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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 일본 제국주의는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하며 조선 식민지 지배를 노골화했고, 결국 조선은 1910년 주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 양반 사대부 사회의 중심축이었던 남원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여 일제에 항거하고 국권 회복과 민족 자주성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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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재는 농사일에 종사하는 독실한 천도교인이었다. 1919년 3월 2일 천도교 남원교구장이었던 유태홍으로부터 독립 선언서를 넘겨받아 남원 요소요소에 게시하였다. 유석, 최병현과 함께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게시판과 사람이 많이 읽을 수 있는 곳에 부착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해 4월 8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보안법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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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 운동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에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이 헌병 검문소에 도착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제는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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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 운동가. 박권영은 형 박기영과 함께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지휘, 지도하였다. 산서면의 독립 만세 운동에는 박정주, 이길선, 정봉수, 정호현, 이상일 등이 가담, 주동을 하였는데, 박권영은 이들에게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보내주면서 거사를 지도하였다. 3월 23일 남원 천도교가 주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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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장터에서 유생 박정주, 안성섭 등의 주동으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해 8월경 서울에서 이충모, 김형준, 양재명 등과 함께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박기영은 장병준을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하여 국내의 제반 정세를 보고하게 하고, 상호 연락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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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고종 28) 통사랑(通仕郞)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벼슬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박석규는 일단의 동지들을 이끌고 일본군 헌병대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았다. 빼앗은 무기로 무장하고 그 길로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으나 불행히 체포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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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정석은 박기영과 함께 대한국민회 전주지부를 부활시켜 비밀리에 지주들을 상대로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전경도를 통하여 전달하기로 결의를 모았다. 그들은 먼저 모금 대상 지주들에게 모금의 취지를 안내하는 서한을 보낸 뒤, 지주들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로 하였다. 그 내용은 먼저 친일 행동의 부당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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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승문원교리를 지낸 박양(朴良)의 13대손으로, 진사 박홍규(朴洪奎)의 아들이다. 1919년 3월 19일 산서면 동화리 장날을 이용하여, 안성섭(安成燮)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긴급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해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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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방극용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형갑수 등과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일본 군경의 무차별 사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殉國)하였다. 1968년에 대통령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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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하였는데, 일 군경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방극용, 방명숙, 방진형 등과 함께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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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고승. 본관은 수원(水原). 법명은 진종(震鍾), 속명은 상규(相奎), 법호는 용성(龍城). 아버지는 백남현(白南賢)이며 어머니는 손씨이다. 백용성은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며 심신을 수련하였다.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한용운과 함께 불교 대표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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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일 아침 유태홍이 남원군 덕과면 사율리의 천도교인 이기원으로부터 독립선언서 40여 장을 수령하여 자신의 아들인 유석과 김성재, 최병현 등 5명의 천도교인을 불러 선언서의 내용을 알려주고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게시판 등 공공기관의 게시판에 붙이도록 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유태홍은 징역 1년, 유석과 김성재는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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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스무 살을 전후하여 동학에 입교하여 옥고를 치른 후 천도교 남원교구장이 되었다. 1919년 당시 나이 53살 때 아들 유석 등과 함께 공공기관의 게시판에 독립선언서를 붙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언도받았다. 광복 직후 남원군민들은 그를 남원군 건국위원장으로 추대하였는데,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으로 1개월 만에 사임하였다.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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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도교인이던 이기원은 임실군 오수리에 있는 천도교당의 전도사인 이기동(李起東)과 친분이 두터웠다. 1919년 3월 2일에 이기동이 가져다준 독립선언서 40여 장을 같은 마을의 황동주와 황석현에게 배포하였고, 남원군 금리에 있는 천도교 교구실로 유태홍을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독립선언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조치를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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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9년 18살의 이두석은 우리나라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문맹 퇴치와 농촌 경제 건설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형 이두현(李斗鉉)과 함께 수양전진계(修養前進稧)를 조직하였다. 40여 계원들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경지를 확장하고 청년들의 체력을 단련시키는 한편 야학을 열어 문맹 퇴치와 독립 사상 고취에 전력을 기울였다.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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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석기는 3·1운동 직전까지 덕과면장을 지냈고, 1919년 3월 1일 당시 오수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조카 이광수를 극비리에 서울로 파견하여 오세창, 송팔용 등의 지도자를 만나 지시를 받고 독립선언문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3월 31일자로 면장직을 사임하고 그의 투쟁 의지를 남원군 19개 읍·면장을 비롯 인근 타군 면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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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태현이 31살 되던 해,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모자라는 군수 물자의 조달을 위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핍박하였다. 또한 그 무렵 일제는 내선 일체라는 구실을 붙여 소위 창씨 개명이라는 것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이태현은 창씨 개명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평소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일경이 몇 차례 주재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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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45년 초 운봉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박주영이 남원경찰서 고등계 형사에 의하여 체포 구금됨으로써 5·13 투옥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박주영이 구금된 것을 안 친구들은 서로 연락하여 소위 일인들이 말하는 불온 서적, 일기장, 편지 등을 소각하거나 은닉해 버렸다. 그러나 장홍식, 노상인, 정영필, 정인호 등이 구속되었고, 며칠 뒤에 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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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45년 초 운봉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박주영이 남원경찰서 고등계 형사에 의하여 체포, 구금된 것이 5·13 투옥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때 장홍식, 노상인, 정영필, 정인호 등이 구속되었고, 며칠 뒤에 서태규, 이정옥, 노형봉, 이현필, 노종선 등이 연행, 구금되었다. 이것이 바로 5·13 투옥 사건이다. 당시 한국인 형사 양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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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동선은 1919년 4월 3일 이석기와 함께 덕과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날은 식수 기념일로서 일제 치하에서 매년 행해지던 연례 행사일이었다. 조동선은 면 직원으로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면장 이석기 및 면내 유지들과 비밀 회의를 통하여 이 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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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병현은 남원 지역에서의 거사일을 3월 23일로 잡고, 천도교인들을 지도하여 거사의 계획을 짜는 한편 유림들과 접촉하여 이에 합세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3월 23일 첫번째 거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음날을 기약하고 동지들과 비밀리에 준비를 서둘렀다. 4월 4일 장날을 기하여 많은 장꾼들과 함께 밤사이에 연락받은 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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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대동단 남원지부는 서울 본부와의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남원지부의 활동 목표를 설정하였는데, 항일 운동에 동조하는 지방의 유지들로부터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중앙 본부를 통해서 상해임시정부에 헌금하였다. 대동단 전라북도지부에서도 단원들과 지역 유지들로부터 헌금을 받아 독립 자금으로 본부에 납부하기도 하였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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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찬서는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의 무차별 사격으로 인해 방극용 등 8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0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