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T0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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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최동렬 아저씨의 職業 이야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
집필자 | 이민우 |
직업 변화
군제대 후 1년 동안 운수업에 종사하다가 1982년에 지방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의 처음 받았던 월급은 군제대 가산 경력 3호봉 포함해서 본봉이 약 89,000원으로 기억난다. 그 외 여비, 수당 등을 포함하면 약 120,000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현재의 연봉은 약 4,500-4,600만 원 정도이다.
한편 과거 박정희 정권 때부터 전두환 정권 초기까지는 근무복으로 민방위복을 입으라고 권장했었다. 민방위복은 일선 공무원들이 영농이나 여러 가지 새마을 운동을 수행할 때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어서 많이 선호했었다. 그 당시에는 직원들이 새마을 운동, 주민들의 퇴비 증산 운동 등 영농 행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정장을 하고 근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당시 공무원 교육을 가면 새마을복을 주기도 했으나 주로 직장에서는 민방위복을 자주 입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당시 우리가 교육받을 때 민방위복이 유신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신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권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옷을 입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김대중 정권 때부터는 거의 입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나이 드신 선배님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민방위복을 입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 민방위복을 입었던 이유는 그 당시에는 상부 기관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시기였고, 신분을 자연스럽게 증명할 수도 있고, 흰색 옷이나 깔끔한 정장을 입고 농민들과 퇴비 작업 등을 하면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고, 내 자신도 깔끔한 옷을 입고 이런 작업을 할 수도 없는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옷을 입었다.
직업 내용
남원시청 문화관광과에 상당 기간 동안 근무하다가 지금은 산동면사무소로 승진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남원의 문화 유산 등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마을의 유래, 유적지, 교룡산이나 왕산 등과 같은 수수께끼 같은 지명 등을 풀 수 있는 천문 책자 등의 고문서를 탐독하거나 이런 장소를 답사하고 다니는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