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경모사(景慕祠)에 걸려 있는 어필(御筆) 현판. 고금동충 현액(古今同忠懸額)은 영조가 신도공(信度公) 신수근(愼守勤)[1450~1506]의 충절을 기려 1775년(영조 51) 8월 24일 후손에게 내린 어필 현판이다.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의 장인이다. 박원종(朴元宗)[1467~1510]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훗날의 중종]을 추대하려...
-
경기도 양주시 불곡산 자락 남향에 위치하는 유양동(維楊洞) 일대가 정치 행정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조선 중종 때부터이다. 그 이전 양주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은 지금의 천보산(天寶山) 자락을 배경으로 한 고읍동 일대였다. 이는 조선 중기 양주의 중심지가 바뀌는 사태가 벌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선택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연산군 시대가 있었다. 연산군은 왕실 공식 수렵장으로서 강무장(...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있는 논. 대왕전(大王田)은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宣祖)가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의 셋째 딸이며 자신에게는 고모가 되는 정순옹주[여성군 송인(宋寅)의 부인]의 장례 때 장지가 있는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와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대왕전의 동쪽으로는 소래산 자락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굿배미라는 마을의 야트막한 언덕이...
-
경기도 양주시 회천2동에 속하는 법정동. 덕계동(德溪洞)이라는 땅 이름은 도덕리(道德里)에서 ‘덕’자와 돈계리(遯溪里)에서 ‘계’자를 따서 만들었다. 도덕리는 도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돈계리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박율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덕계동의 옛 명칭은 덕계리였다. 덕계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자연 마을. 도락산(道樂山)[440m]에서 발원하여 이곳 비암산(鼻巖山) 자락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시내가 1㎞ 지점에서 남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급하게 돌린다. 따라서 밖에서 시내를 볼 때 상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숨어 있는 시내’라 하여 둔계(遯溪)라 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됭계로 불리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전라북도 부안군 남하면에...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입암리·구암리에 있는 산. 망당산(望唐山)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네 가지 설이 있으나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첫째, 원래는 명당산(明堂山)이었으나 조선 중종 때 임금의 묘지를 잡으러 지관들이 이곳에 들르자 남양 홍씨들이 이곳은 명당산이 아니라 망할 망(亡)자를 쓴 망당산(亡堂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산을 망당산으로 불렀...
-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형상화한 예술 및 그 작품. 양주는 산수가 아름답고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많은 문인들이 풍광을 시로 노래하였다. 또한 양주 출신으로 많은 문인들이 활동하였는데, 김병연(金炳淵)[일명 김삿갓]이 대표적이다.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을 통해 양주 관련 이야기를 소설 속에 담기도 하였다. 특히 오늘날 양주시의 문학계에서는 김삿...
-
경기도 양주시 송암사에 소장되어 있는 1495년 간행한 『반야심경 소현정기』 국역본. 『반야심경 소현정기』(언해)는 당나라 법장(法藏)[643~712]이 찬술한 『반야심경 약소』에 송나라 중희(仲希)가 찬술한 『현정기(顯正記)』를 저본으로 효령 대군(孝寧大君)과 한계희(韓繼禧) 등이 세조의 명으로 국역(國譯)하여 1464년(세조 10)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판각한 목판에서 149...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수령 약 5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절터. 선암리 절터는 1977년에 발간된 『문화유적총람』에 “송인(宋寅)의 묘가 있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절을 지어 여승(女僧)만 있다가 400여 해 전에 폐사(廢寺)되었다”고 보고되면서 알려졌다. 여산 송씨(礪山宋氏) 묘역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조선 시대 중·후기에 경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산 송씨 문중의 증언에 의하면...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우옹(愚翁), 호는 인재(仁齋). 증조할아버지는 성부(成溥)이고, 할아버지는 성효연(成孝淵)이며, 아버지는 돈녕부 판관 성찬(成瓚)이다. 어머니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딸이다. 부인은 정경부인 풍양 조씨로 조익상(趙益祥)의 딸이다. 형은 성희증(成希曾)이다. 성희안(成希顔)[1462~1...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서예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명중(明仲), 호는 이암(頤庵). 할아버지는 영의정 송질(宋軼)이고 아버지는 송지한(宋之翰)이다. 송인(宋寅)[1516~1584]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라 10세 때 중종의 3녀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혼인하여 여성위(礪城尉)에 봉해졌다. 의빈부, 충훈부, 사옹원, 상의원, 도총관...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우번(于蕃). 고조할아버지는 내자소윤(內資少尹)을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송신생(宋辰生), 증조할아버지는 경원 부사(慶源府使) 역임 후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된 송만달(宋萬達), 할아버지는 훈련 도정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송공손(宋恭孫)이며, 아버지는 영의정 송질(宋軼)이다. 어머니는 남원 양씨...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근중(勤仲), 호는 소한당(所閒堂). 증조할아버지는 신이충(愼以衷)이고, 할아버지는 신전(愼詮)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이자 거창부원군 신승선(愼承善)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영가부부인 안동 권씨로 권람(權擥)의 여섯째 딸이고, 둘째 부인은 청원부부...
-
조선 시대 양주목[현 경기도 양주시]을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조선 초기 양주는 양주군, 양주도호부를 거쳐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수도 한성부를 보좌하는 기보(畿輔) 지역으로서의 특성을 감안하여 중요 지방 행정 구역인 목(牧)이 된 것이다. 양주목은 연산군 때 잠시 폐지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부활하여 1895년(고종 32) 전국의 지방 행정 구역을 정비할...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의 능묘. 양주 온릉(楊州溫陵)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자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1487~1557]의 능이다. 단경왕후 신씨의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아버지는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신수근(愼守勤)이다. 1499년(연산군 5) 중종이 진성대군(晉城大君)으로 있을 때 혼인하여 부부인(府夫...
-
경기도 양주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으로서, 고려 시대에는 개성과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방에 속함으로써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부침 속에는 역사에 오롯이 이름 한 줄로 남았거나 혹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이 녹아 있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과...
-
경기도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시. 동쪽으로 포천군, 서쪽으로 파주시 및 고양시,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및 의정부시, 북쪽으로 동두천시 및 연천군과 각각 접해 있으며, 동서의 거리는 20㎞, 남북의 거리는 30㎞이다. 대체로 산지가 많이 발달해 있으며, 평지는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어 영산이라고 일컬어지는 감악산(紺嶽山)[675m], 양주시의 주산...
-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나 찾아볼 수 있다. 왕건이 전국의 군·현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가 왕실 및 일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주의 토착 성씨는 조선 전기 사회 상황을 전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영서역(迎曙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개경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양주 치소에서 서쪽 60리[24㎞]...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에 있는 수령 약 5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악대산에 있는 미륵불상.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악대산 북쪽 산자락에 있는 미륵불상으로, 원터골 또는 원터마을에 있다 하여 원터마을 미륵불이라고 불리고 있다. 1583년(선조 16) 선조가 중종의 셋째 딸이자 자신의 고모인 정순옹주(貞順翁主)[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의 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원터마을에 잠시 거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
-
경기도 양주시에서 공자(孔子)의 정치 이념, 학문, 의례에 관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던 사상. 유교(儒敎)는 공자가 제창한 정치 이념, 도덕 수양의 방법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자삼(子三), 호는 낙계(駱溪). 고조할아버지는 중종의 아들인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 할아버지는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 아버지는 종실(宗室) 봉래수(蓬萊守) 이형윤(李炯胤)이다. 어머니는 참판에 추증된 최행(崔行)의 딸이다. 부인은 공조...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일영리(日迎里)라는 땅 이름은 일영봉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영리 동쪽에 있는 일영봉은 일영리 사람들이 일출 광경을 볼 수 있는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일영봉에서 해 뜨는 광경을 제일 먼저 보면 장가를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일영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와 일영리에 걸쳐 있는 산. 일영봉(日迎峰)은 일영리의 동쪽에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봉우리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며 여러 유래 중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중종(中宗)의 비 신씨(愼氏)가 폐출된 뒤에 친정이 있는 일영리의 절골에 들어가 살면서 절을 짓고...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와 일영리에 걸쳐 있는 산. 일영봉(日迎峰)은 일영리의 동쪽에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봉우리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며 여러 유래 중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중종(中宗)의 비 신씨(愼氏)가 폐출된 뒤에 친정이 있는 일영리의 절골에 들어가 살면서 절을 짓고...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경(士經), 호는 정곡(靜谷). 고조할아버지는 임중선(任中善), 증조할아버지는 임효돈(任孝敦), 할아버지는 임한(任漢), 아버지는 공조 판서 임유겸(任由謙)이다. 어머니는 이신(李愼)의 딸이다. 부인은 신제담(辛悌聃)의 딸이다. 형은 대사간을 역임한 임추(任樞)이다. 아들은 임중신(任重臣)이고, 손자는 임...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숙양(叔讓). 증조할아버지는 임중선(任中善)이고, 할아버지는 임효돈(任孝敦), 아버지는 임한(任漢)이다. 어머니는 홍심(洪深)의 딸이다. 부인은 청단 찰방(靑丹察訪) 이신(李愼)의 딸이다. 아들은 임추(任樞), 임권(任權), 임병(任柄), 임건(任楗), 임간(任幹)이다. 손자는 임호신(任虎臣), 임보신(任輔...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
-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장흥(長興)이라는 땅 이름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장흥면(長興面)은 백석읍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지역이다. ‘장흥’이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풀면 ‘오래도록 길이 흥한다’가 된다. 땅 이름이 같은 전라남도 장흥군의 경우 고려 인종(仁宗) 때에 인종의 비인...
-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에 있는 조선 전기 도학자 정렴(鄭𥖝)의 묘. 정렴[1506~1549]의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이다. 아버지는 정순붕(鄭順朋)이다. 정렴은 천문·지리·의서·복서(卜筮) 등에 두루 능하였고, 매월당 김시습, 토정 이지함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奇人)으로 꼽힌다. 또한 약재에도 조예가 깊어 1544년(중종...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시대 양주(楊州)는 원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1392년 새롭게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후기까지 양주로 불리던 한강 북부의 한양부가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수도로 선정하였으며, 기존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見州),...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중(明仲), 호는 석벽(石壁). 고조할아버지는 사재감 직장 홍지(洪智)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 홍경손(洪敬孫), 할아버지는 봉상시 부정(奉常寺副正)을 지낸 홍윤덕(洪閏德)이며, 아버지는 예문관 대교 홍계정(洪係貞)이다. 어머니는 언양 김씨(彦陽金氏)로 현감 김기수(金期壽)의 딸이다....
-
장흥관광지는 서울의 북서쪽 약 17㎞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의정부시, 서쪽으로 고양시, 파주시와 인접하고 있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연결되면서 서울과 더욱 가까워졌다. 잠깐 마실 나왔다가 차 한 잔의 대화를 나누고 귀가해도 충분해질 만큼이나 가깝다. 여유가 있다면 북한산 국립공원의 산과 계곡, 아름다운 예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1일 휴양지로 찾을 수 있다. 양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