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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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愼守勤 |
이칭/별칭 | 근중(勤仲),소한당(所閒堂),신도(信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만용 |
출생 시기/일시 | 1450년 - 신수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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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84년 - 장령 |
활동 시기/일시 | 1492년 - 우부승지, 첨지중추부사, 호조 참의 |
활동 시기/일시 | 1495년 - 도승지, 선위사, 이조 판서, 우찬성, 파직 |
활동 시기/일시 | 1504년 - 돈녕부 첨정 |
활동 시기/일시 | 1505년 - 우의정, 등극사로 명나라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506년 - 좌의정 |
몰년 시기/일시 | 1506년 - 신수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39년 - 영의정에 추증됨. 익창부원군에 봉해짐 |
묘소|단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9번길[일영리 산7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거창 |
대표 관직 | 좌의정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근중(勤仲), 호는 소한당(所閒堂). 증조할아버지는 신이충(愼以衷)이고, 할아버지는 신전(愼詮)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이자 거창부원군 신승선(愼承善)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영가부부인 안동 권씨로 권람(權擥)의 여섯째 딸이고, 둘째 부인은 청원부부인 청주 한씨로 한충인(韓忠仁)[소혜왕후(昭惠王后)의 사촌]의 딸이다.
동생은 형조판서를 지낸 신수영(申守英), 개성부 유수를 지낸 신수겸(申守謙)으로 중종반정 때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여동생은 연산군의 비였다가 폐위된 신씨(愼氏)이고, 딸은 중종의 비였다가 쫓겨난 단경왕후(端敬王后)인 관계로 신수근(愼守勤)은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의 장인이 된다.
[활동 사항]
신수근은 1484년(성종 15) 음보(蔭補)로 장령이 된 후 1492년(성종 23) 우부승지, 첨지중추부사, 호조 참의를 역임하였다. 1495년(연산군 1) 도승지에 올랐고, 선위사가 되어 평안도를 둘러보았다. 그 뒤 우승지, 도승지, 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에 올랐다가 파직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돈녕부 첨정, 이듬해 우의정이 되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6년(연산군 12) 좌의정으로 있을 때 박원종(朴元宗)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신수근의 사위인 진성대군(晋城大君)[중종]을 새 왕으로 세울 뜻을 품고, 그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누이와 딸 중 어느 쪽이 중요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신수근은 “임금은 비록 포악하나 총명한 세자를 믿고 살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박원종은 거사일을 며칠 앞두고 다시 신수근을 찾아가 장기를 두면서 두 궁을 바꾸어 반정의 뜻을 표하자, 장기판을 밀어 던지며 “차라리 내 머리를 베어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박원종은 함께 거사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신윤무(辛允武), 이침(李莐) 등을 시켜 수각교(水閣橋)에서 신수근을 살해하였다. 시종(侍從)이 몸으로 막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동생인 신수겸과 신수영도 죽임을 당하였다.
신수근의 딸 신씨는 중종에 의해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뒷날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박원종 등에 의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본가로 쫓겨났다. 1515년(중종 10) 두 번째 비인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尹氏)가 세상을 떠나자 사림파인 김정(金淨), 박상(朴祥) 등이 신씨의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폐비 신씨는 1557년(명종 12) 71세로 죽어 친정의 선영에 묻혔다가 1739년(영조 15) 단경왕후로 추복(追復)되고, 묘도 온릉(溫陵)으로 격상되었다.
[묘소]
신수근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72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39년 딸 신씨가 단경왕후로 추복되면서 신수근도 왕의 장인으로서 영의정에 추증되고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신도(信度)이다. 이수를 갖춘 묘갈, 신도비, 사당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