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
가야금 산조 창시자 김창조와 영암의 가야금 전통. 악성(樂聖) 김창조(金昌祖)[1856~1919]는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세습 율객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회문리는 풍류객들이 자주 드나들던 월출산 자락의 산세 수려한 곳이어서 어려서부터 무의식적으로 음악 수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7~8세 때부터 가야금을 연주하기 시작하여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대금, 퉁소 등 모든 악기를 잘 다뤘...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군일(君一), 호는 명은(名隱)이다.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종손(從孫)으로, 아버지는 훈련원 권지봉사(訓鍊院權知奉事) 고기후(高基厚)이다. 부인은 영광 김씨(靈光金氏)이고, 동생은 고부현(高傅賢)이다. 고부함(高傅咸)[1593~1642]은 1639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
조선 후기 영암에 유배 온 문신.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이다. 서인으로서 2차례의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했다. 1675년(숙종 1)에 남인인 윤휴(尹鑴), 허적(許積), 허목(許穆) 등의 공격으로 관직을 빼앗겨 전라도 영암에 유배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했던 김상...
-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올렸던 전라남도 영암군의 사당. 전라남도 영암군 남해신사(南海神祠)는 우리나라 3대 해신제 중 하나인 남해신사 해신제를 올렸던 곳이며, 나라의 안녕과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남해신사라는 이름은 『고려사(高麗史)』·『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남해신 사당(南海神祠堂...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던 포구. 남해포(南海浦)는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다.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갯고랑이 삼포천으로 변하였는데, 이 삼포천의 하류에 남해포가 있다. 남해포의 동쪽 언덕에 남해신사(南海神祠)[남해당]가 있다. 남해신사는 조선 시기 국가에서 비용을 부담하여 바다의 안녕을 위하여 해신에게 제사[中祀]를 지내던...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의병장. 백상빈(白尙賓)[1594~?]은 전라도 영암 출신으로 시와 문필이 능하였고, 병자호란 때 동생 백상현(白尙賢)과 함께 이기발(李起浡)[1602~1662]의 격서(檄書)에 응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경양(景揚)이다. 할아버지는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고, 아버지는 백진남(白振南)[1564~1618],...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사선(士善), 호는 매당(梅堂)이다. 통례(通禮) 신후경(愼後庚)의 후예이고, 감사(監司) 신기(愼幾)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봉사(奉事) 신원개(愼元凱)이다. 부인은 함평 이씨(咸平李氏)로 생원 이유회(李惟誨)의 딸이며, 동생으로는 신여훈(愼汝訓)·신여원(愼汝謜)·신여눌(愼汝訥)이 있다. 신여의(愼汝誼)[1567~1649]...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 조일주(曺一周)는 머리가 영특하고 성격이 온화했지만 사람됨이 바르고 엄격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매우 아꼈던 문하생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정한재(靖閒齋)이다.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의 손자로, 아버지는 조경보(曺敬甫)이다. 조일주(曺一周)는 18세에 송시열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송시열은...
-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짐을 얹어 등에 지고 나르는 데 쓰는 기구. 지게는 각종 짐을 얹어 어깨와 등에 메고 나르는데 사용하는 운반 농기구로 우리나라에만 있다. 지게의 종류는 보통 지게를 비롯하여 물이나 거름 따위의 액체를 통에 담아 나르는 물지게와 거름지게가 있고, 또 쪽지게·옥지게·거지게 따위가 있다. 또한 특수하게 쟁기나 극젱이만을 얹어 나르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