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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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秀雄 |
영어음역 | Choe Suung |
이칭/별칭 | 운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화섭 |
[정의]
조선 전기 삭녕최씨의 전라북도 남원 입향조(入鄕祖).
[가계]
본관은 삭녕(朔寧), 호는 운경(雲卿). 할아버지는 영의정 영성부원군 최항(崔恒)이며, 아버지는 예조참의를 지낸 최영린(崔永潾)이고, 어머니는 고령박씨이다. 부인은 진주하씨(晋州河氏) 사직(司直) 하응(河應)의 딸이다.
[활동사항]
최수웅은 일찍이 음사(蔭仕)로 충의위정략장군(忠義衛定略將軍)에 올랐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워진 데다 신병을 얻어 하씨부인(河氏夫人)과 함께 전라도 남원부(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상동 처가로 요양 겸 내려왔다가,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하여 삭령최씨 통례공파의 낙남(落南)파조가 되었으며, 자손들이 500년 동안 남원 일대에 뿌리를 내려 크게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학문에 전심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약관에 산림을 찾아 지냈다. 문과(文科)·일직(逸職)·음직(蔭職)이 대를 이었는데, 특히 6대 문과(文科)를 배출하여 유명하다.
[묘소]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 노적봉 하 구선동 유좌(酉坐)에 있다. 그의 묘각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으며, 그 앞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을 넘었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최수웅은 좌통례(左通禮)에 증직(贈職)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