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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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應魯先生事蹟地 |
이칭/별칭 | 수덕여관,이응로 사적지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로 896[사천리 산41]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최명진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44년 - 수덕여관 구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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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7년 10월 - 이응노선생사적지 해체 및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6년 11월 30일 - 이응노선생사적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응노선생사적지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9년 - 이응로 선생 암각화 조성 |
현 소재지 | 이응노선생사적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로 896[사천리 산41] |
성격 | 가옥 |
양식 | 초가 |
면적 | 1,504㎡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화가 이응로가 거주하였던 수덕여관과 일대의 유적.
[개설]
이응노선생사적지는 동양화의 독특한 화법으로 유명한 화가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1904~1989]가 생전 작품 활동을 하였던 공간들을 말한다. 이응로는 1944년 수덕여관을 구입한 후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수덕여관과 수덕여관 일대를 작품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6.25전쟁 당시에는 피난처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1968년 동백림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후 잠시 귀국하여 요양하던 곳이다. 이응로는 수덕여관에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다고 전한다.
[위치]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수덕사 주차장에서 수덕사 안길을 따라 20여 분을 걸어 올라가면 수덕사 선문을 지나 일주문이 나온다. 수덕여관은 일주문 왼쪽에 있다.
[형태]
수덕여관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초가집 여관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수덕사 위쪽에서부터 내려온 좁은 개울물 건너편에 있다. 원래는 비구니들의 거처였으나 한때 출가하려던 나혜석이 말년에 그림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이응로가 인수해 수리하여 그림을 그리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수덕여관은 총 12개의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정면 5칸이 길에 접해 있으며 반대편으로 각각 6.5칸과 4칸이 ㄷ자형으로 감싸고 있다. 이응로가 직접 쓴 ‘수덕여관’ 현판이 걸려 있다.
수덕여관에는 이응로가 남긴 글씨들이 있다. 하나는 여관 뒤뜰에 남아 있는 바위그림[암각화]이고 나머지는 수덕여관이란 글씨가 새겨진 현판과 바위이다. 바위그림은 1969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후 수덕여관에서 요양하며, 삼라만상의 영고성쇠를 문자적 추상으로 바위에 표현한 작품이다.
[현황]
이응노선생사적지는 1996년 11월 3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2007년 10월 보존상의 문제로 전면 해체·복원되었다. 또한 수덕여관 개축 당시 발견된 이응로의 습작 약 50여 점은 여관 인근에 2010년 지어진 선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응로는 필묵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시도와 시대정신이 투철한 작품 세계로 국내는 물론 프랑스와 유럽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응노선생사적지는 한국화의 근대화를 이끈 화가 이응로의 작품 활동이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