체 높이가 145㎝이고 비신은 높이 119.6㎝, 폭 51.2㎝, 두께 15㎝, 이수는 35㎝이다. 기단은 최근에 새로 만든 것이고, 비신과 이수는 구분만 있을 뿐 하나의 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수의 상부에는 복발 형태를 한 부조물이 있으며, 이수에는 문양이 조식되어 있으나 심하게 마모된 상태이다.

[금석문]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영락 16년[1418] 11월 3일, 지신사 하연(河演)이 삼가 왕지(王旨)를 받들어 ‘의리가 있는 남자와 절개가 있는 여자, 효성스런 아들과 손자를 찾아보고 보고할 일’로 각 도에 공문서를 보낸 일이 있다. 충청도 대흥호장 이성만, 이순 등은 부모가 살아 계실 적에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봉양하고, 봄과 가을로 부모가 사랑하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해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형은 어머님의 무덤을 지키고 동생은 아버님의 무덤을 지키면서 아침에는 형이 아우의 집에 이르고, 저녁에는 아우가 형의 집에 나아가되 아침과 저녁으로 서로 맞잡고 같이 밥을 먹었고, 한 가지 맛난 것을 얻으면 모이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고 임금께 상신(狀申)을 올려 보고드렸다. 앞서 효자 대흥호장 이성만, 이순 등을 임금께서 궐내로 불러 정표문려하시고,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조심하고 삼가고 지켜서 가풍을 떨어뜨리지 말고 더욱더 힘쓰라 하시고 영세토록 전하는 교훈이 되게 하셨다. 홍치(弘治) 10년[1497] 정사 2월 일 세우고 표하다.”

[현황]

예산이성만형제효제비는 원래 가방교(佳芳橋)[가방역에서 광시면 장전리로 내천을 건너는 석교] 옆에 있던 것을 1978년 예당저수지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 면사무소 앞으로 옮겼다. 비석은 정면, 측면 1칸에 맞배지붕을 한 효제각 안에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성만·이순 형제의 우애와 관련한 유명한 전설이 전한다. 대흥 윗들거리에 사는 형과 오리골에 사는 동생이 서로에게 더 많은 벼가 필요할 것이란 생각에 밤마다 몰래 가져다주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밤 개뱅이다리[가방교]에서 마주쳐 밤마다 자기 집 가마니가 늘어나 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좋은 형제의 행실이 후대에 모범이 되게 하기 위해 정문을 세워 표창한 것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