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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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 白氏 德道里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
시대 | 조선/조선,현대/현대 |
집필자 | 서동일 |
개설 시기/일시 | 1400년대 - 수원 백씨 덕도리 집성촌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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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수원 백씨 덕도리 집성촌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14가구 |
인구(남,여) | 64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수원 백씨 집성촌.
[개설]
수원 백씨의 시조는 중국에서 건너온 백우경(白宇經)이라고 하나 자세히 알 수 없다. 중시조는 신라 경덕왕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이고, 증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 수원군(水原君)에, 9세손 백천장(白天藏)이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졌다. 파는 선정공파(禪亭公派), 인주공파(仁州公派), 오산군파(鰲山君派) 등 29개 파로 구성되어 있다. 후손은 주로 강원도 김화·평강, 경기도 양평, 경상남도 거창·고성, 경상북도 예천, 전라남도 무안, 충청남도 부여, 황해도 장연, 평안남도 순천·안주 등에 대대로 살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국 인구는 9만 8748가구에 31만 6535명이었다.
[형성 및 변천]
수원 백씨 덕도리(德道里)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인접한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집성촌과 마찬가지로 백창직의 11세손인 백인경(白仁景)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백인경의 손자인 백효삼(白效參) 대에야 집성촌이 안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백효삼의 처가가 양주의 토성(土姓)인 양주 윤씨(楊州尹氏)이었기 때문이다. 수원 백씨 덕도리 집성촌은 1400년대에 형성된 이래 백효삼, 백유양(白惟讓)[1530~1589] 등의 문과 급제자와 백사순(白思純) 등의 소과 입격자를 배출하였다. 백효삼은 세종 때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백사수(白思粹)는 세조 때 원종공신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수원 백씨는 양주시 회천동·양주동·백석읍·남면[매곡리와 두곡리]·은현면·장흥면에도 거주하고 있다.
[현황]
1930년대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조사한 양주 지역 54개 집성촌 가운데 하나였으며, 당시 20가구이었다. 1951년 21가구, 1977년 37구[광적면 전체], 1992년 약 60구[남면과 광적면]이었다가 2011년 현재 14구로 줄어들었다. 양주 지역 수원 백씨의 인구는 1985년 682명, 2000년 899명으로 증가하였다. 주요 행사는 매년 음력 10월에 지내는 시제(時祭)이다. 근방에 백인걸 선생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