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의 재실. 남은재(南隱齋)는 창녕 조씨(昌寧曺氏)의영암 입향조인 남은처사 조세풍의 재실이다. 조세풍은 부제학 조상치(曺尙治)의 6세손이다. 조세풍은 경상도에서 살다가 1580년(선조 13)경에 지금의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평리 마을로 들어와 강당을 짓고 학문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고,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 물자를 모으고 의병 활동...
-
조선 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문인.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지수(智叟), 호는 명촌(明村)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박세갑(朴世甲)이며,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병조 판서에 추증된 박성오(朴省吾)[1589~1651]이고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박수표(朴壽彪)이다. 박순우(朴淳愚)[1686~1759]는 1686년에 영암군에서 태...
-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묘(祠廟)·사우(祠宇)·사(祠) 등으로도 사용한다. 위패 대신 조상의 영정을 봉안한 곳은 영당(影堂)이라고도 한다. 민간의 사당을 가묘(家廟)라고도 하는데 왕실의 것은 특별히 종묘(宗廟)라 한다.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원을 두고...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집성 마을.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부제학 충정공 조상치(曺尙治)의 6세손 남은(南隱) 처사 조세풍을 입향조로 하는 부제학공파 후손들이다. 7세손 조기서(曺麒瑞)[1556~1591]는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유력 성씨인 선산 임씨 임혼(林渾)의 사위가 되었고,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 후 영암으...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함양 박씨 집성 마을. 함양 박씨(咸陽朴氏)는 조선 전기에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구림 입향 이후 영암 지방의 유력 성씨로 발전하며 그 기반을 조선 후기까지 유지·존속시켰다. 박성건의 구림 입향 이후 처족(妻族)이자 구림 마을에 먼저 정착한 성씨였던 난포 박씨(蘭浦朴氏)와 연결되었으며, 뒤에 입향한 선산 임씨(善山林氏...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 사우. 서호사(西湖祠)는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조행립은 임진왜란 때 외가인 구림으로 피난하면서 영암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당시 구림의 선산 임씨(善山林氏), 함양 박씨(咸陽朴氏), 낭주 최씨(朗州崔氏)와 함께 구림 대동계를 창설하는 등 향론을 이끌어갔던 인물 중...
-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 성씨의 연원은 고조선 시대로 올라가는데, 성씨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시기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개국한 이후이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지방 귀족, 이른바 호족들이 고려의 개국과 후삼국 통일에 적극 참여하여...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의 재각 영모재(永慕齋)는 전라남도 영암군 장선리에 있다. 덕진면사무소에서 예향로[13번 국도]를 타고 나주 방면으로 약 2㎞ 가면 청림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의 서리동로를 따라 약 2㎞ 가면 정족 마을이 나온다. 영모재는 정족 마을의 입구에 있으며, 뒤로는 창녕 조씨 문중의 선산이 있다. 1921년 창녕 조씨(昌寧曺氏)...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가옥. 조영현 가옥(曺永鉉 家屋)은 1700년대 초에 건립된 창녕 조씨(昌寧曺氏) 종가이다. 창녕 조씨의 영암 입향은 조기서(曺麒瑞)[1556~1591]가 당시 영암 지역의 유력 사족이었던 선산 임씨(善山林氏) 임휘(林揮)의 사위가 되면서부터이다. 그 뒤 조기서의 차남인 조행립(曺行立)[1580~1663]이 임진왜란 때 가족과...
-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이루어진 유학과 관련된 제반 활동.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예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는...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선리는 덕진면 소재지 서쪽에 있는 마을로 긴 산등성이 밑에 자리하여 장선 또는 장산(長山)이라 하였다. 또 마을의 지형이 긴 배[船]와 같다 하여 길 장(長), 배 선(船)을 써서 장선(長船)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장선리는 조선 시대에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옹점리, 자경리, 광길리, 당촌리,...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에서 활동한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노동 운동가. 조극환(曺克煥)[1887~1966]의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 송평(松平)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영암 교동(校洞)이다. 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서 창녕 조씨(昌寧曺氏)인 아버지 조병헌과 어머니 김금옥의 5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집안은 영암의 향리 가문으로 비교적 윤택하였다. 1919년 영암 지역의...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
-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집성촌은 한 성씨가 주도하는 동족 마을을 포함해 나타나는 여러 성씨들이 모인 이성 잡거(異姓雜居) 형태의 촌락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동족 촌락, 동족 부락, 동성 촌락, 동성 마을, 동족 마을이라고도 한다. 영암 지역의 집성촌에 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조사된 『조선...
-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조행립(曺行立)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창녕 조씨는 영암 지역의 사족 성씨 중의 하나이며, 조행립을 입향조로 하고 있다. 조행립은 영암 구림 대동계 중수의 주역으로서 영암 향촌 사회에서 창녕 조씨의 위상을 높인 인물이다. 창녕은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시조 조계룡...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 사우인 서호사의 강당. 총취정(叢翠亭)은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 문중 사우 서호사(西湖祠)의 강당이다. 서호사는 구림 대동계 창설 인물 중 한 명이자 창녕 조씨 입향조인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1667년에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신흥동 마을에 태...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있는 연주 현씨 집성 마을.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한다. 현담윤은 고려 의종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고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졌다. 현담윤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연주(延州)를 본관으로 삼았다. 연주 현씨는 현담윤의 세...
-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성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박언신(朴彦信)은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속함대군(速咸大君)으로 봉해졌는데, 후에 속함(速咸)[경상남도 함양군의 옛 지명]이 함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함양으로 삼아 함양 박씨(咸陽 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함양 박씨는 조선 전기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
-
호남 3대 명촌으로 손꼽히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의 마을. 구림 마을이 호남의 3대 명촌 중 하나가 된 배경에는 구림 마을의 풍수지리와 지명 유래가 관련되어 있다. 곧, 구림 마을의 입지가 풍수지리상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며 지명의 유래에서 마을의 역사와 전통이 깊음이 드러나기에 호남 3대 명촌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는 “월출산 남쪽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