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665 |
---|---|
한자 | 安克孝 |
영어음역 | An Geukhyo |
이칭/별칭 | 사칙,백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호석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칙(士則), 호는 백강(栢岡). 아버지는 첨추(僉樞) 안숙(安橚)이다.
[활동사항]
안극효는 1741년(영조 17)의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헌부의 지평, 장령, 헌납 등 주로 언관직에서 근무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권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활발한 언론을 펼쳤다.
일찍이 영조와 8촌간인 여천군(驪川君)이 동생 이학(李學), 외손인 이권책(李權冊) 등과 함께 투서를 조작하여 역모 혐의를 덮어 씌었을 때 안극효는 영조와 맞서 이들 종친을 법으로 다스리는 데 앞장섰다.
이후 결국 영조로부터 축출된 것도 이때의 언관 활동으로 미움을 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극효는 또한 중종 때의 명신 김정(金淨)을 문묘(文廟)에 배향하고자 여러 차례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학문과 사상]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목산(木山) 이기경(李基敬) 등과 막역지우로 서로 학문을 교류하였다.