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T0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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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김종한 할아버지의 宗敎信仰 이야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
집필자 | 이민우 |
종교 생활
옛날에 김종한 할아버지의 할머니와 부모님은 불교를 믿으셨다. 그는 유교(향교)를 믿고 있으며 아내는 무교이고 자녀 중에는 큰 딸만 기독교인이며 나머지는 무교이다. 집안에 사당이 있거나 마을에 제를 모시는 것은 없다.
차례/기제사
"우리 집은 옛날에 제사로 12분을 모셨는데 지금은 동생들과 나누어 지내고, 일부는 4대 선조 이상은 산 현장에서 가을이나 봄에 제사를 지내는 시제로 지내고 4대 안에는 집에서 기제사를 지냈어요. 지금은 우리 부부 둘만 살고 있어 할 수 없이 아들 집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있지요. 제사상 차림은 향교 혹은 퇴계 선생, 율곡 선생 등과 같이 어동육서 등의 제사상 차림의 법칙을 지키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각각 집집마다 다르니 이에 대해 누가 시비를 할 수 없지요. 우리 집에서는 제주를 기준으로 제사상의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중앙에 신위를 두고 지방을 써놓고 이로부터 첫 번째 줄에는 밥, 국을 놓고 양 가장자리에 촛불을 켜 놓지요. 두 번째 줄에는 떡(편), 돼지머리, 소족, 닭, 생선, 포 등 맛있는 것일수록 신위에 가깝게 놓았어요. 그 다음 줄에는 젓갈이나 일반 요리를 놓았으며 마지막 줄에는 대추, 밤, 감 등의 삼과실을 비롯한 과일을 놓았고 그 가운데에 제주 잔을 놓았지요."
김종한 할아버지 집안의 선산은 이백면 초청리, 남원시 도통동, 갈치동, 그리고 주천면 호경리에 두 곳이 있다. 그가 전부 다섯 군데의 종손이다. 묘소의 관리 비용은 종자금과 종토가 마련되어 있어서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세시풍속
옛날에 시골에서는 정월부터 12월까지 행사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설날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세배하고, 보름날엔 달집을 만들어서 태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경사든 애사든 가까운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무엇을 가져와서 이틀, 사흘씩 서로 도와줬다. 지금은 삯을 사서 사람을 구해야지만. 약 4년여 전까지는 명절 때 아들, 손자들이 집에 와서 명절을 보냈다. 따라서 아들, 손자들이 차를 타고 남원에 오니까 여기에 도착을 해야 비로소 안심을 하고, 또 명절을 지내고 자기 집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와야 비로소 안심을 하였다. 그리고 차가 없을 때는 차표를 사기 위해 아내나 그가 약 한달 전에 새벽에 나가 차표를 사곤 하였다. 이런 식으로 몇 년간을 지내다 보니까 아들들로 피곤하고 우리도 잠도 편히 못자고 하였다. 그래서 약 4년 전에 아들들에게 설과 추석날 우리가 서울로 올라갈 테니까 너희들은 여기에 내려오지 말라고 하였다. 따라서 지금은 추석, 설날 등의 이틀 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손자도 봐주고 하면서 약 닷새 정도 서울서 놀다가 내려온다. 김종한 할아버지 내외는 기차로 갔다가 기차로 내려오니까 참 세상도 좋다.
그리고 옛날에 결혼과 관련된 풍속으로는 식육점 운영하는 사람(백정)과 무당(당골) 등과는 절대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언행을 조심해야 하고, 밖에서는 술에 취할 수 있어도 동네에 와서는 술 취한 자세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간곡한 특명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