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30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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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原禪院寺木造地藏菩薩三尊像-塑造十王像一括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용성로 151[도통동 39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태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5년 3월 4일 -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 보물 제185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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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 보물 재지정 |
제작 시기/일시 | 1610년 -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 중 지장보살 좌상과 무독귀왕 등 제작 |
제작 시기/일시 | 1646년 -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 중 귀왕상 제작 |
현 소장처 | 선원사 - 전라북도 남원시 용성로 151[도통동 392-1] |
복장 유물 소장처 | 선원사 - 전라북도 남원시 용성로 151[도통동 392-1] |
성격 | 불상 |
재질 | 나무|흙 |
크기(높이) | 지장보살 93㎝[높이], 68㎝[무릎 폭]|무독귀왕 153㎝[높이], 36㎝[어깨 폭]|도명존자 136㎝[높이], 34.5㎝[어깨 폭] |
소유자 | 선원사 |
관리자 | 선원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선원사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권속.
[개설]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은 불상의 발원문을 통해 1610년(광해군 2)과 1646년(인조 24)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10년 발원문이 출토된 존상은 지장보살 좌상과 무독귀왕, 왼쪽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왕이다. 지장보살 좌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원오(圓悟), 학무(學文), 충신(忠信), 의정(儀正), 청허(淸虛), 홍민(弘敏), 신일(申釼), 해엄(海嚴), 태규(太珪)이다. 무독귀왕과 두 시왕의 조각승은 인관(印寬)을 필두로 지장보살상과 동일한 조각승들이 조성하였다. 주로 존상의 제작을 주도한 조각승의 이름을 가장 앞에 놓는 조선 후기 발원문의 특성을 고려하면, 인관이 주존을 제외한 나머지 권속의 제작에 원오보다 더욱 깊게 관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1646년 발원문이 출토된 존상은 향우측 귀왕상이다. 귀왕상 조성에 관여한 조각승은 도색(道賾), 일운(一雲), 각해(覺海), 법찬(法贊), 성현(性賢), 만이(曼伊), 명립(命立)이다. 두 기록을 통해 명부전 존상들이 조성된 지 약 30여 년이 지난 뒤 새롭게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3월 4일 보물 제185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선원사의 명부전은 대웅전의 왼쪽 편에 위치한다. 1963년 오일탁 스님이 완주 위봉사에서 시왕상을 이운하면서 새롭게 지은 것이다. 명부전 내부에는 지장보살 삼존상, 시왕상 10구, 동자상 4구, 귀왕, 판관, 사자 및 장군을 포함한 하부 권속 8구로 구성된 총 25구의 상이 벽면을 따라 ‘冂’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주존인 지장보살 좌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흙으로 제작되었다. 중앙에는 지장보살 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좌우로 시립하고 있으며, 벽면을 따라 각각 5구씩의 시왕상과 귀왕, 판관, 사자, 장군 및 동자상들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본존인 지장보살 좌상은 허리가 길고 하체가 낮아 상체가 다소 강조된 신체 비례를 보인다. 지장보살 좌상은 오른쪽 팔을 어깨높이까지 올리고, 왼팔은 복부 앞에 두고 있다. 따로 제작된 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결하고 있으며 양손에는 팔찌를 두르고 있다. 지장보살 좌상의 두상은 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상호는 반개한 눈, 우뚝 솟은 코, 넓은 인중과 양끝이 살짝 올라간 입술로 구성된다. 원래 목 아래에 있어야 할 삼도는 목에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지장보살 좌상은 승각기, 편삼, 대의를 걸친 전형적인 조선 후기 착의법을 따르며 주름은 깊은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가슴 중앙의 승각기에 좌우로 흘러내린 영락 장식은 조선 후기 지장보살 좌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식적인 요소이다. 지장보살의 좌우로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한다. 좌우 협시는 모두 양손을 천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무독귀왕은 정면에 보상화문이 있는 원류관 형태의 관모를 쓰고 전신을 덮는 단령포, 광다회와 세조대를 걸치고 있으며, 도명존자는 가사와 장삼을 걸친 모습이다.
10구의 대왕은 모두 의자에 앉아 있는 의좌상의 형태이다. 대부분의 대왕은 양손에 홀을 쥐고 있지만 좌우 두 번째 대왕들은 수염을 잡거나 책을 잡은 모습이다. 시왕상의 관모는 대부분 보상화문이 주요한 장식 모티프이지만 향우측 네 번째 시왕상의 경우 보상화문이 아닌 구름문양이 정면에 조각되어 있으며, 염라대왕의 관모 정상부에는 『금강경(金剛經)』이 있다.
조선 후기 명부전의 일반적인 귀왕상은 시왕상과 동일한 원류관을 착용해야 하지만 선원사 명부전의 귀왕상은 동물 얼굴이 조각된 관모와 두툼한 상투 장식만을 쓰고 있으며, 귀 뒤쪽으로 화염과 날개가 부착되어 있다. 판관상은 복두를 쓰고 양손을 흰 천으로 감싼 형상이고, 사자상은 두건을 쓰고 긴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3구의 동자는 해태, 봉황, 책을 안거나 든 모습이고, 나머지 동자 역시 홀이나 두루마리 같은 긴 지물이 있었으나 현재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갑주를 두르고 투구를 쓴 좌우 장군상들은 검을 들어 곧 내려칠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형태적으로 나타나는 차이점은 귀왕상의 얼굴이 지장보살이나 시왕상에 비해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 형태이며, 가슴을 감싸는 치마[裳]의 주름을 입체적으로 표현했으며, 수직으로 내려오는 광다회의 끝자락을 부챗살처럼 펼쳤고, 목을 감싸는 내의 자락이 아무런 접힘 없이 두텁게 표현된 것 등이다. 이러한 특징은 나머지 귀왕상들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며, 2구의 사자상 또한 귀왕상들과 동일한 상호 표현이 나타나기 때문에 발원문 속에 언급된 존상들임이 확인된다. 그러나 발원문에 언급된 태산대왕의 경우 시왕상들의 복식 표현 등이 유사하기 때문에 1646년 새롭게 조성된 시왕상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동자상들은 발원문의 11구 동자상 중 현재는 4구만이 남아 있어 7구가 유실됐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소조시왕상 일괄 중 선원사 명부전 존상의 제작 시기인 1610년은 현재까지 공개된 명부전 존상 기록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조선 후기 왕성하게 조성되는 명부전 존상들의 형태적인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일 뿐 아니라 17세기 전반 한반도 서부권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 원오의 불상 조성 형태를 반영하는 기준 작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