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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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配食壇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윤석 |
건립 시기/일시 | 1791년 - 배식단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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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배식단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 |
성격 | 사당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 단종의 충신들 위패를 모신 건물.
[개설]
배식단사(配食壇祠)에서 배식(配食)이란 말은 기릴만한 인물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일을 말한다. 장릉의 배식단사는 단종에게 충성을 바친 인물을 골라서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이다. 1791년(정조 15) 2월 21일 장릉에 배식단(配食壇)을 세우고 추가로 제사 지낼 사람을 정하였다. 단종이 복권된 것은 1698년(숙종 24)이다. 이후 영조와 정조의 시대를 지나면서 단종에게 충성을 바친 신하들을 기리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이 진행되었는데, 배식단사의 설치도 그중 하나이다. 정조는 배식단에 위패를 두고 제사를 지낼 인물로 안평대군과 성삼문 그리고 엄흥도 같은 주요 인물 32인을 선정하고, 그다음에 사적이 자세하지 않은 조수량(趙遂良) 등 8인과 연좌되어 죽은 김승규(金承珪) 등 190인은 따로 단을 설치하여 제사 지내라고 하였다.
정조는 제단에서 제사 지내는 중신(重臣) 32인의 사판(祠版)에는 ‘충신지위(忠臣之位)’라고 쓰고, 별단(別壇)에는 사판 3개를 만들어서 조정의 신하를 한 판, 맹인·내시·군사·노비를 한 판, 여자들을 한 판으로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별단의 신위(神位)는 중신들의 왼쪽에 두도록 하되, 조정의 신하는 약간 앞으로 나오게 하고 맹인·무당·내시·군사·노비의 자리는 약간 밑으로 내리라고 하였다. 또 중신 32인의 제사에서는 축문(祝文)을 쓰지만 별단의 제사에는 축문을 쓰지 말라고 하였다. 다만 별단의 제물은 각기 밥 한 그릇, 탕 한 그릇, 술 한 잔으로 하며, 헌관과 집사는 두 제단의 일을 겸하여 보게 하라는 명령도 같이 내렸다.
[위치]
배식단사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90-1번지 장릉 내에 있다.
[의의와 평가]
배식단사는 단종에게 충성을 바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유교적 봉건국가 조선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정조 이후에 장릉(莊陵)의 정자각(丁字閣)·비각(碑閣)·장판옥(藏板屋)·배식단과 함께 관풍헌(觀風軒)과 자규루(子規樓)에 대하여 1년에 네 차례 조정에 관리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배식단사는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으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되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