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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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瑀 |
영어음역 | Choe U |
이칭/별칭 | 광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상규 |
[정의]
고려 후기 울릉도에 사람을 보내어 시찰하게 한 무신.
[가계]
본관은 우봉(牛峰). 시호는 광렬(匡烈). 아버지는 최충헌(崔忠獻)이다.
[활동사항]
1219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아버지 최충헌의 뒤를 이어 집권하여 민심 수습에 나섰다. 1222년 참지정사(參知政事), 이병부상서(吏兵部尙書),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가 되어 명실공히 집정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북변의 몽골 대군이 침공한다는 소식에 강화천도를 단행하여 성을 쌓아 대비하였으며, 이 공으로 1234년 진양후에 책봉되었다.
동해에 울릉도라는 섬이 있는데 땅이 비옥하고 진귀한 나무와 해산물이 많이 산출되나 수로가 원격하여 왕래가 끊어진지 오래되었다고 전해지자, 최우가 사람을 보내서 시찰하게 하였다. 과연 집터와 주춧돌이 완연히 있었으므로 동부지방의 군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나, 이후 풍랑과 파도가 험악해서 익사자가 많다는 이유로 이민을 중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