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914
한자 泮谷書院
영어공식명칭 Bangokseowon Confucian Academy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반곡서원길 52-29[수선리 52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68년연표보기 - 반곡사 창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반곡사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7년 - 반곡서원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7년연표보기 - 반곡사에서 반곡서원으로 개칭
현 소재지 반곡서원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반곡서원길 52-29[수선리 523]지도보기
원소재지 반곡사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반곡서원길 52-29[수선리 523]
성격 사당
양식 맞배지붕[사당]|팔작지붕[강당]
정면 칸수 3칸[사당]]|4칸[강당]
측면 칸수 2칸[사당]]|2칸[강당]
관리자 담양국씨 문중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

[개설]

반곡사(泮谷祠)는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사는 담양국씨(潭陽鞠氏)들이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담양국씨의 선조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현종 때 창건되었다가 흥선대원군 때 훼철된 뒤에 1967년에 와서 복원되면서 서원으로 이름을 고쳤다. 처음에는 국함(鞠涵)국침(鞠沈)만 향사하였으나, 훗날 국유(鞠襦)국명(鞠溟)을 추향(追享)하였다.

[위치]

반곡서원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용진교차로에서 북동쪽으로 달려가 앞대산터널과 양화교차로, 남봉교차로를 지나면 고산교가 나온다. 고산교를 지나 고산교차로에서 화산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에 눈기러기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4.93㎞ 이동한 뒤에 산정, 부수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에 반곡서원길을 따라 이동하면 반곡서원이 나온다. 반곡서원길 도로가의 산정교회에서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변천]

반곡서원의 전신인 반곡사가 창건된 시기는 1668년(현종 9)으로, 1613년(광해 5)에 국함(鞠涵)이 후진 교육을 위해 지은 환성재(喚醒齋) 자리에 세워졌다. 1610년(광해군 2)에 송영구(宋英耈)가 성절사(聖節使)로 명(明)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던 공부자(孔夫子)의 영정(影幀)이 보관된 정궁(幀宮)도 있었다. 당시 담양국씨의 문인들은 이런 연고를 들어 공의를 거쳐 이곳에 반곡사를 창건하고 국함(鞠涵)국침(鞠沈)을 향사(享祠)하였다. 그 뒤 1868년(고종 5)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우가 훼철(毁撤)되고 정궁만 남게 되자, 1892년(고종 29)에 고산향교 경내로 정궁을 이건하였다. 1904년(고종 41)에 지역의 유생들은 설단(設壇)하여 향사를 계속하다가 1937년에 국유(鞠襦)를 제향(祭享)하고, 1960년에는 국명(鞠溟)을 추향(追享)하였다. 1967년에는 정부의 보조금 및 유림과 본손(本孫)의 협찬금을 더하여 정궁의 유허(遺墟)에 사우를 중건(重建)하면서 서원으로 그 이름을 고쳤다.

[형태]

반곡서원의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은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황]

반곡서원 입구에는 반곡사 중건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뒤로 반곡서원으로 들어가는 충효문이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외에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고, 교직사(校直舍) 1동이 있다. 현재 국유(鞠襦), 국함(鞠涵), 국침(鞠沈), 국명(鞠溟) 등의 위패를 모시고,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시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원과 사우의 건립과 훼철, 중건의 역사는 유교사상의 영향 아래 선조와 선현을 숭배하였던 조선조 향촌사회의 성격은 물론, 유교의 폐단이 두드러지게 표출되었던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반곡서원의 변천을 통해 이곳 담양국씨 문중을 포함하여 전라북도 완주군의 지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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