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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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城玉川- |
영어의미역 | Noseong Okcheon Height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
집필자 | 박종익 |
성격 | 전설|홍수담|지혜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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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노성현감|옥천관리|옥천말랭이 주민|옥천 원 |
관련지명 |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옥천말랭이|옥천뫼 |
모티프 유형 | 부산(浮山)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옥천말랭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내용]
노성면 노성중학교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에 ‘옥천말랭이’라고 하는 야산이 있다. 옛날 어느 해 옥천 지방에 가뭄이 극심하여 들의 곡식들이 타들어갔다. 논바닥은 거북 등과 같이 갈라지고 농부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옥천 사람들은 웅덩이를 파고 논에 물을 대기도 했지만 이젠 웅덩이의 물조차 마르기 시작하여 더욱 애만 탔다.
그러던 팔월 초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농부들은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좀처럼 그치질 않고, 점차 폭우가 되더니 점점 불어난 물은 홍수로 변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물난리를 피하여 높은 산으로 올라갔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산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마을 사람들은 ‘이젠 다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옥천 땅의 산이 둥실 둥실 떠내려가서 노성에 와서 멎었고, 그곳에 둥근 야산을 이루어 놓았다. 떠내려 온 사람들은 이 야산에서 생활하면서 자신들을 옥천 사람이라고 말하고, 세금도 옥천관헌에게 받쳤다. 옥천 관리들이 이 땅을 관리하며 세금을 거두어 갔다.
어느 해, 노성 땅에 신억이라는 젊은 현감이 부임해 왔다. 그는 선정을 베풀어서 백성들로부터 칭찬이 대단한 원님이었다. 신억은 고을에서 부자가 많이 모여 사는 옥천말랭이의 세금을 옥천에서 받아가는 데에 불만이 많았다. 마침 옥천 관리들이 세금을 걷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는 옥천 관리를 대령케 하고, “옥천 사람으로 노성 땅을 밟았으니 통행세를 내라.”고 하며 거두어들인 세금을 통행세로 모두 빼앗았다.
신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옥천 관리들을 데리고 옥천말랭이로 갔다. 신억은, “너희들이 관리하는 땅을 짚으로 덮으라.”고 하였다. 옥천 땅에 짚이 덮이자 불을 지르게 하였다. 이어서 신억은 옥천 관리에게, “옥천 땅이 전부 불에 탔으니 너희들은 그 재를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관리들은 서슬 퍼런 노성현감의 질책을 듣고 아무 대꾸도 못한 채 돌아갔다.
옥천으로 돌아간 관리들은 그간의 사정을 고하자 옥천 원은, “참으로 훌륭한 원님이시다. 이제 노성에도 제대로 된 사람이 들어섰구나.”라고 칭찬하였다. 지금도 사람들은 옥천 사람들이 살며 경작하던 일대 땅을 옥천말랭이 또는 옥천뫼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노성 옥천말랭이」의 주요 모티프는 홍수에 의한 부산(浮山)으로, 큰 홍수가 져서 옥천 땅이 노성으로 밀려 왔다는 홍수담이며, 또한 옥천말랭이에 사는 사람들이 옥천 관아에 세금을 내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았다는 노성현감의 지혜담이기도 하다.
홍수가 나서 산이 떠내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부산 모티프는 부여의 백마강가에 있는 부산의 예와 같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노성 옥천말랭이」처럼 애초의 소유자가 그 경작권을 갖는 예도 보인다. 세금이 주된 이야기 소재인 이 전설에서는 노성현감의 재치로 조세권을 확보한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