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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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溪書院 |
영어공식명칭 | Ungye Seowon |
이칭/별칭 | 운계정사,운계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2길 22[거무역리 51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824년 - 운계정사[운계서원 전신]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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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87년 - 운계서원 이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운계서원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 운계서원 중건 |
현 소재지 | 운계서원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2길 22[거무역리 519] |
원소재지 | 운계정사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 |
성격 | 서원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사당] |
정면 칸수 | 3칸[사당] |
측면 칸수 | 1칸[사당] |
소유자 | 영해박씨대종회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운계서원(雲溪書院)은 1824년(순조 24)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박제상(朴堤上)·박세통(朴世通)·박응천(朴應天)[1556년~1603]을 제향한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대의 충신으로 영해박씨(寧海朴氏) 가문의 시조이다. 그 후손 박세통은 고려 고종 연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오른 문신이다. 거무역리에는 박세통이 안렴사(按廉使) 재임 중 용왕의 아들인 거북이를 구해주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박세통의 후손인 박응천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영해향교(寧海鄕校)에 모셔진 오성(五聖)의 위패를 수호하였다.
[위치]
운계서원이 있는 거무역리는 박세통이 개척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서원은 마을 동쪽 벌판에 조성되어 있으며, 서쪽과 북쪽에는 영해도호부의 진산(鎭山)인 등운산(騰雲山)이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가 보인다.
[변천]
운계서원이 처음 건립된 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의 보곡(保谷)이다. 거무역리에서 북쪽으로 2㎞가량 떨어진 보곡에는 박세통·박홍무(朴洪茂)·박감(朴瑊)의 묘소가 있다. 이에 1818년(순조 18) 영해박씨 후손들이 선조의 세덕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운계서원의 모체가 되었다. 이후 도내 유림들이 발의하여, 1824년 기존의 건물을 주사(廚祠)로 쓰고, 마을의 가옥을 개조해 강당으로 만든 후 박제상·박세통·박응천 3인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처음 건립 때는 서원이 아니라 운계정사(雲溪精舍)라고 불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887년 후손들이 이곳에다 재실(齋室)인 추원재(追遠齋)를 지었다. 1987년 현재 자리에 사당과 봉송정(鳳松亭)을 갖춘 운계서원을 새로 건립하였다.
[형태]
철폐되기 전 운계서원은 묘호(廟號)가 상현사(尙賢祠), 사호(祠號)는 운계사(雲溪祠)인 3칸의 사당을 비롯해 8칸의 강당, 3칸의 외삼문, 10칸의 주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는 사당과 봉송정만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봉송정은 2칸 규모의 사각 정자이다. 사당 옆에는 ‘삼대시중신도비(三代侍中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현황]
음력 10월 7일에 향사(享祀)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영해박씨 가문의 향촌 사회활동과 서원 문화의 전승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