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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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宅 |
영어공식명칭 | Old Hou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찬영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지은 지 오래된 가옥.
[개설]
고택은 대개 우리의 오랜 전통적 생활양식과 의식구조, 기술, 장인에 의해 지은 목조기와집을 뜻한다. 즉, 근대 이전의 고유한 평면 및 구조 형태로 지은 우리네 살림집을 말한다.
[건립경위]
영덕 지역 내 고택은 현재 그 수가 많지 않다. 대개는 우리나라 주거사적 특성 및 지역 살림집의 고유한 공간과 건축적 특성이 인정되어 국가 및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해 보존관리되고 있는 고택이 대부분이다. 이들 고택은 대개 임진·병자 양란 이후로 피난 또는 타 지역에서 분가 이주해 정착한 살림집, 종가에서 후손이 인근 마을로 분가하면서 지은 살림집, 한 문중의 후손이 선조의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종가로 건립한 살림집 등이 있다. 이들 살림집은 기본적으로 사람살기에 좋은 조건[배산임수, 문전옥답 등]을 갖춘 곳에 한 가문이 개척하기도 했고, 여러 가문이 개척해 집성촌을 이룬 곳도 있다. 또 종가에서 새로운 지역으로 분가해 가문을 분파하기도 하였다.
[위치]
영덕 지역 내 고택은 영해면 괴시리·원구리, 창수면 인량리·오촌리, 축산면 도곡리·상원리, 병곡면 송천리, 지품면 눌곡리 등이 있으며, 이곳에 품격과 격식을 갖춘 고택이 많이 남아 있다. 창수면 인량리는 낙동정맥의 한 봉우리인 칠보산을 거쳐 등운산으로 이어져 온 산줄기가 마치 학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형국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송천과 동해안의 3대 평야 중 하나인 영해평야가 있는 배산임수, 문전옥답의 길지에 남향해 있다. 인량리 맞은편의 남천가 나지막한 둔덕에는 원구리가 있다. 괴시마을은 남동쪽의 망일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세가 마을을 에워싸고, 전방으로는 송천과 그 주변의 넓은 영해평야를 향해 서남향하고 있다.
[현황]
창수면 인량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대흥백씨와 재령이씨, 안동권씨, 야성정씨, 무안박씨, 영양남씨, 영천이씨, 신안주씨 등 8대 성씨, 12종가가 거주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영덕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이다. 마을에는 영덕 충효당 종택[운악 이함의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영덕 오봉종택[오봉 권책의 종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인량리용암종택[용암 김익중의 집, 경상북도 민속자료], 갈암종택[갈암 이현일의 종택, 경상북도 기념물], 우계종택[우계 이시형의 종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소호종택[소호 박신지의 종택], 삼벽당[이중량의 종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원모재[함양 박종산의 종택], 자운정[석계 이시명이 살림을 낸 집], 처인당[영양남씨 남달만의 집], 강파헌정침[숙종 때 청백리 권상임이 지은 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등 많은 살림집이 남아 있다.
원구리는 15세기 후기에 영양남씨의 종사랑을 지낸 남준이 평해에서 이곳으로 왔고, 그다음으로 16세기 중기에 진성이씨의 영모당 이선도가, 그 뒤 대흥백씨의 족한당 백인국이 각각 마을에 입주하였다, 지금은 남씨, 박씨, 백씨의 3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는 경수당종택[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을 비롯하여, 영해 난고종가 정침[경상북도 민속자료], 난고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곡강고택·곡강정[경상북도 민속자료], 시암고택, 상의당, 구성헌, 금소헌, 고은정, 구봉서원, 추원재를 비롯하여 오래된 고택들과 정자, 서원 등이 남아 있다.
괴시리 호지마을은 13세기 말에 함창김씨가 입주하여 세거하였으며, 그 뒤 16세기인 명종 연간에 수안김씨와 영해신씨가 입주하였다고 하며, 17세기경에는 영양남씨가 입주해 집성촌을 이루었다. 괴시리 관어대는 16세기 초에 안동권씨 만취 권의철, 취옹 권의협 형제가 개척하였다고 하며, 관어대란 이름은 목은 이색이 명명하였다. 마을에는 300년된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경상북도 민속문화재]을 비롯해 영해 구계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시리 괴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시리 대남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대은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실 물소와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물소와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시리 사곡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시리 스므나골재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시리 영감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덕 번호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덕 괴시리 내앞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은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해 경주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해 주곡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해 입천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시리 해촌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등 많은 종택과 괴시리 스므나골재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덕 만송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괴시리 괴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등 서당, 정자 등 도합 14점의 국가 및 도 지정 문화재 자료와 고가옥 30여 호가 밀집되어 있어 조상들의 생활과 멋을 엿볼 수 있는 전통 문화마을이다. 특히 2021년에는 함창김씨[목은 이색의 외가]가 800여 년 전에 처음 터를 잡은 이후에 여러 성씨가 거주하였고, 현재는 영양남씨가 4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는 전통마을의 특성이 인정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창수면 오촌리는 17세기에 재령이씨가 들어와 오촌이라 하고 세거하고 있다. 마을 내에는 갈암 이현일의 고택인 오촌리 갈암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면운재 고택 및 별묘[경상북도 민속자료], 존재종택및명서암·우헌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영덕 오촌리 냉천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오촌재 등이 있다.
축산면 도곡리는 17세기경 무안박씨가 원구리에 분가 정착해 그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마을에는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국가민속문화재], 도곡동 충효당[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이오당, 경렴정, 흥교당 등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영덕 지역 고택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안동문화권과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고유한 지역적 환경 및 건축적 특성을 공유하되 살림집에는 영덕 지역만의 특징도 갖고 있다. 특히 정침은 'ㄱ'·'n' 자형 안채와 '一'·'⊥'·'ㅓ' 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완전히 에워싼 폐쇄적인 완결형·행간확장형 뜰집인 점, 안마당에 면해 안대청이 배치된 안채의 중부형 평면구성, 상방 앞에 마룻바닥의 통래칸을 둔 점, 사랑마루에 벽과 창호로 내부화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마을 동쪽 뒷산을 배후로 서향으로 배치된 정침에 일조 및 출입 동선 등 생활편의에 맞춰 사랑채 등을 남향으로 배치한 점, 도곡리 무안박씨 무의공파종택, 도곡동 충효당, 영덕 충효당처럼 각 채를 다른 시기에 건립해 최종 뜰집으로 구성한 연결형 뜰집의 존재는 타 지역에서도 흔치 않은 특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