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380 |
---|---|
한자 | -運動 |
영어공식명칭 | Saemaul Undong |
이칭/별칭 | 새마을가꾸기사업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1970년 4월부터 전개된 지역사회 개발 운동.
[개설]
새마을운동은 1970년부터 근면·자조·협동의 기본 정신을 실천하고자 범국가적·범국민적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새마을운동의 기본 정신을 추진하기 위해 1970~1973년 새마을 기반조성사업 추진, 1974~1976년 생산 기반시설 정비와 확충, 1977~1979년 소득 기반 완비와 농외 소득원 확대를 위한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자립과 자율 기반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제3공화국[1963년 12월 17일에 성립된 우리나라의 세 번째 공화국]은 빈곤을 극복하고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자는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성장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공업화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도시와 농촌 간의 경제적 격차가 커졌다. 도시와 농촌의 경제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4월 22일 전국지방장관 회의에서 '농촌 자조 노력의 진작 방안'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5월 6일에는 ‘국토 보존’에 관한 지시를 내렸다. 이처럼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서 시작되었다.
[변천]
경상북도에서는 1971년 도내 전 동리에서 리·동개발위원회를 결성하고 새마을운동의 역점 사업으로 마을 진입로 확장, 공동 우물, 공동 빨래터 설치, 소하천 정비, 하수구 정비, 마을 산의 녹화, 퇴비장 설치, 소류지 및 관정 보수 등 10대 가꾸기 사업을 전개하였다.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도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을 푸르게, 마을에 들어오는 길 넓히기, 마을 앞 소하천 뚝 보수와 바로잡기, 퇴비장 만들기, 소류지 모래 파내기, 관정 관리 및 보수, 마을 청소와 하수구 파내기, 공동 우물 및 빨래터 만들기, 마을문고 설치와 어린이 놀이터 만들기, 쥐 없는 마을 만들기 등의 사업을 실시하였다. 또한 의식 개혁 사업으로 퇴폐풍조 일소, 근검절약 생활의 실천, 협동 분위기 조성 등을 통해 불건전한 의식과 생활 방식을 개선해 나갔다.
새마을운동 사업 확산기인 1974~1976년 새마을운동의 역점 사업은 소득 증대와 국민 의식 개혁, 환경 개선 사업이었다. 영덕군에서는 새마을 소득 증대, 새마을 교육 및 훈련, 환경 개선, 새마을정신 계발, 마을 협동 사업 추진 등의 사업이 실시되었다. 새마을운동 효과 심화 단계인 1977~1979년 영덕군에서는 증산운동·근검운동·협동운동 등이 실시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공장새마을운동이 정착되어 조일산업이 공장새마을 우수업체로 선정되었다.
1980년대 이후 새마을운동 체제 정비가 이루어졌다. 특히 정부 주도로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이 민간 주도 체제로 전환되었다. 새마을운동이 민간 주도 체제로 전환된 가운데 1983년 10월 20일 영덕군 지회가 설치되었고, 1984년 3월 15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1990년 이후 새마을운동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여 자율과 자립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영덕 지역에서도 자율과 자립 기반을 다지고 그 능력을 제고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2008년 7월 25일에는 영덕군새마을회를 설립하였다.
[현황]
경상북도 영덕군 새마을회는 2021년 현재 새마을 지도자 489명, 회원 2,808명과 함께 생명운동·평화운동·공동체운동·지구촌공동체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상북도 영덕군의 새마을운동은 전통적 농촌을 현대적으로 변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