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 상외령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효상의 영정을 모신 건물. 계림군 정효상(鄭孝常)[1432~1481]의 자는 가구(可久), 시호는 제안공(薺安公)이다. 1454년(단종 2) 증광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집현전의 부수찬(副修撰)과 부교리(副校理) 등을 역임하고, 1466년(세조 12) 문과 중시(重試)에 급제하였다. 1468년(예...
-
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순창의 화산 서원에 배향된 문관이자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峰)·태헌(苔軒). 증조할아버지는 고자검(高自儉)이며, 할아버지는 고운(高雲)이고,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고맹영(高孟英)이다. 어머니는 남평 서씨 서걸(徐傑)의 딸이고, 처는 울산 김씨 김백균(金百鈞)의 딸이다. 아들은 고인후(高因厚)이다....
-
전라북도 순창 출신의 조선 후기 문관 양시진의 문집. 양시진(楊時晉)[1573~1615]의 자는 자승(子昇), 호는 구음(龜陰)이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아버지는 병조 정랑을 지낸 양사형(楊士衡)이며, 어머니는 최영(崔嶺)의 딸이다. 처는 별제(別提) 김대립(金大立)의 딸 강진 김씨로 1653년 조정에서 내린 구음공 처 숙부인 도강 김씨 정려(龜陰公妻淑夫...
-
조선 전기 단종 때 순창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킨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요일(堯日), 호는 만은(晩隱). 4대조는 길창 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이다. 권효(權曉)는 세종 때 벼슬이 사정(司正)에 이르렀고, 1452년(단종 1) 수양 대군이 고명 사은사(誥命謝恩使)로 명나라에 갈 때 수행하였다. 단종이 손위(遜位)하고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순창에...
-
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이자 의병장. 본관 언양(彦陽).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할아버지는 주부 김윤손(金潤孫)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며, 어머니는 양성 이씨(陽城李氏) 부위(副尉) 이감(李瑊)의 딸이다. 아들은 김상건(金象乾)이다. 김천일(金千鎰)[1537~1593]은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 부모를...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남산 서원(南山書院)에서 향사하던 권효(權曉)는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요일(堯日), 호는 만은(晩隱)으로 안동 권씨 17세손이며 길창 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1281~1352]의 4세손이다. 세종 때 벼슬이 사정(司正)에 이르렀고 1452년(단종 1) 수양 대군이 고명 사은사(誥命謝恩使)로...
-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효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안동 권씨(安東權氏)는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10세를 파조로 하여 14개로 분파되었다. 순창 지역 안동 권씨 세거지로 대표적인 마을이 순창읍 가남리 가잠 마을이다. 2000년 인구 총 조사 때 전국적으로 62만 9291명이 살고 있...
-
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공섭(公燮), 호는 송천(松川). 증조할아버지는 양담(梁湛), 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 아버지는 교리 양팽손(梁彭孫)이다. 어머니는 금산 김씨(錦山金氏)로 김섬(金銛)의 딸이다. 형은 동래 부사를 지낸 양응태(梁應台)이고, 의병장을 지낸 양산숙(梁山璹)이 셋째 아들이다. 양응정(梁應鼎)[1519~1581]...
-
고려 후기 문관으로 남원 양씨 순창 입향조 양사보의 조부.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할아버지는 양국재(楊國財), 할아버지는 양윤보(楊允保), 아버지는 경덕재생(經德齋生)인 양서령(楊瑞齡)이다. 처는 문신 탁광무(卓光茂)의 딸 광산 탁씨이며, 아들은 양수생(楊首生), 손자는 양사보(楊思輔)이다. 양이시의 며느리이자 양수생의 부인인 숙인 이씨(淑人李氏)는 1379년(우왕 5...
-
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유경(有慶), 호는 추계(楸溪). 할아버지는 윤희(尹希)이고, 아버지는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를 지낸 윤처관(尹處寬)이다. 어머니는 감찰 정존(鄭存)의 딸이다. 처는 영의정을 지낸 박원형(朴元亨)의 딸 죽산 박씨(竹山朴氏)이다. 슬하에 윤계형(尹繼衡)·윤승형(尹承衡)·윤복형(尹復衡)·윤세형(尹世衡)·윤함형(尹函衡)·윤지...
-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국가가 외세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민병. 박은식(朴殷植)은 『한국 통사(韓國痛史)』에서 의병이란 ‘민군으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이라 정의 내렸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부대이기에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언제부터 의병이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나라가 위...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동 마을은 사자봉 연맥(連脈)이 동남방으로 뻗어 나와 산진수회(山盡水回) 지점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동반월(東半月) 혈(穴)이라 이월(理月)이라 하였는데, 오랜 세월 언어의 변화 과정에서 이울이라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동마동과 합병하며 이동리(理銅里)로 개칭되었다. 동마골 마을은 옛날에 쇠말봉에 구리로...
-
고려 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 본관은 광양(光陽). 자는 석지(釋之).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에 증직된 이인영(李仁英)이다. 이무방(李茂方)[1319~1398]은 1319년(충숙왕 6) 출생하였고, 충목왕 때 급제하여 전교 교감(典校校勘)에 오르고 공민왕이 즉위한 1351년에 외직으로 나가 순창을 다스렸다. 이때 누가 그 고을의 토산물을 얻으려 하였다. 이무방은...
-
조선 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이자 시인.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이행(李荇), 할아버지는 이원정(李元禎), 아버지는 진사 이형(李泂)이다.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 대호군(大護軍) 이양(李崵)의 딸이다. 재종숙부인 사헌부 감찰 이필(李泌)의 양자가 되었다.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종숙(從叔)이다. 이안눌(李安...
-
1592년~1598년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일본군은 각지의 의병과 명나라 지원군, 또 이순신(李舜臣)에 의한 해로 통제 등으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듬해 4월부터 조선과 화의가 오가게 되다가 6월 일본군은 철수를 하였다. 그러나 15...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어암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아버지는 돈녕부 판관(敦寧府判官) 정유침(鄭惟沈)이다. 정철(鄭澈)[1536~1593]은 1536년(중종 31) 서울 장의동(藏義洞)[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하였다. 인종(仁宗)의 귀인(貴人)[후궁]인 큰...
-
전라북도 순창군에 부조묘(不祧廟)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가구(可久). 증조할아버지는 정인검(鄭仁儉), 할아버지는 정염(鄭濂)이고,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정효상(鄭孝常)[1432~1481]은 1432년(세종 12)에 출생하여 1451년(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4년(단종 2)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
-
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한 공신. 본관 창녕(昌寧). 호는 퇴사헌(退思軒), 봉호(封號)는 옥천군(玉川君).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문하시중을 지내고 창성 부원군에 봉해진 조민수이다. 조흡(曺恰)[?~1429]은 1400년(정종 2) 태조의 넷째 아들인 이방간(李芳幹)이 박포(朴苞)와 결탁하여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 박포의 난이라고도 함]에서 공로를 세워 공신...
-
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신 양이시가 지은 한시. 양이시(楊以時)[?~1377]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고 국자감 학유(國子監學諭), 고부 군수, 집현전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권주(權鑄)[?~1394]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恭愍王)을 호종한 공으로 1363년(공민왕 12)에 신축 호종 이등...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던 사찰. 취암사(鷲巖寺)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무량산[586.4m] 아래에 있었다. 본래 무량산의 이름은 구악산(龜岳山), 즉 거북산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거북과 관련된 금구예미형(金龜曳尾形)으로, 영험한 거북이가 진흙으로 꼬리를 끌면서 들어가는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져 온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구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