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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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和里 |
영어공식명칭 | Samhwa-ri |
이칭/별칭 | 전여리,월전,관동,장등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삼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성한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에 속해있는 법정리.
[개설]
삼화리는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에 속한 지역으로, 행정리는 삼화1리, 삼화2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전여리·월전·관동·장등리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삼화리(三和里)의 지명 유래는 관동(館洞)·용수(龍水)·전여(箭如) 등 세 마을이 화목하다는 뜻에서 불려졌다는 설이 있다. 자연 마을인 전여리는 장등리에서 서쪽으로 약 1㎞ 지점에 있는 마을로, 세낙골 혹은 세락골이라 부르며, 옛날 한 화랑이 무룡산에서 활을 쏘자 화살이 이곳에 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전은 월밭골·달밭골이라고도 하며, 마을 뒷산 밭의 형태가 보름달 같다고 하여, 혹은 안동권씨(安東權氏) 추밀공파(樞密公派)의 만경대 뒤쪽 산이 반월형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관동은 삼화1리 본마을로, 독점이라고도 하였는데, 옛날 옹기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장등리는 삼화2리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로, 옥류리에서 등이 길게 뻗어 있으며, 진등이라고도 하며 용굴이 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삼화리는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을 통해 관동·용수동·전여동(箭如洞)을 합쳐 삼화동이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지품면에 편입되었다.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삼화1구, 삼화2구로 분할되었으며, 1961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할 당시에 관동·용수·삼협 등은 삼화1동이 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삼화2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여 삼화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환경]
삼화리는 국사봉(國師峰)의 한 줄기가 동남으로 뻗어 화림산(華林山)[342m]에 닿고, 약 30m 높이의 폭포와 약수터가 있어 수원이 풍부하다. 삼화2리 쪽에서 발원하여 삼화1리로 흘러가는 관동천[삼화천]은 오십천에 유입된다. 그 외에도 세류곡지, 전여곡지[삼화2리 저수지], 골안못 등의 저수지와 못이 있다. 전답보다 임야가 더 많은 마을이다.
[현황]
삼화리의 2020년 말 면적은 11.03㎢이며,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 총 115가구에 224명[남 113명, 여 111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삼화리의 동쪽으로는 영덕읍 구미리, 서쪽으로는 오천리, 남쪽으로는 신애리, 북쪽으로는 옥류리, 국사당산과 맞닿아 있다. 삼화리의 서북쪽과 북쪽은 국사당산과 옥류리·율전리에 분포한 산으로 인해 지세가 높지만, 서남쪽·남쪽의 경우에는 지세가 낮다. 마을은 골안못과 세류곡지에서 흘러오는 물길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주로 길을 따라 가옥들이 줄지어 있다. 관동천[삼화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에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삼화1리 마을회관과 삼화2리 마을회관 모두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삼화리에는 삼화리 요지(窯地), 삼화리 고분군 등의 고분, 가마터와 망경재(望京齋) 등의 재실 등이 존재한다. 경제생활로는 밭·논·과수원 순서로 토지를 이용 중이다. 삼화1리에서는 사과·배·복숭아 등의 특산물을, 삼화2리에서는 송이버섯·사과·복숭아 등을 특산물로 생산한다. 삼화1리 앞을 국도 제34호선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