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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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朴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용 |
세거지 | 밀양 박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한내리 |팔덕면 서흥리|적성면 석산리|구림면 안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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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밀양 박씨 집성촌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한내리 |팔덕면 서흥리|구림면 안정리 |
성씨시조 | 박언침(朴彦忱) |
입향시조 | 박수검(朴守儉) |
[정의]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수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 경명왕(景明王)[917~924]의 맏아들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고려 후기 이후 크고 작은 분파(分派)를 이루고 번성하여 현재 김씨·이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순창 지역 밀양 박씨는 규정공파(糾正公派)[밀성 대군 16세손 박현(朴鉉)이 파시조]가 대부분이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밀양 박씨는 전국에 94만 6307가구, 303만 14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연원]
박언침이 밀성 대군(密城大君)[밀성은 밀양의 옛 이름]에 봉하여지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았다. 『박씨 선원 세보(朴氏璿原世譜)』에 따르면, 밀양 박씨에서 다시 영암(靈巖), 태안(泰安), 진원(珍原), 운성(雲城), 구산(龜山), 나주(羅州), 창원(昌原), 문의(文義), 여주(驪州) 등의 본적으로 분적되었다.
밀양 박씨는 모든 박씨 가운데 제일 종가로 박씨 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계보를 가진다. 8세손 박언부(朴彦孚)를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를 비롯하여 도평의사사공파(都評議司使公派), 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좌윤공파(左尹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밀성군파(密城郡派), 동정공파(同正公派), 밀직부원군파(密直府院君派), 정국공파(靖國公派), 규정공파(糾正公派) 등 12개 파로 나누어져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여러 파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1989년 현재 순창 지역 관내에 5가구 이상 사는 밀양 박씨 집성촌은 네 곳이다. 풍산면 한내리 한사 마을의 밀양 박씨는 문도공(文度公) 박훈(朴薰)의 후예인 박수검(朴守儉)이 충청북도 청주에서 들어온 이후 그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1998년 발행한 『순창 향지』에 따르면 한사 마을 밀양 박씨 입향조는 16세 박수검이 아니라 15세 박세운(朴世雲)으로 되어 있다. 박세운이 입향한 이후 16세 박수검, 17세 박치후(朴致垕)를 거쳐 26세 박광용(朴鑛甬)으로 이어졌다고 되어 있다.
적성면 석산리 입석 마을은 밀양 박봉형(朴鳳亨)과 세종(世宗)의 아들 수춘군(壽春君)의 8세손이 1727년(영조 2) 각각 이곳에 정착하여 표석을 세우고 마을 이름을 입석(立石)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팔덕면 서흥리 백암 마을은 규정공파 19세손 박계환(朴系煥), 이목 마을은 박재성(朴載成)이 입향조다. 구림면 안정리 산내 마을 밀양 박씨는 규정공파 25세 박성규(朴成圭)가 입향조로 알려져 있으나 입향 연대는 미상이다.
[현황]
2000년 11월 1일 현재 순창 지역 밀양 박씨는 793가구, 2,12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에서 5가구 이상 사는 밀양 박씨 집성촌은 네 곳으로 조사되었는데, 풍산면 한내리 한사 마을에 27가구, 팔덕면 서흥리에 7가구, 적성면 석산리 입석 마을에 6가구, 구림면 안정리 산내 마을에 20가구가 세거하고 있다. 당시 적성면 석산리 입석 마을에는 27가구가 살았던 것으로 조사됐으나 2013년 현재는 모두 이거하고 1가구만 남아 있다. 규정공 박현의 후손 박덕인의 둘째 아들 박상유(朴相囿)의 효자비가 금과면 이목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