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
-
조선 말기 동남제도개척사겸관포경사를 지낸 문신. 김옥균은 1883년(고종 20) 4월 동남제도개척사겸관포경사로 울릉도에 이주민들을 정착시켰는데, 당시 이주민의 대다수가 남해안과 호남의 어민들이었다. 그들은 울릉도 앞마당인 우산도[현 독도]에 고기잡이를 나가면서 우산도를 ‘돌섬’이라는 뜻의 호남 방언 ‘독섬’이라 호칭하였는데 오늘날 독도를 가리키는 말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본관은...
-
조선 말기 일본 선박 만리환이 울릉도의 규목(槻木)[느티나무]을 반출한 사건. 1883년 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島開拓使)로서 울릉도 개척의 선봉장이었던 김옥균은 1883년 6월 국왕의 위임장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국채를 모집하려 하였다. 그러나 묄렌도르프와 민비 수구파의 사주를 받은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郎]가 김옥균이 휴대한 고종의 국채위임장을 위조한 것이라고 본국...
-
조선 후기 천수환 사건 시 독판교섭통상공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경(遠卿), 호는 천식(泉食). 민달용(閔達鏞)의 아들로 민태용(閔泰鏞)에게 입양되었다. 1871년(고종 8)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81년(고종 18) 이조판서로 승진하였으며 곧이어 군무변정기연사당상(軍務邊情譏沿司堂上)과 한성부판윤에 올랐으며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서장관(書狀官...
-
조선 말기 내부대신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와 현현거사(玄玄居士), 초명은 무량(無量). 판서 박원양(朴元陽)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고 큰 형은 박영교(朴泳敎), 작은 형은 박영호(朴泳好)이다. 1872년(고종 9) 철종의 부마가 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별하였다. 금릉위(錦陵尉) 정1품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
-
경상북도 울릉군 관할의 울릉도와 독도를 주제로 한 산문 문학 작품. 울릉도 소재 소설은 독도와 관련된 것과 울릉도 자연 환경과 관련된 것으로 구분된다. 특히 독도와 관련된 소설은 안용복과 홍순칠, 그리고 독도 분쟁에 대한 것으로 최근까지 다양한 형태의 소설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김탁환의 소설 『독도평전』은 전통 시대 사서에 나오는 울릉도와 독도 관련 기사와 이사부·안용복·...
-
1900년(고종 37) 6월 우용정이 저술한 울릉도 조사 보고서. 우용정(禹用鼎)이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된 후, 1900년 5월 25일 인천항을 향해 출발하여, 5월 27일에 일본 경부 1명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 부산항에 도착해서 5월 30일 감리서주사 김면수와 부산해관 세무사 라포트(E. Raporte, 羅保得) 및 봉판 김성원(金聲遠)과 일본 부영사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
-
조선 말기 울릉도 목재를 일본 사람들에게 몰래 판 혐의로 압송된 관리. 1884년(고종 21) 울릉도도장(鬱陵島島長) 전석규가 울릉도 목재를 일본 사람들에게 몰래 팔아 돈과 쌀로 교환한 혐의로 형조에 압송되었다. 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道開拓使) 김옥균(金玉均)의 장계(狀啓)에 의하면, “울릉도의 목재를 일본 사람들이 몰래 실어간다고 하여 목재를 실어가는 배들을 잡아 사유를 따졌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